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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Oct 22. 2023

엄마의 자살 시도

엄마는 나와 통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 됐다. 그리고 삶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 수면제를 과다 복용했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먼저 털어놨고 나는 언니를 통해 이 소식을 들었다. 엄마가 일반 병동으로 옮기고 거동도 잘 하고 말도 잘하게 되자 비밀처럼 간직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놨다고 한다. 병원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을 붙잡고 말이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약 먹고 죽으려고 했어요.”

의사한테 이 사실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엄마는 이에 대해 말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옆에서 간병을 딸의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이 주문처럼 술술 내뱉었다고 한다. 

‘엄마가 자살 시도를 한 거였다고?’

물론 언니의 난처함도 마음이 썩 좋진 않았지만 엄마가 의식을 잃었던 이유가 자살 시도였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올 해 2월 아빠는 침대에서 떨어져 몸에 근육 마비가 왔다. 그런 아빠를 돌보기엔 엄마 또한 연세가 있으셔서 아빠는 요양 병원에서 6개월 간 지내셨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기까지의 결정에 대해 나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엄마와 언니의 의견을 수렴했고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남편은 옆에서 자신의 의견을 쉴 새 없이 말했다. 그게 사위된 도리라 생각을 해서였는지. 하지만 병원비 한 푼 보태주지 않는 처지에서 주제 넘는 발언을 삼가는 것이 진정으로 사위된 도리라는 건 깨닫지 못한 눈치였다. 엄마는 아빠가 병원에 있는 동안 나에게 미안한 무언가가 있었는지 

“은영아, 아빠 잘 지낸다. 얼마나 잘 먹는지 병원밥 말고도 떡이며 빵이며 먹고 싶은 게 많아서 엄마가 음식 대느라 바쁘다. 아빠 얼마나 건강한지 몰라.”

“엄마가 병원 간호사들한테 아빠 잘 부탁한다고 떡이며 빵이며 엄청 사서 대주고 있다.”

나는 이 말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 나는 아빠가 병원에 더 오래 있길 바라고 엄마가 아빠 뒤치다꺼리 하느라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 엄마도 평생을 아빠 때문에 힘들었고 할 만큼 보다 더 많은 일들을 아빠를 위해 했다. 나는 이에 대해 엄마에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만 엄마한테는 이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엄마를 나쁜 엄마로 생각할 까봐 하는 걱정이 컸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엄마 편하려고 아빠를 병원에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빠한테 음식을 보충해 주는 걸로 만회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그런 노력은 엄마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아빠가 없던 6개월이 참 좋았던 걸까? 아빠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돌아오자 얼마 되지 않아 약을 먹은 것이다. 아빠는 내가 친정에 가 있을 때도 손 하나 까닥을 안 했다. 물 한 잔 마시는 것조차 엄마한테 떠오라고 시킨다. 이것 때문에 나도 아빠와 여러 차례 부딪쳤고 엄마를 시킬 때면 내가 아빠한테 물을 떠다주며 이런 건 제발 아빠가 하라고 당부를 했다. 그와 동시에 엄마한테도 아빠가 시킨다고 다 해주지는 말라고 언지를 주었다. 둘 다 알았다고 하지만 변함은 없었다. 여전히 아빠는 엄마를 시키고 엄마는 일분지 실행을 했다. 아빠가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밤낮이 바뀐 아빠는 밤새워 티비를 켜놓고 시끄럽게 했고 무더위에 지쳐있던 엄마한테 에어콘조차 못 켜게 했던 것이다. 


200년 더 전에 ‘자유론’과 ‘여성의 종속’을 통해 가부장제를 비판했던 존 스튜어트 밀이 살아 돌아와 이 광경을 본다면 세기가 두 번이나 지났는데도 세상이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탄식을 했을 것이다. 인류 절반인 남성이 나머지 절반인 여성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정 안에서 이뤄지고 이를 자식들이 목도를 한다면 독재를 가르치는 것만큼 나쁜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정이 독재의 악덕을 길러내는 온상으로서 이 사회를 망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런 독재가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는 곳에서 자라났어도 존 스튜어트 밀의 환신인양 독재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었다. 독재를 경험하는 상황 속에서 독재를 학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재가 나쁘다는 것을 터득했다. 그렇게 민주적 자질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다. 


자유가 억압되는 곳에서의 자유는 결코 당연하지가 않다. 그건 어쩌면 생존을 걸만큼 중요하기에 투쟁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인간 존엄의 가치로서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토록 인간에게 자유는 중요한 것이다. 헌법으로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 오늘 날에도 자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엄마처럼 말이다. 그리고 자유의 숨통이 막혀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의 숨통마저 끊어버리고자 한다. 


엄마한테 엄마는 깨어나서 언니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했다고 한다.

“지난번엔 몸만 붓고 그만이더니 이번엔 혼수상태까지 갔구나. 내가”

4년 전 엄마 몸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역시 자살 시도였던 것이었다. 나는 왜 엄마에 대해 이토록 아는 것이 없었던 걸까? 그토록 힘들었던 시간들을 다 이겨냈는데, 딸자식들 성장하고 사위 맞이해 손주 새끼가 여섯이나 있는데 엄마는 삶을 포기하고자 했다. 심지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충격이 컸다. 


죽음엔 과연 행복이 있는 걸까? 오랜 절망의 시간을 넘어 망설였던 그 사선을 넘어 고통을 걷어 내고 좌절을 떨쳐 내어 그렇게 지옥 같은 삶이 끝나는 순간 영원한 휴식은 달콤한 시작이 되는가? 엄마가 우리를 남겨 두고 삶을 스스로 끊으려 했다는 사실은 나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시린 날엔 입김에도 머리카락이 얼어붙듯 내 주위 모든 수증기들은 작은 얼음 알갱이가 되어 내개 달라붙었다. 나는 이내 냉각이 됐다. 스산한 날엔 눈물에도 입술이 얼어붙는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온기가 살얼음이 되어 내게 달라붙었다. 나는 그것처럼 금시에 결빙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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