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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Oct 22. 2023

어떻게 이게 꿈이 아닐 수 있지?

하루 중 가장 힘든 건 아침이었다. 일어나도 이 모든 일들이 꿈이 아니란 사실부터가 힘들었다. 어떻게 이게 꿈이 아닐 수 있을까? 자고 일어나면 가족들을 붙잡고 정말 이상한 꿈을 꿨다고 우리 집에 쫄딱 망했다고 하면 가족들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꿨어?” 이러고 실없이 웃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냥 이 기간 동안 차라리 내가 혼수상태이기를... 그렇게 오랜 시간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면 사라지는 꿈이기를... 그러나 현실이 꿈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참 싫었다. 내가 마주해야하는 하루가 꿈이 아니어서 힘들었다.


사람들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사는 외향적인 내가 한 달 넘게 두문불출을 했다. 만나자는 연락이 와도 나는 집에만 있었다. 사람들이 만나자 연락이 와도 나가질 않았다. 나의 감정들이 그들의 삶 속의 한숨으로 흡입되기를 원치 않았다. 작은 고통도 내 안에 담아두지 않았던 내 입도 이 시기만큼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의 상황을 알아주는 친구들은 자주 연락을 해서 기도하고 있다고, 힘든 시기는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위로의 말들을 해줬다. 도움이 되는 일을 찾고 있다고.. 이런 말들이 나에게 큰 의미가 되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실질적인 해결을 가져다주진 못할 정도로 앞길은 막막했다. 이런 와중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남편을 이해시키려는 친구도 있었고 철저하게 내 입장에서 남편을 비난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친구로서 정말 나를 위해준다고 느끼게 되는 친구는 내 입장에서 남편을 바라보는 친구였다. 그것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남편은 내가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이 금세 굳어지고 아이처럼 불안해하며 자리를 피하려 하다가 버럭 화를 냈다. 자기도 힘들다고 제발 자기를 가만히 나두라는 것이다. 나는 보지도 못한 돈을 갚느라 일을 해야 하는 판국인데 말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어쩜 저렇게 집안을 말아 먹고 당당할 수 있는지 그게 참 궁금했다. 나 같았으면 술담배도 끊으란 말을 아무도 안 해도 알아서 끊었을 텐데... 남편을 달랐다. 그래도 남편에 대한 불평을 할 여유가 없었다. 나쁜 사람은 그냥 나쁜 사람으로 두고 받아들여야했다.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또 그의 행동에 어떠한 서사를 부여하는 일은 사치였다. 역시 그냥 나쁜 놈은 나쁜 놈이지 내가 아무리 이를 잘 포장해준다 해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시간에 나는 집을 깔끔히 치워야하고 쓸모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일자리를 구해야했다. 이런 것들이 돈을 가져다주지는 않았지만 몸은 지쳐가고 있었다.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통해 한국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연락이 온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마트, 식당 여러 군데에 지원을 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누가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했던가? 지원만 하면 당장에 일을 할 거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나의 처지를 비관하며 울고만 있지는 않았다. 눈물과 함께 에너지도 빠져나가고 그 후에는 어김없이 두통이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눈물이 나오려 하면 이를 의식적으로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무기력이 혹처럼 달라붙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나는 쉬고만 싶어졌다. 밤낮으로 일해도 시원치 않은 상황인데 그러지 못했다. 시간당 20달러도 채 안 되는 일을 해봤자 빚을 갚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돈이 되는 현실이 암담했다. 이건 어쩌면 일을 원하지 않는 나의 무의식에 대한 합리화일 수도 있겠다. 


일요일 저녁 아들이 축구 경기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자기가 앞 집 잔디를 깎으면서 번 돈으로 음식을 사 먹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우린 프렌차이즈 중국 식당인 차이나 익스프레스 에 들렀다. 문 앞에 붙여 있는 구인광고를 보자마자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고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QR코드 위에 카메라를 댔다. 구직 사이트로 바로 연결이 됐다. 아들이 주문을 하는 동안 이력서를 써서 제출했고 그 다음날 옆 동네 헬로 판다 지점 매니저로부터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패스트푸드 체인점 차이나 익스프레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구직 사이트를 전전하며 일자리를 알아보는 나의 정보가 학교로 넘겨져서 여기저기서 교육을 받으라는 전화들이 걸려오기 시작했다. 이 또한 그런 전화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나는 끊을 준비부터 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본인 확인을 상대방에게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나의 반응에 당황한 매니저는 다시 천천히 그리고 똑똑히 자신은 차이나 익스프레스의 매니저라고 밝혔다. 그렇게 전화기 건너편에서 내 귀를 타고 넘어오는 소리는 인터뷰를 보자는 내용을 전달했고 시간도 나의 편의에 맞게 다 맞춰주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목소리로 전해지는 건너편 사람의 인품은 좋게만 다가왔다. 통화를 하고 난 그 다음 날 나는 면접을 보러 가겠노라고 말을 했다. 


면접 당일 식당으로 들어간 나는 20대 남자 네 명의 시선을 일제히 받았다. 11시였지만 식당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운터 뒤에 서 있던 한 중국인 남성이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간략한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같은 동양인 매니저를 만나서였는지 아니면 그 매니저가 친절하게 대해 줘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영어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매니저는 나에게 이전 직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물어보고,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형식적인 답변들을 내놓았다. 나는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직업에 대해 얘기를 건넸다. 그러자 그 일을 하면서 어떤 게 즐거웠냐고 물어봐서 가르치는 일을 즐겁게 해왔으니까 나중에 이곳에서 직원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일을 맡아도 되겠다는 매니저의 말과 함께 인터뷰가 식상해지려고 할 무렵 매니저는 다른 곳들 면접을 보고 있는지에 물었고, 나는 이곳이 내 미국 생활 8년 만의 첫 인터뷰라고 얘기하자 매니저는 그때부터 표정이 밝아졌다. 나의 대답에 그가 소리를 내서 웃은 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언제부터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내일부터”

또 한 번 그는 크게 웃었다.

“이런 대답이 어딨어?”

“아무런 약속도 없고, 나는 집에만 있는데 내일부터 일 못할 이유가 없지.”

“네가 일을 나오면 네가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많을 건데 넌 어떻게 할 거야?”

“세상에 문제가 없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어. 심지어 가장 편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집에서도 힘든 일은 있어. 받아들여야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야. 문제없는 인생은 그 어디에도 없어. 진짜 문제가 되는 건 그걸 대하는 태도인 거지.”

이 대답을 들은 매니저는 

“나는 지금까지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봤거든. 그런데 나는 그 중에서 네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 진심이야. 내가 지금 고용의 권한이 있다면 지금 당장 너를 고용하겠어. 그런데 우리 회사 절차상 슈퍼바이저와 한 번 더 인터뷰를 해야 해. 이건 우리의 규정이야. 그녀의 이름은 매기고 그녀는 11개의 매장을 관리하고 있어 지금은 여기서 다섯 시간 떨어져 있는 그랜드 래피즈에 있어. 금요일에 우리 매장에 올 예정이니 그때 다 같이 한 번 더 보자. 그래도 괜찮겠어?”

나는 흔쾌히 괜찮다고 답했다. 그리고 매니저는 나한테 이력서를 슈퍼바이저와 미팅이 있는 날 서면으로 출력해오라고 당부했다. 인터넷으로 입력을 해뒀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꼭 그렇게 해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실 나는 이력서는 정말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나의 경력들이 이곳에서 쓸 수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왔으니 나중에 승진을 해서 직원 교육을 해도 될 것이고 석사 출신이니 슈퍼바이저 이상의 비전을 가져도 된다고 얘기를 했다. 


슈퍼바이저와의 미팅 날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 오픈하는 매장의 일이 생각보다 많아서 이쪽 지점으로 넘어올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두 번째의 인터뷰를 하지도 않은 채 미국에서의 첫 직장을 얻게 되었다. 시간 당 16달러짜리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결코 허드렛일은 아니었다. 생계의 동아줄이었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일이었다. 영어를 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체력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 또한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영어를 해야 했고 어떻게 해서든 체력을 끌어올려야했다. 이건 나와 내 아이들이 이곳에서 사느냐 죽느냐에 관한 문제였다. 


페스트 푸드점 일인 데도 면접을 두 번 봐야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고용이 된 후에 서류 작성해야할 것이 엄청 많았다는 건 더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노란색 티셔츠와 빨간 모자, 그리고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 앞에 섰다. 원래 나는 요리에 자신이 있다는 걸 어필하면서 요리를 하겠다고 했지만 매니저는 극구 말렸다. 영어가 꽤 괜찮으니 프론트에서 주문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뒤에서 요리만 하면 영어를 배울 기회도 없고, 그래서 영어가 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영어가 기본적으로 되어야 이곳에서 더 좋은 기회들을 만들 수 있는데 절대 요리는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매니저는 모든 직원들에게 내가 석사출신이라는 것을 다 얘기해둔 상태였다. 대부분 학위가 없는 직원들은 나에게 슈퍼 스마트 하다며 신기해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영어를 못해서 이 나라에서는 슈퍼 멍청이라고 얘기를 했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정말 동료 직원에 비해 모든 게 서툴고 잘하는 거 하나 없었디. 유일하게 내가 남들보다 더 할 수 있는 두뇌를 쓰는 일이 아닌 몸을 쓰는 일이었다. 여유가 생기면 나는 홀에 나가 한 번이라도 더 테이블을 닦거나 바닥을 쓸거나 쓰레기통을 비웠다. 


내가 맡은 주요 없무는 손님이 음식을 주문하면 해당 음식을 접시에 담고 건네는 것이었다. 일을 시작한 첫 날 총괄 매니저는 외근이 있어서 자리에 없었고 그 아래 두 명의 부매니저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아직 음식 이름도 알지도 못한 상태였지만 충분히 해낼 수 수 있다며 나에게 주문 받는 일을 시켰다. 심지어 음식마다 해당하는 코드가 있고 이것을 주문을 받은 푸드 박스에 써넣어야 했는데 그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했다. 나를 그렇게 물에 빠뜨렸다. 거기서 가라앉든 수면 위에 떠오르든 그건 이제 내가 스스로 알아서 감당해야하는 일이었다.  


손님이 들어왔다. 여자 매니저 케일라는 나를 주문받는 자리에 세웠다. 벌거벗은 채 무대에 오른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인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웃을 수도 없었다. 나의 긴장은 국자를 타고 음식을 통해 손님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어쨌건 나는 주문에 따라 음식을 담았고 이를 지켜본 부매니저 케일라는 박수를 쳤다. 그리고 “굿 잡”을 연발했다.


케일라는 케이팝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의례 케이팝을 좋아한다고 하면 방탄소년단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데 케일라는 엑소, 슈퍼주니어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샤이니까지... 한국말은 못하지만 “안녕하세요”, “사랑해”는 할 줄 알았다. 나에게 박수를 치는 케일라에게 나는 윙크를 하며 

“케일라, 사랑해.”

하고 말해주었다. 케일라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메뉴명과 함께 코드명을 써서 나에게 주었다. 마법의 종이가 있으니 든든했다. 그 후로 나는 이 마법의 종이를 소중하게 여겼고 모든 직원들에게 자랑했다. 


나보다 3일 먼저 일을 시작한 레이첼은 싹싹하고 명랑한 전형적인 미국 젊은 여자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바닥을 쓸었고 컵이 떨어지기도 전에 채워 넣었다. 손님이 쓰고 남은 쟁반을 챙겨와 소독한 걸레로 닦고 누구에게나 웃었다. 미국인들이 일을 못한다는 편견은 그저 편견이었던 모양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미국인들은 나보다 훨씬 야물딱지고 일도 잘했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비해 나는 한 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나를 계속해서 도와주고 격려해주었다.


운이 좋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다 천사였다. 영어가 부족한 나에게 특별히 말을 천천히 해주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못한다고 무시하지도 않았다. 나 또한 그들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반복해서 물을 일 없이 그냥 받아들였다. 아마도 직장 내에서는 언어적 초능력이 작동되는 것만 같았다. 그냥 그들이 무엇을 말하든 흡수되었다. 하지만 손님들의 언어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집중해도 못알아 듣는 것들이 있었다. 특히 해드셋을 통해 전달되는 주문의 목소리는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나의 얼굴은 모자와 앞치마와 함께 하나의 유니폼처럼 늘 빨개져 있었다. 


언어를 전공한 나는 언어가 한참 모자랐다. 그런 나에겐 그나마 쉬운 일은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그걸 체크해서 음식을 담는 일이었다. 주문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준비하면 되는 일이었다. 처음엔 드라이빙 쓰루로 주문을 받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몰랐고, 상대방의 말 또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하기 연습을 시켜주었다. 심지어 케일라는 대본까지 써서 주었다. 


“Hi, welcome! Thank you for choosing China Express, what can I get started for you?/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차이나 익스프레스를 선택해 주신 걸 감사합니다.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customer gives orders/ 고객이 주문한다)

(Associate upsells drinks and appetizer/ 음료와 디저트 추가 판매를 유도한다)

“Would you like to round up your total for the children’s hospital?/ 남은 잔돈은 아동 병원에 보내줘도 될까요?”

(if no : “not a problem” / 만약 안한다고 하면 : “괜찮습니다.”)

(if yes : “Thank you so much”/ 만약 한다고 하면 : “고맙습니다.”)

“You can go ahead and pull forward to the window. Thank you/  앞쪽 창가로 차를 끌고 오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

always repeat order to guest as you take their order so that it is accurate./ 항상 손님이 주문하는 걸 따라서 얘기해줘서 정확하게 해야 해. 


마법의 종이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 나는 드라이빙 쓰루 주문을 받는 건 미뤘다. 연습이 필요하다며 하루의 시간을 벌었다.


나의 주요 업무는 프론트에서 주문을 받는 것이었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음식 온도 체크도 일일이 해야 했고, 냉장고 냉동실, 식자재, 튀김 기름 온도, 온수 온도 이 모든 것들을 확인해야했다. 뿐만 아니라 걸레 소독용 물통의 PH 농도로 확인해야했다. 수시로 손님들이 앉았던 자리를 닦고 바닥을 쓸어야 했다. 일회용품들을 사용하다보니 쓰레기통도 때마다 비웠다.  하루 전 날 본사에서 직원이 나와 계산대에서 필요한 잔돈들을 금고에 넣어주면 출근과 동시에 금고를 열고 금액을 확인해 계산대에 채워 넣었다. 퇴근을 할 때면 채워 넣었던 돈에서 남는 돈은 금고에 넣었다. 그렇게 바쁜 근무시간을 보내면 앉을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식사를 하기 위한 12분이 전부였고 그것 또한 타이머를 누르고 가서 후딱 먹고 일어서야했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도 모를 눈물이 흘러 나왔다. 나의 감정 따위는 상관없이 그냥 반사적으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때문에 서글픔이 차 벽면을 타고 축축하게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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