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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마중

by 최림

부활절 준비로 집을 나섰다. 딸은 이불속에서 얼굴만 삐죽 내민 채 폭 안기니 정겹고 좋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 있으니 가끔 번갈아 돌아오기만 해도 기쁘다. 당연히 늘 같이 밥 먹고 살 비비고 살던 시간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늦게 일어나 눈도 못 뜨고 있는 딸을 안아주고 토마토 주스를 갈아놓고 집을 나섰다. 시원하게 냉장고 넣지 않았으니 빨리 마시라면서 전화까지 했다. 그나저나 집 떠나도 자식 걱정에 시간이 모자라다.


안개비가 내리고 보슬거리는 비가 뿌려대도 주말마다 내리는 비는 대지를 더 촉촉하게 적셔준다. 그래서 더 오래도록 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통 연둣빛 세상으로 단차를 가지고 뿌려대는 초록빛에 눈을 어디다 둬야 될지 모르겠다. 이런 시간은 금방 사라지고 없어진다. 마치 꽃잎이 떨어지듯 금방 없어지니 연두 빛깔의 자연을 만끽하는 시간도 길지 않다. 더구나 비까지 내리니 촉촉한 대지가 뿜어내는 기운조차 반갑기 그지없다.


성찬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온통 흐린 기운이 맞서지만 춥진 않아 다행이다. 가벼운 카디건 하나 입었을 뿐인데 견딜만한 걸 보니 금방 기온이 오를 것 같다. 습기가 많아서 그렇겠지만 봄을 느끼기엔 과한 습도라 어쩔 수 없다. 정리를 하고 집으로 달려오는 시간이 잠시 혼자서 봄을 가지고 품었다 놓아주는 것만 같다.


몇 시간 왔다가는 딸의 흔적에 여기저기 늘어져있는 허물을 찾아 정리하기 바쁘다. 어째 지나가기만 해도 그렇게 흔적과 자리가 남는지 모르겠다. 세탁기에 허물을 넣어놓고 먼지를 털어내고 정리하다 보니 금방 하루가 간다. 딸이 선배 결혼식 참석하고 끝나도 한참 지났을 무렵 전화를 하니 안 받는다. 한참 뒤 전화를 걸어 선 대뜸 한다는 소리가 교수님이 오셨다면서 사회생활하느라 바쁘다는 앙탈을 부린다. 그야말로 자기도 눈치 보는 생활을 한다는 걸 에둘러 말한다. 그냥 웃음이 났다. 어째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딸이 그나마 연구실 그늘 아래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니까.


저녁나절 동네 마실을 나갔다. 저녁을 먹고 나니 부담스럽게 배가 불러와 산책을 간 것이다. 신촌은 그야말로 젊은이들의 장터다. 무리 지어 여럿이 부르는 버스킹에 매번 똑같지 않은 인원이 꾸리는 무대가 있다. 비가 그쳐 더 많은 인파가 쏟아져 온 듯하다. 저녁은 따스한 기운이 감돌고 아직도 남아있는 벚꽃과 상큼한 밤의 기운으로 인해 봄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 어디선가 라일락 향내가 실어온다. 이런 시간이 금방 훅 하고 지나가 버리면 어쩌나. 짧고 아쉬워 더 안타까운 시간인 봄 중심에 서있다.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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