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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테난조 Jan 16. 2024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11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11화








36. 임 대표가 출근한다. 대표실로 곧장 들어간다.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원격제어 버튼을 누른다. 당분간 야근을 해야 한다. 밤마다 대표실에 들어가 녹음한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또한, 녹음기의 작동시간도 확인해야 한다. 은밀한 작전이 탄로 나지 않아야 한다. 귀찮지만, 감시카메라에 녹화된 영상 파일을 매번 지워야 한다. 승기가 언제든 확인할지 몰라서다. 빛의 속도로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삭제한 영상의 시간이 길다면, 승기가 의심할지 몰라서다. 그렇기에 빠른 움직임으로 대표실로 직행해 녹음기를 뺀 후, 바로 자리에 돌아와 녹음한 파일을 노트북에 옮긴 후, 대표실로 돌아가 녹음기를 다시 설치해야 한다. 녹음한 파일은 집에서 들으면 된다. 이제는 기다리면 된다. 밤이 오기를.      



“안 팀장님, 퇴근 안 하세요? 요즘 야근이 잦네요. 혼자서 왜 그리 바쁘세요? 저희가 먼저 퇴근하는 게 민망하네요.”     


“아니야, 야근이 아니라, 요즘 아내 몰래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거든. 그래서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는데, 집에서 공부하는 게 좀 그래. 눈치도 보이고. 그래서 그래.”     


“자격증이요? 무슨 자격증이요?”     


“아, 뭐 대단한 것은 아니고. 사회복지사에 관심이 있어서. 미리 공부해 따놓으려고.”     


“사회복지사요? 안 팀장님 성격과 잘 어울리세요. 그래요, 그럼 저희는 퇴근하겠습니다.

안 팀장님, 파이팅!”      



또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꼬리를 물어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하지만, 이는 대의를 위한 하얀 거짓말이다.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사회복지사? 은퇴 후, 이모작의 삶을 위해 예전부터 생각한 직업이다. 눈앞에 놓인 10년 후의 대한민국을 상상해도, 상황은 뻔하다. 노인들의 천국이다. 국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상황을 바꾸기는 어렵다. 정부를 탓하기도 지친다. 아니, 안 한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달려가는 이 상황은 선진국이 겪어야 할 정해진 현상이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어떠한 나라도 아직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 단지 그들보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속도가 빠르다는 게 다를 뿐이다. 미시적 관점에서 이를 해결하려면, 완화한 비자 정책으로 적극적으로 이민을 장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그러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처럼 단일 민족으로 성장한 국가가, 다문화 가정을 바르게 이해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급진적인 정책으로는 무엇도 해결하기 어렵다.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은 눈에 보일 만큼 혁신적이다. 그렇기에 피부로 체감한다. 확실하게 변한다고.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게 좋은가? 모르겠다. 더군다나 이런 정책은 특정 세대의 희생을 강요한다. 특정 세대는 누구일까?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써야 하는, 비참한 사태까지 몰고 온 주축 세대가 아니다.      



물은 네가 엎질렀는데,

내가 왜 치워야 하는데?      







37. 그렇다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멈춰야 하는가? 인간은 태생적으로 그럴 수 없는 동물이다. 인간은 퇴보를 멀리하고 진보를 선택한 어리석은 동물이다. 퇴보는 모두가 살길이고, 진보는 모두를 멸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살아가는 동식물 중에, 퇴보할까 봐, 뒤처질까 봐, 멀어질까 봐, 걱정하는 개체는 인간이 유일하다. 이리도 한심한 개체를 만류의 영장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한심한 개체에 속한 자로서 지구에 미안한 마음이다.      



나 또한 인간이기에 진보의 길을 선택한다. 그래서 미안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생물이니까. 다만, 급진적인 진보가 아닌 조금 느린, 기존의 시스템을 시나브로 변화하는 길을 걷고 싶다. 돌아보면 알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진보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 발자취를 들여다보면,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감내한, 특정 세대의 고귀한 희생이 선명히 살아 숨 쉰다.      



산해진미[277]도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급하면 부작용이 큰 법이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특정 세대, 즉 젊은 세대가 감당한다. 그렇기에 이민 정책으로 인구의 분포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적어도 30년 이상을 모든 세대가 천천히 감내해야 한다. 30년 후에도 대한민국이 다민족 국가로 변하지 못하면, 많은 지역은 유령 도시로 전락할 게 뻔하다. 다만, 이민 정책이 성공해 대한민국이 다민족 국가로 변하더라도 저출산 현상은 해결하기 어렵다. 이민 정책은 저출산 현상을 해결하지 못해 나온 임시방편이다. 저출산율을 높이지 않으면, 다민족 국가로 변한 들 대한민국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대한민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진다.      



일단, 그때까지 내가 살 확률은 없다. 그리고 다민족 국가로 변화하려는 국가 정책은 급진적으로 하기도 어렵다. 급진적인 정책을 국민이 바라지도 않아서다. 그렇다면, 저출산 고령화 사회는 죽기 전까지 해결할 수 없는 난제[278]다. 그렇기에 노인의 천국이 될 대한민국의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사회복지사로 인생 이모작의 꿈을 설계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행동이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러한 기회가 정말로 주어진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정말이다.

인간으로 환생은 사절[279]이다.      







38. 사무실에 홀로 남는다. 대표실로 들어간다. 빠르게 모든 일을 마친다. 도둑질도 한 번이 어려운 거다. 떨리는 마음조차 없다. 변태인가?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긴다. 집으로 돌아와 녹음 파일을 확인한다.



첫 번째 녹음.

“○○○! 오랜만이야, 나? 요즘 사업하느라 바빠. 그래, 너는 아직도 그 회사에 있는 거야? 그 회사에서 3년 차인가? 어느 정도 경력이 차면 이직하는 게 좋아. 그대로 있으면 능력이 없는 거야. 요즘 세상은. 이직을 생각해. 연봉 올리기도 좋고. 그나저나 그쪽 바닥은 어때? 여전히 그래? 조만간 보자고.”      


“안녕하세요, 임 대표입니다. 저번에 문의한 투자 건을 알아봤는데요, 이미 우리 쪽에 투자해 바람직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그쪽에 투자하는 것은 다시 한번 고려했으면 합니다. 리스크가 좀 있어요. 관련한 이야기는 곧 만나서 자세하게 말씀하겠습니다.”      


“응, 밥은 먹었어? 아이는? 그래, 오늘은 조금 늦을 것 같아. 기다리지 말고 아이들하고 먼저 밥 먹어. 응 이따가 봐. 그리고 조만간 시간 내서 중국으로 가야 해, 부모님이 우리 가족을 무척 보고 싶어 해. 아이들 여권 미리 준비하고.”      



별 것 없다. 일반적인 대화다. 다행인데, 조금 허탈하다. 아무래도 원하는 내용을 녹음하려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원하는 내용? 아니다. 그러한 내용을 우현이 입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정말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두 번째 녹음.

“승기야, 그때 그 기레기? 어떻게 됐어? 혹시나 흑심을 품고, 회사를 공격할지도 모르니까, 그 기레기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을 파악해. 그리고 관련한 지역에서 일하는 카쿠르터에 감시하라고 해.”     


“뭐? 헤어졌어? 아니, 얼마 전까지 깨가 쏟아지더니만,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아이들 양육권 문제는?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힘들고, 다음 주에 보자.”     


“잘 지내시죠? 벌써, 아저씨 하고 인연이 20년 째에요. 20년. 그때는 아저씨 얼굴만 봐도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었는데, 어찌나 돈 갚으라고. 하하하. 그러다가 서로 이렇게 친해졌어요. 솔직히, 아저씨를 아버지처럼 생각한 것 같아요. 이번에도 투자자 모집 감사해요. 저희 아버지요? 몰라요, 그 사람. 저는 잊고 산 지 오래입니다. 그 사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요, 아저씨, 조만간 찾아뵐게요. 늘 건강하세요.”



to be continued....



[277] 산해진미 (山海珍味): 산과 바다에서 나는 갖가지 진귀한 산물로 잘 차린 맛이 좋은 음식.

[278] 난제 (難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나 일.

[279] 사절 (辭絕): 사양하고 받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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