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옷 Apr 28. 2022

시차적응은 그만할래요

no more jet lag! 저녁형 인간으로 잘 살아보렵니다.

‘10시에서 2시 사이에는 꼭 주무셔야 해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미라클 모닝'


아무래도 세상의 시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에게 맞춰 흘러가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중학교 시절 자정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성시경의 <푸른 밤> '잘 자요~'를 듣고도 바로 잠들지 않았던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시차 적응 중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부모님과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고, 매번 "10분만 일찍 일어나는 게 어렵냐. 왜 아침마다 이렇게 바쁘고 허둥대냐"는 잔소리를 닳도록 들으며 자랐다.


오죽했으면 회사 임원면접을 보는데 "지원자분은 보통 몇 시에 일어나세요?"라는 대답에 오전 10시라고 대답했을까. 당시에는 오전 5시에 자고 정오에 일어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기에, 내 나름대로 일찍이라고 대답한 게 오전 10시였는데, 그 공간에 있던 면접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휘둥그레 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서야 '아뿔싸. 여기 출근 시간은 8:30이었지?' 하며 등골이 서늘해졌었다.


‘오전 10시’에 대한 변명이 잘 통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그 회사는 나를 뽑아주었고, 지금도 그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하지만 7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8시 30분까지 출근이란 전쟁과도 같다. 중고등학생 때는 잠이 오면 수업시간에 졸면 그만이었고, 대학교 때는 오전에 수업을 안 잡거나 힘들면 지각해버리면 그만이었다. (물론 모두 다 바람직한 학생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돈을 받는 회사에서는? 지각도 하면 안 되고, 졸아서도 안 되며, 1년 중 한 번만 지각하거나 졸아도 '불성실한 사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잠을 줄이는 수밖에.


나는 내가 이런 환경에 놓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일찍 잠이 드는 '아침형 인간'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몸이 힘들면 자연스럽게 밤에 잠이 들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충분히 잔 뒤 개운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웬걸.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12시 전에 자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TV에서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은 유전일 수도 있다는 내용을 접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유전적으로 저녁형 인간인  같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항상 아무도  12 전에 자지 않았고, 새벽 1시에도  함께 국수를 먹으러 나가기도 하며, 부모님은 주말만 되면 아침에 알아서 빵을  먹으라며  원짜리를 식탁에 놓아두고는 늦잠을 주무시곤 했다. 세상에, 나는 태생적으로 저녁형 인간이었는데, 아침형 인간처럼 살아가려고 했다니!


그전까지는 마냥 부러워만 했던 아침형 인간이었는데, 그때부터 아침형 인간 찬양 글에 왠지 모를 묘한 질투심이 일기 시작했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고 성공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질 때마다 괜스레 질투가 났다. 피부과에서 ‘10시부터 2시 사이에는 꼭 잠들어 있어야 해요. 그래야 피부가 좋아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내가 지금 인도네시아에 있다면 12시도 10시가 되는 건데?’하는 삐뚤어진 마음도 삐죽 솟았다.


30년간 '늦게 자는 사람'으로 살아온 나는 나름대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지는 밤 11시부터 블로그에 그날의 일기나 간단한 맛집 포스팅을 쓰기도 하고, 살짝 비좁은 욕조에 티트리 오일을 몇 방울 뿌려 반신욕도 하고, 책장에서 읽기 편한 책을 골라 읽기도 한다. 가끔은 필라테스 후 먹을 단백질 바를 만들거나 소음이 크지 않게 할 수 있는 간단한 베이킹도 한다. 그리곤 (아침 준비시간을 최소한으로 가져가야 하므로) 다음날 날씨를 확인하고, 다음날 입을 옷, 다음날 들고 갈 가방, 다음 날 아침을 모두 준비해두고, 심지어 다음날 회사에서 할 일도 생각해서 모두 메모해두고 잔다. 나름대로 보람찬 하루의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아침에 늘 헐레벌떡 출근하는, 여유가 없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보이는 것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회사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스스로 나는 만족스럽고 알차게 살고 있으니까. 예전에는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어 했지만, 요즘은 아니다. 그냥 이렇게 30년간 살아온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아침에 5분 일찍 나가고, 저녁 시간을 조금 더 알차게 쓰는 방향으로.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시간대가 있다. 그저 그 시간대를 조금 더 잘 활용하는 방향을 찾아 살아가야 하는 것일 뿐. 그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하는 방향이 아닌가 싶다. 사회도 점점 자율출근제로 나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나만의 시간대에서, 부지런한 저녁형 인간으로 살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저녁형 인간분들! 이제 시차적응 그만하고 나만의 시간대에서 부지런히 삽시다. 우리가 성공해서 ‘저녁형 인간이 성공한다’는 책도 써보자고요. 파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밤바다는 슬픔도 기쁨도 모두 삼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