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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Oct 22. 2023

웰컴 투 차이나 익스프레스

울면서 퇴근을 하고 우울하게 출근을 하지만 매장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웃음을 만개한다.

“굿모닝!”


둘째 날은 첫째 날에 비해 훨씬 나았다. 직원들과도 더 많이 얘기를 나눴고 손님들한테 인사를 건네고 주문을 다 받은 다음엔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의식적으로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고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청소를 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빙 쓰루 주문을 못 받으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일을 적게 하는 느낌이 들어 미안했다. 이곳의 일은 내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공동의 업무를 분담하는 방식이라 내가 일을 많이 안 하면 그만큼 다른 누군가는 일을 더 해야만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참작이 될 수 있는 초보다 보니 괜찮긴 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이 초보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 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주방 뒤에서 볶음밥과 볶음면을 만드는 중국인 토마스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자신이 사온 도넛을 먹으라고 얘기를 건넸다. 난 처음에 그가 도넛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를 한 줄 알았다. 우리 매장에 도넛은 없는데 춘권을 도넛이라고 말하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내가 도넛을 안 먹고 있으니 다시 한 번 나에게 와서 자기가 출근하면서 도넛을 사왔으니 먹으라고 건넸다. 하지만 배가 부른 나는 도넛을 먹을 수가 없었다. 


직원들은 식당의 음식을 먹을 수가 있었다. 상황을 봐서 여유가 생겼을 때 일회용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이어서 음식을 적게 담았음에도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밥보다 물을 더 많이 먹었던 것 같았다. 사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뱃속 상태는 밥을 건너뛰어도 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에게 허락된 단 12분의 자유시간은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전직원들이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식사시간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스 아저씨는 오로지 직원들만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나왔다. 쌀로 만든 면을 야채와 고기와 볶아서 커다란 스텐 볼에 담아 놓았다. 나는 점심도 꾸역꾸역 들이 부은 상태라 손을 댈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먹어봤냐고 여러 차례 물어보는 아저씨의 성의를 생각해서 한 입 정도 접시에 담아 맛을 봤다. 

“세상에!”

머리 위로 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너무 맛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우리 매장 음식의 맛도 나쁘진 않은데, 아저씨가 만든 음식은 식당의 다른 음식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맛있었다. 입맛이 없던 나는 또 한 번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었다. 그만큼 인상적인 맛이었다. 나는 아저씨한테 래시피를 물어봤다. 아저씨는 정말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면을 물에 불렸다가 볶고, 강낭콩, 계란, 양송이 버섯, 고기 하나하나 나눠서 볶은 다음에 간장, 참기름, 굴소스, 핫소스의 양념을 하고 마지막으로 모든 재료들을 한데 볶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한국인이니까 김치를 넣어서 볶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랑 마주치는 순간마다 자신이 44년전 미국 차이나 타운으로 와서 일을 하게 된 이야기. 식당을 경영했던 이야기. 지금은 은퇴를 하고 집에서 있기엔 심심해서 이렇게 나와서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40여년의 역사가 단 몇 분으로 압축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케일라는 아저씨가 일하는 날이면 이렇게 직원들을 위한 요리를 하나씩 해준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천사같은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내가 퇴근할 때도 내가 도넛을 안 챙겨 먹었던 것을 어떻게 알고 가져가라고 하셨다. 커다란 박스 안에 도넛 하나가 들어 있었다. 차에 타기도 전  나는 또 울었다. 아저씨의 따뜻함에 울었다. 하루의 고단함보다 아저씨의 따뜻함이 더 강렬해 일하면서 체크했던 에그롤 온도가 가슴 속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모두가 부족한 나를 그런 대로 받아주고 있을 때 유독 나에게 까칠하게 구는 또 다른 부매니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스테판이고 중국인이었다. 내가 하는 것들을 지켜보고 지적을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한 번도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준 적도 없었는데, 내가 일을 하고 있을 때 등 뒤로 나타나 

“음식을 더 담아야지.”

“음식은 여러 차례 나눠 담는 게 아니라 한 번에 크게 떠서 담는 거야.”

이런 식으로 일거수일투족에 지적을 해댔다. 어쩌면 지적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직업 훈련의 선후가 뒤바뀌었던 거였을지도. 하지만 처음부터 훈련을 시켜주고 일을 시작했으면 그저 훈련이었을 것을 뭔가를 하고 난 다음에 이를 고쳐주는 방식이 되어버리니 듣는 입장에서는 지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얻고 그 다음에 가르치라는 말을 스테판은 모르는 것 같았다. 가르치고 마음을 잃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3일 동안 같이 일을 했다. 자신이 나한테 심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였는지 3일차 되는 날에는 일은 괜찮냐고 물어보긴 했다. 주문을 받다가 손님이 뜸해지면 나는 홀에 나가 식탁을 닦고, 바닥을 쓸고 쓰레기통을 비웠다. 그때마다 아무 무뚝뚝한 표정과 무뚝뚝한 말투로 고맙다고 얘기를 해주긴 했다.


저녁 근무는 처음이었는데, 그것도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점심때보다 훨씬 바빴다. 바쁘면 시간이 금방 가는 게 상식인데 아무리 시계를 봐도 시간은 정상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출근한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제의 3시간을 쓴 느낌이었다. 나는 인생 처음으로 일이 많고 지나치게 바쁘면 시간이 더디 간다는 사실을 접하게 됐다. 8시 30분 일이 끝나려면 1시간 반이나 남았는데, 스테판은 나에게 마감 업무를 알려준다고 홀로 따라 오라고 했다. 변기용 세제, 유리창 세제, 스테인리스 세제 이렇게 3개의 스프레이와 2개의 걸레를 가지고 스테판을 따라 나왔다. 스테판은 먼저 남자 화장실 청소를 시범적으로 보여줬다. 먼저 유리창 세제를 거울, 세면대, 쓰레기통, 장애인용 손잡이에 뿌리고 걸레로 닦았다. 그리고 변기용 세제를 이용해 변기를 닦고 나한테 청소 도구를 건네주며 여자 화장실 청소를 하라고 시켰다. 다 하면 검사를 받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나는 이 날 사실 변기용 세제와 유리창 세제를 혼동해서 바꿔 썼다. 그렇다고 되돌릴 수 있는 일은 아니어서 그냥 그런대로 검사를 받았다. 거울 얼룩이 심상치 않았다. 세제를 바꿔 써서 그런가 걱정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테판은 거울을 보더니 세면대 먼저 닦고 유리를 닦았냐고 물어보며 그럼 이렇게 된다고 일러줬다. 세면대의 비누가 묻어서 그런 것 같다며 페이퍼 타올을 뜯어다가 거울을 박박 닦았다. 문을 닫고 스프레이를 뿌린 탓에 온갖 화학 성분들이 공기 중을 맴돌고 이는 다시 두통이 되어 돌아왔다. 세제가 닿았던 손은 급격히 노화되어 피부에 닿지 않아도 그 까칠한 건조함이 눈으로도 온전히 전해졌다.


그리고 다시 주방 뒤편으로 가서 세제를 탄 물통과 소독수를 담아둔 물통을 두 개 가져와 음료수 기계 앞에 섰다. 음료수가 나오는 플라스틱으로 된 입구는 왼쪽으로 돌리니 기계와 분리가 됐다. 이것들을 먼저 세제를 탄 물통에 담가 뒀다가 세제물을 버리고 소다수를 받아다가 두어번 세척했다. 그리고 소독수에 다시 담갔다. 그리고 유리창 닦는 세제를 이용해 음료수 나오는 입구 부분을 두어번 닦아줬다. 블랙티가 담겨 있는 통 두 개는 그대로 주방 뒤로 가져가 다 쏟아 버리고 그 내부를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역시나 음료가 나오는 입구부분은 통과 불리세 세제로 닦고 소독수로 소독을 했다. 


 

그리고 보라색 세제를 이용해 테이블을 닦았다. 이건 끈끈한 것들을 제거할 때 효과적이라고 했다. 티비 드라마를 보면 억척스러운 여인들이 식당에서 불판을 닦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걸 보면서 사람들 참 열심히 산다는 생각에 죄책감마저 들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내 모습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게 현실이라기 보다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드라마틱한 결말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보았다. 그러나 그런 허구와 현실의 경계 속에 내 생각이 닿았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눈물이 또 나올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홀에 있는 의자들을 테이블 위에 얹고 빗자루를 이용해 바닥을 치웠다. 그리고 걸레통에 세제 넣고 물을 담아 걸레와 함께 홀로 나갔다. 물을 짜내도 여전히 묵직한 걸레를 바닥을 닦았다. 꼼꼼하게 닦으면 청소가 끝날 때 까지 영원한 시간이 걸리니 쓱싹 한 번만 하고 청소를 하라고 했다. 6명의 남자 직원들이 주방 청소를 하는 동안 나 혼자 홀을 청소했다. 이를 두고 마음이 안 좋았는지 스텐판은 연실 일이 힘드냐고 되물었고,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방에서 일하는 한 중국인 아줌마는 주방 청소를 하는데 그게 더 힘들 거라고 얘기를 했다. 사실 그 아줌마가 나보다 더 힘들고 덜 힘들고는 나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한 시간에 16달러의 일이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사실만이 내게 중요한 것이었다. 퇴근을 하기 위해 문을 열고 매장을 나왔다. 또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울다 멈췄다 울다 멈췄다 하면서 운전을 해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막내한테 문자가 왔다. 하트 두 개가 찍혀있었다. 이번엔 소리와 함께 눈물이 터져나왔다. 현관 앞에 쓰레기통이 그대로 놓여 있는 건 오늘 하루 종일 식당에서 일했던 것보다 더 고단했다. 나이 쉰을 앞두고 있는 아내가 밖에 나가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돌아왔는데 쓰레기 수거일에 쓰레기를 밖으로 빼놓지 않고 있는 남편은 이해를 할래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자동반사적으로 청소를 했던 행동들이 그대로 집안으로 이어져 주방을 청소하고 자정이 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아이들 등교 준비를 시키려면 적어도 5시 반에는 일어나야하니까 더 늦게까지 일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유리용 세제 대신 변기 세척제를 사용했던 게 떠올랐다. 스테인리스들이 부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다시 눈을 떴다. 하루 밤을 잠으로 보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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