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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받은 마음

무시받은 마음이 올라왔다.

그 마음들이 차곡히 쌓였다. 몇 년째 미루고 미루었던 무시받았다고 여겼던 마음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 보았다.


그 당시 상대에게 내 마음을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무시받는다고 여겨졌을 때 바로 표현했더라면 그 마음이 이렇게 눈덩이처럼 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음을 표현하고 소통하다 보면 상대마음도 알 수 있고 나의 불만도 해소되고 여러모로 감정의 찌꺼기가 남지 않았을 테다.

나는 두려웠다. 내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면 미움받을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참았다. 참으면,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상대의 말에 수긍하고 있으면 사랑받을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리고 부딪치고 싶지 않았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야 좋은 관계가 유지될 거라고 믿었다.  불쾌하다고, 그건 좀 기분 나쁘다고, 거절했어야 할 말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참았더니  그 마음들은 자꾸자꾸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미움이 되고 원망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A가 그냥 툭 던지는 말에도 불쾌감이 느껴지고 무시받는 마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왜 나는 유독 A에게 이렇게 불편한 부정적 감정들이 올라올까?  내면을 치유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편해졌고 마음속의 말을 담아두지 않고 표현해 보는 과정에 있지만 유독 A에게만큼은 표현이 어렵다.


사랑하며 살고 싶었다. 미워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고 어떻게 하면 사랑하며 살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지만 여전했고 시간이 갈수록 그 미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했고 나에게 지적이라도 하면 무시받은 마음이 올라왔고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으로 올라왔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주 사소한 일이었고 겨우 그것 가지고 그렇게 불쾌하고 화가 나? 참 소심한 사람인 것 같은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왜 이렇게 별일 아닌 것 가지고 이렇게 소심한 마음으로 불편해할까.


 긴 시간 A에게 올라오는 내 마음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저냥 참고 지내다 보면 좋아질 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사랑스러운 모습만 찾게 되고, 미운 사람을 만나면 미운모습만 찾게 된다더니 A가 나에게 아무리 잘해도 미워 보였다. 이런 내가 너무 싫었다.


불편한 마음도, 미운마음도, 내가 싫은마음들도 억지로 잠재우려 했지만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심하게 꿈틀거렸다


자리에  앉아 내 마음을 보기로 작정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다다랐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기분 나쁘다고 여겨졌던 내용들을 적어 내려갔고 대부분 ‘무시받은 마음’으로 요약되었다.


내가 그 당시 무시받은 마음을 느꼈구나.  그 마음이 쌓여서 이렇게 크게 반응하는구나.

 갑자기 가슴이 아파오면서 ‘내 마음을 내가 무시했음’을 자각하며 한참을 그 마음에 머물렀다.


그 당시 무시당했다고 여겨졌을 때 내 마음을 내가 무시한 거였다. 무시당했다고 여겨졌다면 상대에게 표현하거나 나 스스로 알아줬어야 했다. 나는 그 마음을 정말 무시했고 오히려 무시당했다고 여긴 마음을 미워했다.

내 마음을 내가 지켜주지 못했다.  누군가 나의 경계를 침범한다고 여겨지면 스스로를 지켜줬어야 했다.


사랑하며 살면 되지 왜 그런 불편한 감정을 가져? 참아. 참아. 참아. 니 감정은 중요하지 않아. 참아. 화나도 무시받아도 불쾌해도 그냥 참아.

 내 마음이 올라오면 자동 무시를 했다. 나에게 무시받은 마음들은 나도 모르게 남을 무시하는 파동으로 표현되었다. 무의식적인 반응이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음에 깊이 머물러보니 내가 얼마나 내 마음을 무시하고 살아왔고 상대를 무시하며 교만했는지 온몸이 흐느껴 운다. 미안함과, 아픔, 슬픔....

 

아이가 양말을 거실에 던져놓으면 불쾌감이 올라온다.

거실은 모두가 같이 쓰는 공간이고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계속 일러두는데도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

“양말 치워!”

 아이는 대답한다.

“알았다고!! 치울 거라고!!” 화를 내며 치우지는 않는다.

무시받은 마음이 올라온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나부터 아이를 무시했다. 왜 양말을 거기에 놔뒀는지, 상황이 어떤지 넓게 크게 보지 못했다. 아이가 나를 무시한다는 편협한 생각에 갇혀 무시하는 말투로 말을 했고 아이는 거기에 반응한 거다.

무시당했다고 여겼는데 내가 먼저 무시한 거였다. 잘 생각해 보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럼 나는 왜 상대 마음을 먼저 무시하는 거지? 생각해 보니 내가 내 마음을 무시하니까 남의 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였다.  내가 내 마음을 지켜주지 못하니 나에게 화가 난 거였다.


 내 마음을 순식간에 무시해 버린다. 알아차리기도 전에! 무시받았던 마음은 상대를 무시한다. 상대의 입장, 상황을 보지 못하고 내 편협한 생각에 갇혀 상대를 판단한다. 판사가 되어 옳고 그름을 따지며 지적한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살아간다.

 “ 나에게 무시받은 마음아, 참으라고만 하고 네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무시하는 줄도 몰랐어. 많이 서러웠지~ “​​


나의 마음공부는 내가 버렸던 마음들을 하나씩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과정이다. 이번에는 ‘무시받고 무시하는 마음’이구나. 이렇게 올라와주고 알아차려져서 고맙구나.  첫 자각! 알아차림 후 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 것이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기에 이렇게 알아차려졌음에 무한 감사하다.


무시받고 무시하는 마음의 자전거 쳇바퀴를 이제 돌리기 시작했다.  많이 넘어질 것이고 언젠가는 자유롭게 탈 수 있겠지^^

모든 마음은 온전하다.

하지만 모르고 휘둘리는 것과 알고 내가 주인의식으로 쓸데 쓰고 안 쓸데 안 쓸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은 다르다.


 무시받고 무시하는 마음도 정말 소중한 마음이다. 이 마음을 모르고 휘둘리면 나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지만 내가 알고 잘 쓰면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내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먼저 상대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차려보자.

 

무시받았다고 여겨졌던 마음들도 하나씩 안아주자.

사랑하는 내 마음을 내가 지켜주자



내 마음을 충분히 바라본 후 A를 만났다. A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A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A는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며 살아왔던 사람이다. 무시받지 않기 위해 심하게 외부를 꾸미고 치장하며 살아왔다. A가 그렇게 느끼고 싶지 않았던 감정을 나를 통해 느끼면서 힘들었을 것이다.


눈물이 났다. 미안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시받는 마음을 느끼며 핑퐁게임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A에게 연민을 느꼈고 편안했고 자유로웠다. 무시받은 내 아픔을 알아주니 이 마음이 즐거워한다.

A가 나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한다면 이제는 당당히 그리고 차분하게 표현할 것이다.  


치유의 과정을 통한 관점의 변화는 내 삶을 기쁘게 한다.  오늘도 나는 나를 기쁘게 하는 세포를 늘려간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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