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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Mar 31. 2024

돌고 도는 말의 힘


말을 예쁘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 말이 다시 돌고 돌아 내게 오기 때문이다. 살면서 내뱉은 말은 그 크기가 커지고 자라 결국엔 반환점을 돌아 나온다. 그게 내게 화살이 되어 꽂히기도 칼이 되어 베기도 하니 말은 힘이 세다. 좋은 말은 자라는 새싹이나 물을 주어 키우는 꽃처럼 보는 이를 기분 좋게 하고 미소 짓는 따스한 기운을 주지만 그 말은 듣는 사람에게 힘이 되고 살아갈 기운을 북돋아 주게 된다.


송곳 같은 뾰족함으로 할퀴는 말을 할 땐 마음이 풍요롭지 못해 입에서 거친 말이 나가기 일쑤다. 그럴 땐 우리 마음조차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가 많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내 말을 조절할 기회조차 생각지 못하니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항상 같은 마음가짐일 수 없으나 어떤 순간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 세월로 알아가고 있다.


남편과 둘이서 보내는 일상은 때론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되어야 한다. 사실 남편은 내게 무한한 지지와 의지가 되고 있지만 가끔씩 뇌를 스치지 않고 불쑥 튀어나오는 말로 인해 상처받을 때가 다. 언젠가 좀처럼 모르는 이의 결혼식에 잘 참여하지 않는 내게 회사 상무님 자녀가 가까운 곳에서 결혼한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직장 동료며 선후배도 많은 그곳에 도착해 인사하고 가까운 지인들과 식사하던 때였다. 한참 대화하던 도중 뜬금없이 "근데 우리 딸은 누굴 닮아 그렇게 공부를 못하는지 모르겠어."라며 내게 눈길을 보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였는데 앞뒤 관계없는 그 말에 얼어붙은 듯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건너편 친구도 당황했는지 무슨 그런 말을 하냐며 내 눈치를 보았다.


그때 딸이 겨우 초등생이었는데 공부를 못하면 얼마나 못하고 그게 마치 내 책임인 양 집도 아닌 밖에서 탓하는 듯한 말투와 눈빛이라니. 생각 없이 문득 튀어나온 말이라 하더라도 그때의 일을 잊을 수 없다. 늘 우수했던 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모르는 이들과 식사자리에서 언급하기엔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붉으락푸르락해지는 낯짝을 감추고 아무 말 없이 헤어져 돌아오며 다짐했다. 다시는 저런 말 못 하게 적절한 말로 받아쳐야지, 더 이상 말로 상처받지 말아야지 하고.


오래 살다 보면 가끔 깊은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툭 튀어나오는 말을 들으며 나조차 힘들 때가 있다. 악의적이지 않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TPO에 맞지 않은 말을 주고받는 것은 실례다. 평소엔 잘하다가도 남편은 그렇게 자기 몫을 깎아먹는 말을 곧잘 한다. 이제는 나이 들고 산 세월이 있으니 좋으나 싫으나 이해하고 넘어가게 되지만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고 억한 마음이 든다. 상처가 될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반면 가끔 예쁜 말로 잘 둘러대기도 한다. 며칠 전부터 바나나가 먹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마트에 갈 짬이 안 났다. 저녁 늦게 바나나가 먹고 싶다 하니 날이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데 굳이 나가서 바나나 두 손과 주문하지도 않은 딸기, 비비빅 한 박스를 사 갖고 온다. 가까운 곳에 없어서 멀리까지 갔다면서 한참만에 돌아와 깜짝 놀랐다. 살면서 늘 불만과 짜증 나기만 하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먹고 싶다는 것을 굳이 저녁 늦은 시간 사다 주려는 마음이 있으니 웃으며 맛있게 먹고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 과오가 있어도 때론 좋은 면이 그것을 다 덮고도 남는다. 그것은 행위보단 작은 말투와 마음가짐 일 것이다.


비비빅 한 개를 먹으며 달콤한 단팥 내음처럼 퍼지는 잔잔한 향이 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받아 든 아이스크림처럼 기분 좋은 마음을 갖게 하니 사람은 그렇게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존재다. 돌이켜보면 나도 남편에게 모진 화살과 송곳의 날카롭고 뾰족한 베는 듯한 말을 많이 했다. 그게 어찌 남편만 탓할 수 있겠는가. 서로 핑퐁 하듯 건네는 말이 거치면 받아치는 말이 험할 수밖에. 그러니 쉬운 것은 아니지만 부드러운 말과 단어로 골라 쓰고 노력하며 나를 좋게 포장하고 화장하듯 아름다운 말로 채울 일이다. 그래야 말하는 품새며 내용들이 돌고 돌아 나를 공격하지 않고 향기를 뿜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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