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소낙비 Mar 12. 2023

왜, 그만뒀어?

후회한다. 하지만 또 후회하지 않는다.

1998년 오랜 백수시절을 청산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말이 언론고시 준비였지, 백수였다. 아침 집에 있는 것은 눈치 보이는 일이다.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도서관으로 나선다. 담배를 몇 대 피워대곤 이야기꽃을 피우다 겨우 들어간 도서관에서 빈둥빈둥..그런 세월을 2년인가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내가 희망하는 곳과는 별개인 꽃을 키워서 수출한다는 지역에 막 새로 생긴 지방공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경영관리팀이란 곳에서 행정보조 업무로 일을 시작했다. 뭐 할 줄 아는게 없었다. 그냥 눈치껏 열심히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전체 야유회를 주왕산으로 가게 되었다. 말이 이랬다.

"자네, 경영팀보다 생산팀에서 일해볼 생각없나?"

그렇게 난 알지도 할지도 될지도 모를 꽃을 키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물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냥 꽃을 키우는 회사는 아니다. 그 당시 동양에서 최대규모의 유리온실을 만들고 거기서 일본에 수출할 국화꽃을 생산, 유통하는 전문회사였으니 생각보다 나에겐 큰 기회의 땅임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고 그 기회가 나를 또 다른 기회인 현재의 모습으로 잉태하게 한 아주 미약한 출발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냥 힘이 남아 돌았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았다. 백수시절 몸에 쌓여 있었던 에너지를 방출하기엔 최적의 기회와 최고의 시간이었다. 꽃을 재배하고 배우고 또 기회가 넓어지고..두 발을 동시에 땅에 딛고 살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진짜 열심히 뛰면서 일했다.

"야, 너 이 회사 양자온겨?"

하루는 공공근로로 잠시 일손을 도우러 와서 빡세게 일을 할당받은 할줌마의 일갈이었다. 적당히라는게 없었던, 눈에 불을 켜고 일하던 나의 모습이 꼬깝게 보였나 보다. 


회사에 대한 열정이 회사에 대한 애정으로 바뀌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회사가 너무 좋았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 감사했다. 집에서 잠을 자다가도 회사에 가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진짜다. 믿어주시길 바란다. 회사에 처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이 거의 나였다. 물론 항상 회사문을 닫고 나오진 않았지만 밤늦게까지 꽃을 보고 모지라는 부분을 정리하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오늘하루도 보람찼네'였다.


그냥 까말,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고 회사가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회사를 왜 그만뒀냐고?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