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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소낙비 Jan 15. 2023

다니니까 즐거운 인생 part 1

결혼기념일

오늘은 비가 참 추적추적오는 13일의 금요일이고, 난 지금 딸내미가 끊어 놓은 독서실의 책상 한켠에 앉아 조용히 아이패드로 타이핑을 하며 이게 소리가 얼마나 나는지 조용히 칠 수 있는 정도인지 테스트로 글을 쓰고 있다. 약간은 신경쓰이는 정도의 소리이지만 최대한 천천히 치면서 소리를 줄이고 있다. 물론 사람도 아주 드문드문있는 오전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마침 스터디카페를 구경하기 위해 나선 아침에 어젯밤부터 부단히 비는 바람과 함께 옆으로 내리는 중이다.


지난 주말, 21주년 결혼 기념일이 낀 2박 3일간의 가족여행을 속초로 다녀왔었다.

여유롭다고 할 수 있진 않지만 그래도 1년에 두 번, 결혼기념일이 낀 겨울과 아버지 기일이 추석명절이 가까운 지라 핑계뿐이긴하지만 가을에 가능한 한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고 몇 번의 여행을 보냈고 이번에도 늘 그렇듯 부랴부랴 숙소를 예약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속초를 가기전 강구항에서 인생 최악의 게탕을 맛보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풍요롭다. 다 큰 애들을 차에 태우고 더우기 피터지는 싸움중인 딸 둘을 뒷자리에 모시고 다니는 길은 늘 노심초사다. 유딩 대학생과 입이 거친 고딩의 싸움은 거리의 문제다. 가까우면 터진다. 그래도 관전의 재미가 솔솔하다.

그렇게 조마조마 우리는 속초의 펜션에 짐을 풀고 오랜만에 중앙시장 닭강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엔 대세에 따른다. 뭔가 새롭고 괜찮은 게 없을까 고민속 방황을 하다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던 ‘만석 닭강정’으로 결정하고 시장통 옹심이 칼국수와 감자전, 가자미식해로 입가심을 하고 둘러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다행히 숙소의 방바닥은 지글지글거리며 추운 화장실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하긴 했지만 나름 가성비 좋은 숙소로 기억될 만한 조용한 설악산기슭의 펜션이었다.


2박 3일이라 오며가며의 시간을 빼면 뭐 남을 게 없었지만, 다음날이었던 토요일 우리 가족은 진짜 알차게 설악산케이블카를 타고 봉수대의 눈구경과 아내의 기억속에 이름이 헷갈리는 ‘영랑호’에서의 산책과 커피와 케잌이 맛났었던 ‘보드니아 BRC’의 시간은 저녁 노을지는 호수의 차가운 겨울 바람에 서로의 손을 맞잡고 걸었던 하루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영랑호를 가기전 들렀었던 한적한 ‘응골동치미 막국수’의 비빔 막국수와 옹심이의 맛들을 잊진 못할 것이다. 뭐든 배고플 땐 다 맛있다.


마지막날 우리는 강구항에 들러 홍게를 몇 마리 샀고, 장모님댁에 들러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쪽쪽 빨아가며 오랜만에 수율좋은 홍게에 감탄하며 열심히 게살을 발라대며 짧은 2박 3일의 긴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니 밤 늦은 일요일이었다. 물론 아쉬움에 일요일 오전 우리는 다시 ‘만석닭강정’을 차에 싣고 다니며 다시는 사지 말자는 다짐을 했지만 지켜지진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참 좋다. 참 즐겁다. 여행은 언제나 선물같은 시간을 가져다 준다. 물론 열어보면 실망도 하겠지만 어쨋든 떠나고 다니니까 즐거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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