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복수
남편이 킨텍스 전시 때문에 저녁식사 예정이라더니 일찍 퇴근했다. 집으로 들어서며 손에 들린 비닐을 들이민다. 가끔 이런 횡재도 있다. 스티로폼 도시락에 따끈한 찐빵이 담긴 비닐봉지다. 자랑스럽게 주면서 하는 말이 내 선물이라며 사 왔다고. 아직도 온기 남은 찐빵이 하얀 도시락에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힌 채 소담스럽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 개 집어 하얗고 뽀얀 배를 반 갈라 남편 입에 먼저 넣어주었다. 최근 먹어본 찐빵 중에 제일 맛있다며 직접 만드는 거 같아 지나가면 다시 구매해 와야겠단다. 한여름에 웬 찐빵이냐 싶지만 공장식 호빵도 아니고 통단팥이 듬뿍 들어간 팥소 한가득에 발효도 잘 되어 냉동된 제품을 찐 것과 사뭇 달랐다.
그냥 찐빵 몇 개를 나눠 먹었을 뿐인데 남편과 나는 금방 배 불러와 저녁 생각이 없게 됐다. 이럴 땐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 와야 한다고 했지만 포슬포슬한 찐빵 맛에 그냥 하는 소리다. 어쩐지 출출할 때의 맛과 부드럽고 가벼워 포슬한 촉감, 속을 가득 채운 달지 않은 통단팥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그냥 육천 원의 행복이다. 스티로폼 도시락엔 5개의 찐빵이 나열되어 있다. 한 개를 먹고 두 개째 먹으려니 많아 반쪽을 남편에게 건넸다. 돌아온 대답은
"난 남이 먹던 건 안 먹어."
반 갈라 한쪽만 베어 먹으려 나머지 반개를 들이밀었지만 먹던 거라 안 먹겠단다. 기껏 고마웠던 맘이 싹 가셨다. 저기 안드로메다로. '배불러 고만 먹을래' 하던가 아님 '자기 먹어' 해도 될 텐데 그렇게 밖에 말 못 하는 그가 미웠다. 반쪽을 마저 먹으며 눈 흘기고 저녁을 주지 말까 보다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저녁은 먹어야 한다니 쌀 씻어 밥 짓고 상을 차렸다. 찐빵까지 사들고 오는데 정말 내 생각나서 사 왔겠나. 말만 그런 거지. 그럼에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고선 같이 나눠 먹는데 갑자기 들어오는 펀치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나를 위한다면서 정작 좋아하는 건 사 오지도 않고 가끔 주머니에 얻어온 초콜릿을 건네는 정도면서. 평소 본인 좋아하는 과자와 강냉이를 사며 굳이 부인 생각나서 사 왔다고 하는 그 센스는 어쩐지 못 미덥다. 뭘 좋아하는지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고 본인이 먹고 싶은 걸 사 오면서 내 생각 한 척 포장하는 것도 나이 들어가며 얻는 지혜다. 그러려니 하지만 어째 남편은 자기가 잘 한 걸 뜯으면서 그렇게 다 까먹는 야속한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오늘도 좀 속아주고 웃어넘기련다. 역시 난 대장부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