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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테난조 Dec 11. 2023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3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3화






“누구세요? 누구신데, 집 앞에서?”

 

“아, 안녕하세요, 유선상으로 인사했던 안효상입니다.”

 

“안효상? 누구신지 잘 모르겠네요.”

 

“어르신, 재건축 관련해, 일전에 위로금을 제시했던 사람입니다.”

 

“아, 그 사람이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이미 말씀했어요. 이사할 마음이 없다고.”

 

“어르신, 바로 내치지 말고, 일단,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조용한 곳? 다른 곳 가지 않아도 됩니다. 왜 굳이 돈을 씁니까? 집에서 이야기합시다. 먼 걸음을 한 이유가 있겠죠.”

 


8. 세입자는 열쇠를 꺼내 열쇠 구멍에 넣는다. 그러고 보니까, 아직도 열쇠를 사용한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디지털 도어록으로 교체했을 텐데, 세월의 흔적을 정통으로 맞은 현관문은 그렇게 나를 과거로 안내한다. 현관문이 열린다. 독특한 집 냄새가 뇌를 자극한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난 유독 냄새에 민감하다. 그렇기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게 꺼려진다. 솔직히 조금은 두렵다. 냄새는 눈보다 빠르다. 그게 항상 불만이다. 냄새는 통제가 어려워서다. 보기 싫은 것은 눈을 질끈 감으면 된다. 멀리서 느껴지는 실루엣만으로도 다가올 세계를 감당할 수 있는지 예상할 수 있어서다. 냄새는 불청객이다. 양해를 구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그냥 들어온다. 정말 화가 난다. 아주 불쾌하다. 내 영역을 아무렇지도 않게 침범한다. 냄새와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친놈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후각 능력이 있는가? 영웅이 될 수 있는? 절대로 아니다. 그저 후각이 예민할 뿐이다. 후각이 예민하다는 게, 특정 음식을 가리는 편식쟁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냄새를 편식할 뿐이다. 그래서 혼자만 피곤한 듯. 결국, 예민한 후각과 발달한 후각은 다른 의미다. 개처럼 멀리서 공기를 타고 날아오는 냄새를 맡지는 못한다. 굳이 따지면, 뒤섞인 냄새를 독립적으로 구분할 만큼 분석적인 후각 능력은 있다. 이는 저주다. 더 쉽게 피로해져서다. 나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자라면, 나의 고통을 십분[265] 이해하리라 믿는다. 문은 열린다. 냄새가 다가온다. 그리고 말을 건다.



오랜만에 만나는 진짜 사람이네.

영감님과 말벗이 되어줘. 부탁이야.






9. 약품 냄새와 섞인 알코올 향, 그리고 집안을 가득 채운 제사 향의 냄새로 머리가 어지럽다.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바로 이어지는 코를 시큼하게 하는 눅눅한 곰팡내는 강제로 신체적 변화를 일으킨다. 현기증 난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무엇이라도 잡아야 한다. 쓰러지면 무슨 창피인가. 잠시 벽에 몸을 기댄다. 1초 정도 기절한 것 같다. 분명히 기절했다. 정신을 차리니 약품 냄새, 알코올 향, 제사 향, 그리고 곰팡냄새가 뒤섞여 코를 마비시킨다. 홀아비 냄새다. 한동안 누구도 이곳을 방문하지 않은 듯하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서 지냈을까? 정신을 차리고 신을 벗는다. 거실을 바라본다. 수많은 사진이 걸린 벽이 눈에 띈다. 모두 한 사람이다. 그의 아내인 듯하다.



“어르신, 금실[266]이 좋아 보이네요, 온통 사모님 사진이에요.”

 

“금슬? 좋았었나? 그런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때가 언제인지.”

 

“거실에 온통 사모님 사진뿐인데요? 당연히 금실이 좋겠지요.”

 

“사진? 마누라와 사별한 지가... 얼추 10년은 넘었네. 나이를 먹어서 가물가물해요. 그렇게나 선명했던 마누라 얼굴이. 자네 말대로 금슬이 좋았으면 합니다. 떠나고 나니까, 잘해준 기억보다 몹쓸 짓을 한 것만 기억에 남습니다. 팀장님, 결혼은 했습니까?”

 

“예, 결혼했고 자녀도 있습니다.”

 

“그렇구먼, 옆에 있을 때 잘해. 자식은 필요 없어. 마누라한테 잘하라고. 젊을 때는 자식만 바라보며 살았어. 그 녀석들이 우리 희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힘들어도 내 자식들이 웃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지.”

 

“저도 비슷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면서 살기로 했지만, 지금 보시다시피, 어르신 앞에 있네요. 그놈의 자식이 뭔지.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 나와 닮은 그 녀석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가끔은 제 흉내를 낼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 어찌나 귀여운지.”

 

“그렇구먼, 자네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구먼, 그래서 글은 더는 안 쓰나?”

 

“퇴근 후, 쓰려고 노력은 하는데, 그게 잘 되지를 않네요. 몸이 피곤하니,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어찌 보면 이기적인 결정이었어요. 올곧이 저만 생각했어요. 당시는. 제 결정으로 인해 일어난 나비효과? 하하하 그만큼 가족만 고생이었어요. 제까짓 게 뭐라고, 무슨 글을 쓴다고. 가족만 고생시켰네요.”

 

“왜 그러나, 자기 꿈을 따르는 행위는 인생에서 아주 중요해. 인생은 말이야, 망망대해에서 나침반 없이 떠다니는 조각배로 시작해. 판자로 이어 붙여 만든 조각배는 정말 형편없어. 작은 풍랑[267]에도 뒤집힐 수 있거든. 무섭지. 나침반도 없는데, 방향도 잡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인생은 돛이 필요해. 인생의 바람을 탈 수 있는 돛. 우리는 그 돛을 꿈이라 말하지. 그렇게 우리는 성장해. 인생의 돛을 달고 바람을 탈 수 있다면, 가는 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속도가 나니까 제법 즐겁단 말이야. 그리고 조각배에서 돛단배로 성장하면 배의 규모도 커지니까. 그렇게 우린 각자의 돛단배에 사람을 태워. 처음에는 마누라를 그리고 자식들. 그렇게 가족이 탄생해. 안 그런가?”






10. 흥미롭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나저나 오늘 설득하러 왔는데. 자꾸 대화가 산으로 간다. 그동안 대화가 고팠던 게 분명하다. 침묵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아마 자네는 이미 돛단배 시절은 지난 것 같은데, 그나저나 말을 편하게 해도 될까?”

 

“그럼요, 어르신, 오히려 제가 불편했어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고맙네.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아, 돛단배? 그래, 인생의 파도를 타려면 돛이 필요해. 돛은 각자 이루고 싶은 꿈이지. 돛을 달고 바람을 가르며 파도 위를 달리는 기분, 정말 시원하고 짜릿하지 않나? 조각배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인생은 말이야. 망망대해야. 그 누구도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어. 나침반은 누구도 가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처음이야 신나게 잘 나가는 돛단배가 즐겁지만, 시간이 흐르면, 불안하기 시작하거든.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더군다나 이제는 선원이 있잖아. 나만 믿고 따르는 소중한 선원들.”

 

“맞습니다. 어르신. 제가 딱 그런 상황인 것 같네요.”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게 있어. 처음에는 말이야. 인생의 돛을 달면 여러 방향을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건 순전히 착각이라고. 인생의 돛을 달아서 갈 수 있는 방향은 하나야. 여러 선택지가 없다고. 오직 한 방향으로만 움직여. 우리는 그것을 ‘전진’이라고 하네. 바보 같은 돛단배지. 전진만 하니까.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뭔지 아나? 우리에게나 그 방향은 전진이지. 상대방이 볼 때는 후진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선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여튼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 그러니까 우리만 전진한다고 착각한다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알 수 없어.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아. 그저 신이 났으니까. 돛을 달고 항해할 수 있고, 함께하는 선원이 있으니까.”



즐거운가 보다. 처음 통화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경쾌한 목소리다. 노인은 이렇게 웃는구나. 함박웃음은 아니다. 즐거워 죽겠는데, 감정을 숨기는 웃음이라고 해야 하나? 손이 쉬지 않는다. 정신없다. 손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표현한다. 다만, 말과 손의 합이 맞지는 않는다. 조금씩 어긋난다. 그래서 불편하다. 말로 해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 마음을 바로 거둔다. 노인의 웃음은 귀해서다. 구연동화 수준으로 손과 발을 사용하여 무용담을 펼치는 게 취미인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오랜만에 안부전화를 하려 한다. 얼마만의 통화인가? 못난 불효자다. 대화는 더욱더 산으로 간다. 설득을 해야 하는데, 휴, 오늘은 포기해야 하나.



“어르신, 여기 온 이유는요, 다름이 아니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네, 그거야 천천히 들으면 되지. 말했잖나, 자네에게는 중요한 이야기라고. 자네는 지금 위기라고.”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하세요, 그래요, 직진인 줄 알았던 방향이 문제가 생기면, 그럼 그 돛단배는 어찌합니까?”

 

“그렇지, 바로 그렇지, 자네도 그게 궁금할 줄 알았단 말이야. 자네, 글은 지금도 쓰나?”


“글이요? 펜 놓은 지 꽤 된 것 같네요. 지금 하는 일이 워낙 많아서.... 그러니까 어르신을 뵈러 여기까지 왔죠. 그래서 말인데요,”

 

“흠.... 그렇다면, 집에 돌아가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만나 보게나. 그러면, 답을 줄 거야. 오늘은 피곤하니까 이만 돌아가게.”



to be continued...




[265] 십분 (十分): 넉넉히. 충분히.

[266] 금실 (琴瑟): 부부간의 화목한 즐거움.

[267] 풍랑 (風浪): 바람과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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