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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니발 Dec 22. 2023

영화 <중앙역>(1998) 리뷰

죄책감을 넘어 진정한 연민을 회복하는 여정.

    서로 다른 인물이 목적지를 향해가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로드무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재미이자 특징이다. 영화 <중앙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영화는 무정함이 낳은 최소한의 죄책감이 교류를 통해 어떻게 연민과 인간성으로 바뀌는지 보여준다.


    먼저, 주인공 '도라'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중앙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라가 일하는 이 공간은 너무나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면서 무질서한 모습을 보여준다. 도라가 지하철을 잡기위해 빨리 걷는 모습을 좌우 트래킹 숏으로 찍으며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강조해 긴박감을 올린다. 또한 열차 내부의 빈 공간을 부감으로 보여주어 갑자기 창문과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무질서함을 강조한다. 특히 한 소매치기가 살해 당하는 장면은 배경의 잔혹성과 영화의 서스펜스를 높여주며 '페드로'라는 인물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하는 도라 역시 속물적이며 인간적인 정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녀는 문맹인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대필하고 보내주는 일을 하며 삶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그녀는 편지를 스스로 판단하여 진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지는 과감히 버려버린다. 게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어머니를 잃은 '조슈아'를 챙겨주는 척하며 돈을 받고 입양센터에 팔아버린다. 조슈아를 입양센터로 보내기 위해 도라와 페드로가 이야기 하는 장면은 문의 작은 구멍 사이를 통해 보여진다. 이로써 관객은 마치 둘의 대화를 엿듣는 느낌을 받고, 내용은 들을 수 없으나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직감할 수 있다. 또한 조슈아가 남겨졌을 때 색감이 차갑게 변하면서 조슈아의 시점쇼트를 통해 위협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보여주며 아이의 불안감을 표현한다. 


    도라는 입양센터가 아이들의 장기를 매매하는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조슈아를 구출한 뒤 아버지에게 데려다주려 한다. 이때 도라가 조슈아를 도와주는 동기는 연민보다는 죄책감에 가깝다. 본인에 의해 아이가 목숨을 잃을 뻔했고, 그 돈으로 본인은 TV라는 사치를 저질렀다. 게다가 가족을 찾지 않으면 자신이 아이를 키워야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따라서 도라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하여 조슈아를 돕는다. 그렇게 둘은 불확실한 길을 떠나게 된다. 이러한 삶의 불확실성은 둘의 대화에서 은연중에 드러난다. 1km가 천 미터라고 도라가 설명하자 조슈아는 천 미터 남은 것을 어떻게 아냐고 물어본다. 도라는 이에 그저 어림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조슈아가 아버지를 만날지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도라도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도 그저 어림잡아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다.


    종교의식 장면은 도라가 가지고 있는 죄의 무게를 보여준다. 인파속으로 사라진 조슈아를 찾는 도라를 보여주면서 감독은 도라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예수를 찬양하며 본인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빠르게 보여준다. 클로즈업과 정신없는 편집 이후 도라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이는 본인이 저지른 실수에 짓눌려지는 도라의 모습을 표현한다. 게다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오직 자신의 죄를 씻으려 할뿐, 그녀가 피해를 준 조슈아에 대하여 인간적인 연민과 사랑은 베풀지 않는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그녀가 무너지는 순간이 기독교적 처벌에서 비롯되었음을 은유한다.


    여정이 계속되며 도라와 조슈아는 점차 인간적인 감정을 교류하고 도라도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다시 편지를 써주는 일을 하고 편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관객은 그녀가 조슈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연민을 가지게 되는 도라의 인간적 성숙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그녀가 저지른 실수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게 해준다.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그녀는 화장을 하고 조슈아가 사준 드레스를 입는다. 다시 사랑받을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조슈아에게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며 그를 떠난다. 그 순간은 본인이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떠나는 행위가 조슈아에게 더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배려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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