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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29. 2022

후회하는 삶에 대하여

하루를 마감하고 침대에서 잠을 청하려 불을 껐을 때, 천장이 영화관의 스크린으로 변하면서 그날 했던 언행들이 하나둘씩 상영되는 경험, 있으신가요?  물론 장르는 블랙코미디. 때로는 주말의 명화처럼 오래 전 일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하이라이트 모음집처럼 여러 에피소드를 모아서 한번에 방영하기도 하는.


제가 그렇습니다. 후회의 아이콘. 자책 대마왕.  


대체로 논리적인 편이지만,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적시에 전달하면서 상대방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상대방의 주장이 논리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정말로 터무니없는 억지이지만 감정적으로는 굉장히 날이 서 있는 공격일 경우에 특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내가 했어야 하는 말들과 상대방이 했을 법한 리액션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리플레이하면서 자책하고 후회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해한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지난 날들을 돌아보며 잘했다 자축하기보다는,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머리를 쥐어뜯곤 합니다.  현재의 내가 보면, 어린 내가 내뱉은 말들은 위선적이고 행동은 서투르며 처신은 어설프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혹시나 예전에 교제했던 사람들을 마주치는 날에는, 재빠르게 어디로 숨거나 애써 모른척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후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행복한 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지난 모든 날들이 잘못된 처신과 그릇된 언행들로 점철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즐거운 기억이란 드문 재화겠지요.  어느 소설가가 그랬던가요.  과거의 추억은 마치 장작과도 같아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온기를 주는 연료와 같다고요.  과거의 경험을 따뜻한 추억으로 회상하기보다는 부끄럽고 지우고 싶은 트라우마로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날이 갈수록 장작이 떨어져 가는 추운 오두막에 사는 느낌일 수 있습니다.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도문처럼,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삶의 지혜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상영되는 후회의 시네마를 지켜봐야만 하는 천성이란, 참으로 바꾸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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