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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니발 Dec 22. 2023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2017) 리뷰

물의 특성과 시대의 자세

    괴생명체와의 사랑이라는, 어찌 보면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그의 영화 <판의 미로>처럼 무자비한 시대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끌 어 나간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은 영화 속의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명확한 주제를 전달하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중요한 키워드는 ‘물’, ‘시대’, ‘소통’으로, 영화는 이분법적인 시대 상황에서 물처럼 스며드는 소통과 사랑을 다루고 있 다.


    먼저, 물이라는 키워드는 사랑과 생명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보여준다. 물은 기본적으로 정해진 형태가 없다. 또한 그만큼 상황에 따라 어떠한 형태로 변할 수 있는 물질이기도 하다. 이러한 물의 특징은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명확한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사랑의 모양을 정의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은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사랑이라는 다소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는 소재에 개연성을 더해준다. 또한 물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해준다. 왜냐하면 생명의 시작은 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물에서 왔다는 공통점이 존재하기에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영화의 마지막에 더 명확히 드러난다. 엘라이자의 흉 터가 아가미로 바뀌어 물에서 살아갈 수 있을 때, 인간과 괴생명체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생명 간의 사랑이라는 이미지가 표현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물음은 시대의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사랑을 옹호한다. 영화의 시기는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를 다룬다. 기본적으로 이 시대는 지금보다 차별이 심한 시대였으며, 엘라이자의 주변인은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다. 자일스는 동성애자이며, 젤다는 흑인 여성에다가 청소부라는 직업으로 무시받는다. 우리는 이들의 사랑이 배척받는 모습을 파이 레스토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일스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혐오뿐이고, 동시에 식당에 들어온 흑인 부부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난다. 여기서 종업원의 대사는 “여긴 가족식당입니다.”이다. 종업원이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는 너무나 날카로워 자일스의 마음 을 후벼판다. 그리고 자일스는 괴생명체와 대화하며 “가끔은 너무 일찍 태어났거나 늦게 태어 났나 싶어”라는 대사를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사진이라는 기술발전으로 직업을 잃은 사람이다. 게다가 시대는 그의 지향성을 지지하지 않는다.


    또한 냉전이라는 요소도 중요한데, 우주라는 기술발전에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맞붙던 시절, 이념의 경쟁 아래에 사람들은 당연히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눈이 멀었다. 이러한 결과로 극 중의 괴생명체는 남미에서 머나먼 미국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한때, 신이라 추앙받던 생명체는 경쟁과 기술발전의 시대에서 희생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영화관과 우주센터는 기술발전이라는 흐름 아래에서 어떤 지점을 지향하는가를 보여준다. 엘라이자는 영화관 위에 살며 영화를 즐겨본다. 그녀는 극중 후반에 영화라는 상상에 들어가 괴생명체와 화합하며 사랑하는 바람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우주센터는 지나치게 현실에 매몰되어 모든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 불을 뿜으며 상승하려는 우주센터와 영화관을 적시듯 하강하는 물의 이미지는 그 대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시대의 강압성은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스트릭랜드라는 캐릭터는 이를 더욱 확실히 보여주는데, 그는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주의자이며 의사소통을 빙자한 취조로 사람을 대한다. 그의 태도는 의심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 과정에서 폭력을 사용한다. 오히려 소통은 언어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엘라이자와 괴생명체 간에서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엘라이자는 호기심과 애정어린 시선으로 괴생명체를 바라보았고, 이 태도에서 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또한 괴생명체를 실험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엘라이자는 그를 있는 그대로 보았고, 똑같이 그도 그녀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다. 또한 드미트리와 엘라이자가 연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소련의 스파이로서 미국에 침투했지만, 소통할 수 있는 생명체에 대한 애정으로 미국인과 협력하는 모습은 소통을 통해 이념의 갈등을 넘어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괴생명체의 치유 능력 은 폭력과 반대되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소통은 죽은 세포도 다시 살려내어 치유를 전달하지 만, 불통의 결말은 암울하다는 모습을 우리는 엔딩에서 볼 수 있다.


    어쩌면 감독은 이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하여 미래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보여준 것일 수 있다. 극 중 캐딜락의 색처럼 청록색은 미래를 상징한다. 이때 영화에서 똑같이 청록색인 것은 물의 색깔이다. 우리는 청록색 미래를 향해 빠르게 달려야 한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결국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청록색 물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사랑을 나눈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처럼, 우리도 이해와 소통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감독은 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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