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0년 전 나는 인도에 있었다. 어렸을 때 영상으로만 외국을 접했었기에 외국에 대한 환상이 컸었다.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고 싶었다.교환학생이라는 제도가 대학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가는 것이 대학생이 되면 이루고 싶은 가장 큰 로망으로 자리 잡았었다. 그래서 수능이 끝나자마자 다른 친구들이 술을 마시러 다니거나 여행을 다닐 때 나는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수능이란 족쇄에서 벗어나자마자 또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중간에 부분 환불을 받았고 미래의 나에게 공부를 맡기기로 하고 현재를 즐겼었다.
대학교 2학년이 끝난 후 휴학계를 내고 토플학원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영어공부에 집중했다. 교환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영어 성적은 갖고 있어야 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살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영어만 공부한 적은 처음이었다. 4개월 동안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영어공부에만 매진했고 힘들게 영어 점수를 만들었다. 하지만 교환학생은 영어 점수가 필요하지 않은 인도로 가게 되었다.
인도로 가게 된 계기는 아는 언니를 오랜만에 만난 그날부터 시작된다. 그 언니는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었는데 한 학기에 2천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생각보다 더 높은 비용에 머리는 혼란스러워졌고 얼른 학교 홈페이지에서 비용이 저렴한 나라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예산 안에 갈 수 있었던 나라는 루마니아와 인도뿐이었다. 두 나라 중 어디를 갈지 고민이 많았는데 루마니아를 검색했더니 세계에서 에이즈 환자가 가장 많은 나라라고 나왔었다. 에이즈에 대해 잘 몰라서 더 무서웠던 10년 전 어린 나에게는 루마니아라는 나라가 두렵게 느껴졌다. 참고로 지금은 인도가 더 두렵게 느껴진다. 또한 그 당시 혹했던 것이 있었는데 인도에 가게 되면 학교에서 장학금 150만원을 준다고 했었다. 그 돈이면 비행기 값이 해결되니 인도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왜 인도에 가는 경우에만 장학금을 주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인도 교환학생 선발은 영어 점수가 필요 없었지만 면접이 있었다. 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학교 사진관에 달려가 여권사진을 찍었다. 여권을 만들고 여러 예방주사를 맞으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인도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중간에 싱가포르에서 9시간 동안 경유를 했었는데 공항 밖으로 나가 교환학생을 함께 간 사람들과 강가에서 맥주를 먹었었다. 그때 강의 모습, 먹었던 맥주, 그날의 느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외국을 처음 느낀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었고 내 앞에 펼쳐질 외국에서의 행복한 삶이 저절로 그려졌었다. 하지만 인도에 도착하자마 내 생각과 정말 다른 삶이 펼쳐졌다.
<경유했을 때 찍은 싱가포르 사진>
첸나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반바지를 입고 있던 우리 일행들을 동물원 원숭이 보듯 대놓고 쳐다보는 인도인들이 무서워서 공항 화장실에서 급히 긴 바지로 갈아입었었다. 정말 더운 날씨였지만 긴바지를 입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날 이후 한 학기 동안 땀이 뻘뻘 나는 날에도 반바지를 입지 않았다. 외국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너무나도 다른 두나라를 짧은 시간 동안 경험했던 그 하루가 정말 신기했고 특별했다.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인도였고 그 당시엔 힘든 적도 많았지만 많은 성장과 크고 값진 경험을 선물해준 인도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