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빌리밀리 Oct 20. 2023

 사랑이 되어가는 과정

나의 손을 먼저 잡은 건 설하였지만 그의 입에 입을 맞춘 건 내가 먼저였다. 100일이 되는 날 커피전문점에서 뜸만 들이는 설하에게 들이댄 건 나였다. 어쩔 줄 모르며 얼굴을 뒤로 훔칫 뺐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다가가 치아끼리 부딪혀버리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너무 아팠고 피가 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때 나는 설하와 헤어졌던 모든 여자들이 이러한 이유로 이 아이를 떠났을 것이라 확신했다. 2차 시도는 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단숨에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가자고 했다. 웃으며 상황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법도 했지만 아름답지 않은 상황을 억지로 아름답게 포장할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그래도 설하와의 키스는 어떨지 궁금했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른 건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설하는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한 번은 해봤으니 멀지 않은 시일 안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오리라 생각했다. 동아리방 사람들과 술집 약속이 있던 어느 날 우리는 거의 오픈 시간에 맞춰 먼저 술집에 도착했다. 기본 안주와 생맥주를 주문하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터에 우린 오늘이 그 날이라는 걸 서로 직감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의 입술을 서로에게 가져다 댔다. 방향을 잃은 혀들이 어설프게 입안을 훑고 있었다. 키스였지만 키스 같지가 않았다. 나는 설하와의 실망스러운 첫 키스를 치르고 앞면을 바라봐 맥주를 마셨다. 설하는 기다렸다가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웃으며 애들 올 시간 됐다고 설하를 제지했다. 혹시 설하가 여자 친구랑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싶었다. 그래서 설하는 내 입술만 보면 그렇게 떨었던 것일까? 설마 그랬을까 싶었지만 아마도 그랬을 거 같았다. 


설하와 내가 사귀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중에 사귀게 될 남자였다고 생각했으면 나는 내 친구들을 설하에게 소개를 해주지도 않았을 거다. 더군다나 설하의 절친 현수는 이미 올해 3월 14일 화이트데이때 나에게 꽃다발과 사탕을 주며 사귀자고 고백을 했었다. 물론 그것이 연인으로서의 인연으로 닿진 않았지만 현수와 나는 그 후로도 사귀는 연인처럼 만나기만 하면 티키타카가 있는 사이였다. 그리고 또 우리는 앙숙처럼 싸우기도 잘 싸웠다. 누가보면 연인인 것처럼. 남자친구도 아닌데 나는 현수와 남자친구보더 더 많이 다투고 싸웠다.현수에 관한 감정도 좋은 감정은 아니었다. 감정으로 따지자면 싫은 쪽이 더 우세했다. 하지만 싸우면서 정든다고 우린 누구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 그런 현수가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자 설하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고백을... 아니 작업을 건 것이다. 현수는 설하에게 크게 화를 냈다. 어떻게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랑 사귈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설하는 내가 현수를 받아주지 않았으니 크게 상관이 없는 거 아니냐고 항변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친구가 좋아하고 있는 여자와 사귀게 된 건 우정과 의리 그 무엇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수가 미국에서 돌아오자 설하와는 예전처럼 잘 지냈다. 그리고 나중에 현수는 나보다 더 예쁘고 착한 그리고 더 어린 소영씨와 만나 잘 사겼다. 그리고 결혼까지 갔다. 현수의 형은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님이셨는데 가톨릭 신앙심이 깊은 소영씨네는 그거 하나 보고 현수와 결혼을 시켰다고 했다. 이해가 크게 가는 대목이었다. 여하튼 결론적으로 현수는 더 잘 됐다.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 나는 연하든 연상이든 동기든 꽤나 많은 남자들로부터 고백을 받았고 대부분 거절을 했다. 그렇게 나한테 거부당했던 남자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훨씬 더 예쁘고 착하고 괜찮은 여자들과 사귀게 되었다. 심지어 결혼도 정말 괜찮은 여자들과 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이상했는지 아니면 그녀들의 눈이 이상한 건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거절은 결국 동아리 남자들에게 선행이 된 셈이다. 동아리 남자들은 본인보다 나은 여자들을 만나 하나 같이 장가를 잘 갔다. 아무래도 동방의 터가 좋았던 것 같다. 


설하와의 불미스런 첫키스가 있은 이후 설하의 피지컬적 요소는 모두다 불만으로 다가왔다. 앉았다가 일어서면 자로 잰 든 똑같아 지는 키. 올려다 볼 수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어깨동무를 할 때도 뭔가 어색했다. 지하철을 타고 갈 때도 그랬다. 그의 어깨에 기댈 때 나는 퍽이나 불편했다. 몇 차례 각을 잡고 자세를 취해 봐도 결국엔 답을 찾지 못하고 똑바로 앉아 가야했다. 손을 잡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 크기가 별반 차이 없어 포근함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우린 손은 꼭 잡고 다녔다. 설하가 나에게 남자친구로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스킨십의 혜택이었으니까. 


그래도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씩 더 가까워지자 공대인 설하와 인문대인 나는 어떻게 해서든 시간표를 맞춰 짜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더 많이 볼 수 있고 더 오래 함께일 수 있으니까. 같은 교양 수업을 넣고 점심시간도 최대한 같이 해보려 했다. 그럼에도 전공 수업의 시간대까지 맞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수업이 있을 때 설하는 공강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설하는 나와 함께 국문과 수업을 들었다. 인원이 적어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이 열 명 남짓한 전공 수업인데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때로는 손도 잡았다. 그런데 수업을 하던 강사 선생님은 우리한테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으셨지만 상당히 불쾌해 하셨다. 남녀가 손을 잡고 수업을 들을 수도 있는 거지 그걸 저렇게 싫어할 필요까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선생님의 따가운 눈총에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잡은 손을 스르르 놓았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해 다른 안 맞는 것들을 다시 맞춰갔다. 물론 설하의 어깨에 기대 앉는 것은 여러 번 시도를 해야 편한 위치를 찾을 수 있었지만 어쨌거나 기대어 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 기댔다. 키스도 마찬가지였다. 혀를 움직이지 않으면 충분히 감미롭고 보드라우면서도 롤러코스트 하강 곡선에서 내장도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바로 그 느낌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키스할 상황과 여건이 되면 우린 주저하지 않고 서로에게 인력을 작동시켰다. 우리가 맞춰 나간 건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동적인 걸 싫어하는 설하는 철저하게 정적인 아이였다. 데이트를 할 때도 서로의 집근처 아니면 학교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같이 있으면 좋았고 그래서더이상의 탐험 놀이 같은 건 필요치 않았다. 나는 그렇게 설하에게 많은 것들을 맞춰갔고 설하는 그 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나에게 맞춰주었다. 처음부터 강렬하게 끌렸던 건 아니지만 우린 어떻게든 우리만의 사랑을 만들고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추기 힘든 것도 여전히 남아있기는 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나는 굳이 설하게에 표현을 했다. 특히 술을 마시는 날엔 어김없이 불만을 표현했다.  

“예전엔 이런 적이 없었는데..”로 

시작하는 비교의 말들을 남발하기도 했다. 이성으로서 최악의 멘트를 서슴지 않고 내뱉고 한 술 더 떠 이것으로 그가 예전의 그 애처럼 나한테 해주기를 바랐다. 그가 그 애가 되어줄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를 통해 그 애를 그리워했던 것도 같다. 한 마디로 나는 설하에게 나쁜 여자였다. 그래서 나중에 천 배 만 배 죄값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선험적인 것들로 학습을 했지만 나는 그랬다. 또다시 얼마나 큰 죄값을 치러야 할 지도 모르는 채. 나는 겁도 없이 나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병신 같이 쿨하지 못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