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작가 JaJaKa
Nov 06. 2024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지금은 이런 질문을 거의 듣지는 않지만 10대나 20대에는 종종 이런 질문을 듣고는 했다. 이상형이라......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상형을 얘기해 봤자 이상형을 만날 가능성도 극히 드문데 이상형을 얘기할 필요가 있을지...... 사실 이상형이 따로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는데 말이다.
특히 과거에 소개팅이나 미팅에 나가게 되면 상대 여자에게 흔히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였다.
나는 그때 뭐라고 말했지? 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대충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나 싶다.
“일단 마음이 착해야 하고요. 저랑 얘기가 잘 통할 수 있는 상대여야 합니다.”
그럼 상대 여성이 바로 이렇게 물었던 것 같다.
“어머, 외모는 안 보시나 봐요. 다른 분들은 외모를 먼저 말씀하시던데.”
“외모를 안 보기는요. 저는 청순한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합니다. 긴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귀엽고 청순한 외모, 키는 웬만큼 컸으면 좋겠고 늘씬했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면 뭐 헤헤헤.”
그때는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비슷하게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내 말을 들은 상대방의 반응은 여러 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청순한 스타일의 여자요? 연예인으로 치면 누구?”라고 가볍게 묻는 사람도 있었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여자 만나기 힘드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가 물어봐서 기껏 대답했더니 그런 소리나 하고 말이야.
“꿈이 참으로 크시네요. 하하하”라고 어이없다는 듯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이상형이라니깐 참.
“그런 여자가 본인을 만날까요?”라고 너는 거울도 안 보고 사니? 네 주제를 알아야지, 라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며 대놓고 으르렁 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서 그저 대답한 것뿐인데. 너무 과했나?
현실하고 이상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잘 모르고 지낸 적도 있지만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다 보니 이상형은 그저 이상형에 지나지 않는 뜬 구름을 잡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자신의 이상형을 만난 사람이 있을까? 내 주위에서는 없는 걸로 보아 거의 없지 않나 싶은데 뭐 걔 중에는 자신의 이상형을 만난 사람도 있기는 할 것 같지만 아마 거의 드문 일일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묻는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요즘에도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아니네요.”라는 대답이 백이면 백 되돌아올 그 질문을 왜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참 그런 질문을 많이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뭐 여자에게 그쪽은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고 많이 물어보기도 했으니 그렇다면 피차일반이라고 해야 하나.
소개팅이나 미팅에 나와서 굳이 이상형을 왜 묻는 것인지, 그 자리에 나와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딱히 할 얘기가 없어서 그랬던 걸까? 이야깃거리가 없다 보니 그냥 하는 얘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20대 때 소개팅이나 미팅에 나가서 상대 여자에게 흔히 받는 질문 중의 다른 하나는 “여자를 볼 때 어디를 먼저 보세요?” 였다. 물론 남자인 내가 질문할 때는 반대로 “남자를 볼 때 어디를 먼저 보세요?” 라고 묻겠지만.
어디를 먼저 보다니. 사람을 만나면 어디를 먼저 볼까? 일단 전체적으로 훑어보지 않을까? 어떤 느낌이 드는 사람인지 대략 살펴보고 난 뒤에 얼굴을 좀 더 자세하게 보지 않을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후에 대화를 하던 뭘 하든 하지 않을까?
어찌 됐든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체로 눈을 먼저 본다고 대답하고는 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눈을 먼저 보았을지 의구심이 들기는 한다. 전체적인 얼굴을 보지, 얼굴의 다른 부분은 일단 접어두고 눈만 먼저 본다는 것은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어쩌면 “어디를 먼저 보세요?” 라는 질문은 시각적인 물음보다는 신체 부위 중 어느 부분을 중요하게 보느냐고 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더 이치에 맞는 것 같은데.
20대 혈기 왕성하던 시절에 한 번은 친구 녀석들 하고 술을 마시다가 “너는 여자를 볼 때 어디를 먼저 보냐?” 라고 누가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때 친구 녀석들의 답변은 이랬다.
나는 여자 다리를 먼저 봐. 나는 다리가 예뻐야 가슴이 설레더라고.
나는 여자 엉덩이를 먼저 보는데. 엉덩이가 쏙 하고 올라간 여자가 은근 매력이 있더라.
나는 가슴을 봐. 너는 그럴 줄 알았어. 뭐? 그럴 줄 알았다고? 가슴을 먼저 보는 게 뭐 어때서. 그러니깐 너는 그럴 것 같았다고. 평상시에도 가슴, 가슴 하니깐. 나는 가슴 큰 여자가 좋은 걸 어떡해.
그때도 나는 눈이라고 했다. 그때 친구 녀석들의 반응은 뭐야, 얘는, 지 혼자 순수한 것처럼 굴잖아, 라고 말했던 것 같다.
내가 상대방의 얼굴을 볼 때 눈을 먼저 보는 것은 사실인데도 친구 녀석들은 마치 내가 일부러 정답을 말하지 않은 눈길로 나를 꼬나보았다. 나는 얼굴 중에 눈을 제일 먼저 본다고. 뭐가 궁금한 건데.
잠시 얘기가 옆으로 샜다. 하여간 이상형이 어떻게 되든 상대방 이성의 어디를 먼저 보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결국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상대는 이상형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을.
차라리 이상형을 물어보기보다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적어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있으니깐.
나는 지금까지 연애를 하면서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이상형을 만난 적도 없고 이상형의 근처에 간 적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이라고 하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깐 포기하지 말고 기다려 보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도 있을 테니깐.
그러나 나는 기다리지 않으련다. 이제는 이상형을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젊지도 않으니깐.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