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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Oct 22. 2023

남편이 망했단 사실보다 더 크게 다가온 공포

아침이면 키우고 있는 진돗개 똘이의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이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다. 영하 20도가 돼도 칼바람을 뚫고 산책은 해야 했다. 집이 망했다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마음과 달리 아름다운 하늘과 나무 그리고 꽃들을 마주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가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우주는 멈춰 서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저 묵묵히 제 갈 길 가버렸다. 내가 슬프다고 자연 또한 내 감정에 이입되어 주지 않았다. 나 심정이 어떻든지 간에 상관없이 그냥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서글펐다.    


기회가 더 있을 것 같지만 더 이상 없다는 것. 나한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나라고 왜 이런 일이 안 일어나겠냐는 현실. 진짜 제발 나를 비켜갔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바람처럼 흩날려 버릴 수 있다는 것 내 나이 마흔 여섯에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면 남편한테 왜 진작 말을 안 했냐고... 돈이 부족했으면 내가 나가서 일을 하면 될 일인데 왜 대출을 해서 투자를 했냐고 쏟아 부었다. 그러면 남편은 

“나도 힘들어. 나 좀 가만히 내버려둬.”하며 

짜증 섞인 화를 냈다. 

“내가 화도 못 내?, 오빠는 내가 도박을 하다가 재산을 탕진한 사람처럼 대하더라. 내가 집을 말아 먹었어? 내가 그랬어? 내가 그랬으면 오빠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나를 죽였을 것도 같은데!”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되잖아, 내가 죽어버려서 생명 보험으로 나오는 돈으로 빚 갚아주면 되잖아!” 

정말 무책임하게 죽음을 얘기했던 그 날 저녁 신랑은 집을 나갔다. 그것도 술을 엄청 마시고 나갔다.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그에게 나는 무심코

“똘이 밥 좀 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가볍게 무시하고 차고로 나가 이내 차를 타고 나갔다. 서늘한 느낌이 불안감을 흔들어 깨웠다. 제발 죽으러 나간 게 아니기를 하는 간절함을 손끝에 담아 핸드폰을 통화 버튼을 눌렀다. 10번이 넘게 걸었지만 남편은 받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모로 누웠다. 이내 나는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아빠가 술 마시고 차를 타고 나갔고 지금 전화 연결이 안 된다고 전했다. 아이들은 ‘Life 360’ 어플로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 추적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핸드폰을 꺼내 남편의 위치를 확인했다. 술에 취해 욱해서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서 죽을 수도 있단 생각에 이미 자책이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밀려 들었다. 거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아빠를 죽음으로 몰은 엄마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Speedway. 남편이 몰고 나간 차는 동네 편의점에 주차되어 있었다. 담배를 사러간 모양이다. 위치가 확인되자 나는 차를 타고 스피드웨이로 향했다. 집에서 5분도 거리의 길이 5년처럼 느껴졌다.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남편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핸드폰을 꺼내들고 Life 360을 켰다. 남편 차의 시속은 17 km/h. 분노의 질주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착한 서행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나도 주차장을 빠져나와 어디로든 달렸다. 위치 추적 어플을 계속 확인해야했기에 나도 모르게 천천히 운전을 했던 모양이다. 내 뒤를 따라오던 차 두 대가 중앙차선을 통해 내 차를 추월해 갔다. 8년 차 미국 생활 중 뒤따라오던 차가 추월을 하는 건 처음 있는 경험이다. 차안에서의 시간은 차 밖에서의 것들과는 달리 상대성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았다. 이 공간에서의 시간은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도무지 어쩔 수 없을 만큼 고속으로 흘러갔다. 남편이 이대로 죽어버리면 어쩌나...

‘이렇게 죽으면 나와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이들은 나 때문에 아빠가 죽었다고 생각할 텐데... 그러면 나는 진짜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인근 고등학교가 보이자 그 안으로 들어가 주차장에 가서 차를 세웠다. 남편의 위치를 재확인하기 위해서다. 남편 또한 이곳 어딘가에 멈춰서 있었다. 0 km/h 위치를 짐작하기 위해 나의 공간지각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 올려 썼더니 내가 주차한 주차장에서 정확히 고등학교 건물을 끼고 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걸 파악했다. 나는 다시 차에 올라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갔다. 텅 빈 주차장에 새하얀 픽업 트럭 한 대가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신랑은 풋볼 경기장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두 시 방향으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저 인간이 담배를 피는 동안 우리 가족은 사경을 헤맸던 것이다. 


 남편이 세워둔 차 바로 옆에 주차를 하고 달려가 남편의 등짝을 한 대를 후려 쳤다. 이단 옆차기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살아 있음에 무한한 다행과 이 무책임한 가장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에 또 화가 차 올랐다. 남편을 찾자 아들한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또 한 번 전화를 했다. 

“아빠 찾았어. 엄마 곧 집에 아빠 데리고 갈게.” 

남편이 담배를 태우는 동안 옆에 서서 풋볼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은 

“쟤네들 뭐야?” 

질문이 고스란히 어둠 속에 흘러나갔다. 남편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저것들은 뭐야?” 

시선을 정면에서 왼쪽으로 트니 까만 바탕 속에서 핸드폰 라이트 두 개가 이쪽을 향해 위아래로 흔들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애들이었다. 위치 추적 어플로 아빠의 위치를 확인하고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달려온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함께 부둥켜안았다. 그때였다. 지역 보안관이 우리 앞에 나타나 아무 일 없냐고 물어봤던 게. 나는 괜찮다고 남편을 찾았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경찰에 신고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답에 당황한 경찰은 다시 물었다. 

“남편을 찾았다고?”

그래서 나는 아이들한테 한국말로 물어봤다. 

“너희가 경찰에 신고한 거 아니야?”

“아니.”

나는 보안관에게 다시 우리 아무 일 없다고 괜찮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안전을 확인하자 보안관은 다시 학교를 둘러보았다. 외진 곳을 순찰하는 게 그들의 임무란 사실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만난 경은이 언니가 미국 유학시절 아무도 없는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남자친구와 키스를 하는 도중에 보안관이 나타나 차 문을 두드리고 아무 일 없냐고 물어봤던 일 말이다. 순간 남편은

“나 보안관 나타나서 무서웠어. 니가 남편 찾았다고 말해서 더 그랬다고.”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자살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아빠 차에 타고 집에 가라고 시키고 혼자서 차를 몰고 집에 들어갔다. 혼자가 되면 또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일이고 그러면 내 마음 또한 붙잡히지 않을 만큼 요동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저 더 잃을 게 있다는 사실은 이미 무거운 마음을 새롭게 가중시켰다. 남편에게 쏟아 부울 감정이 도리어 내 안에 머물렀고 나는 최선을 다해 남편을 달래 줘야했다. 이후로도 내 감정이 올라올 거 같으면 남편은 이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나에게서 받을 스트레스에 대한 벽을 쌓아 올렸다. 미국의 생명보험은 한국과 달리 보험에 가입한지 2년이 지나면 자살을 하더라도 보험료가 지급된다. 단 2년의 유예 기관을 두는 것은 자살을 계획하고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라도 2년이 지나게 되면 자살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사람도 대부분 이에 대한 마음을 접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자살에 관한 생각만 거두면 삶에 대한 애착이 그 틈을 메꾸어 버리는 모양이다. 


때로는 가족일지라도 보험금 때문에 살인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아무리 원수 같은 남편일지라도 자기가 죽어 목숨 값으로 살아갈 돈을 주겠다는 건 달갑지가 않았다. 나와는 사이가 안 좋을 지언정 내 아이들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빠다. 그게 내가 이 사람을 존중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나는 남편이 미워질 때면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그의 이름을 보았다. ‘애들 아빠’ 내가 부부싸움을 자제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애들 아빠기 때문에 애들 앞에서는 싸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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