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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테난조 Feb 20. 2024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15화

하키토브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15화





안녕하세요. 안정호입니다.

Episode 15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현재 가제목인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는 '하키토브'로 변경해 곧 출시 예정입니다. 아마도 다음 달에 출간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마지막 챕터인 Episode 16은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약 2년 5개월을 본업과 병행해 글쓰기에 매진했습니다. 저는 함께하는 학생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글을 씁니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길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그리고 시작을 했으면,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그리고 '억지로, 꾸역꾸역, 느릿느릿'의 과정을 견뎌 내야 비로소 원하는 결괏값을 얻을 수 있다고.  


그리고

과정에 충실했다면,

결괏값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방향이 바르다면,

오늘이 아니어도

내일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   







47. 우현이는 그렇게 낚시터를 떠났다. 공식적으로 중국 출장을 갔다. 하지만, 한국에 언제 올지는 모른다. 다음 날, 승기와 낚시터로 가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승기는 금고 안에 있는 돈을 말없이 여행용 가방에 담는다. 가방에 오만 원권을 꽉 채운 후, 지퍼를 닫은 후, 내게 말한다.      



“우현아, 전세사기를 당했을 때, 깨달은 게 있다. 국가는 절대로 날 지켜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결심했어. 괴물이 되기로. 그리고 나는 블루 고스트의 제안을 수락할 거야. 오히려 그런 제안이 기쁘다. 선택해야 한다면, 부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잘못된 방향이라고 세상이 손가락질해도.

블루 고스트가 말하는 유토피아에 인생을 걸어 보고 싶다.      


지금도 봐라. 평생, 아니, 몇 세대가 지나도 모을 수 없는 돈이 눈앞에 있다. 너도 쓸데없는 생각 말고, 가족만 생각해. 자수하면, 감옥에 갈 일은 당연하고, 금고에 있는 모든 돈도 국가가 몰수 아니 강탈해. 정말 그러기를 원해? 그렇다면, 남겨진 네 가족은 어찌 살아가라고? 얄팍한 정의감으로 주위 모두를 힘들게 하지 마. 현명한 선택 했으면 한다. 내일 가족과 한국을 뜰 거야. 가방에 있는 돈이면,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으니까. 해외에 있다가 우현이이게 전화 오면 합류할 생각이야. 내일 회사에 출근하면, 급한 일정으로 출장이라고 말해 줘. 너도 빨리 마음 정리하고. 우현이와 내가 없으니, 대부분 일이 멈춰. 자연스레 주위에서 알게 돼. 우현이 말대로 길어야 한 달이다. 하지만 한 달은 도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야. 일 터져서 수사기관이 들이닥치기 전에 한국을 무조건 떠. 효상아, 다시 한번 말하는데, 가족만 생각해. 네가 자수한다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회사에 출근한다. 사무실 직원은 묻는다. 승기는 왜 출근하지 않느냐고. 승기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급한 일이 생겨, 베트남으로 출장을 갔다고 에둘러 말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출근해서다. 아무도 이 모든 게 가짜라는 사실을 모른다. 사무실 직원의 평온한 모습을 바라본다. 아니, 웃음꽃을 피운다. 모두 인센티브를 받아서다. 인센티브는 가짜다. 부자의 돈이다. 훔친 돈이다. 곧 다쳐올 그들의 불행을 생각하니 미안해진다. 승기는 한국을 떠나기 전, 앞으로 위클리 미팅은 없을 거라고, 모든 카쿠르터에게 공지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카쿠르터의 업무는 종료했으니, 받은 인센티브로 인생 2막의 기회를 찾아보라고 마지막 지시를 했다. 사무실 직원들은 승기와 우현이가 출장 중이라, 당분간 위클리 미팅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카쿠르터와 레벨 1 투자자가 받은 선물을 추적하기는 어렵다. 세상은 그들이 그렇게 큰돈을 받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무실 직원의 인센티브는 다르다. 회사 통장으로 지급해서다. 사무실 직원은 이를 모른다. 그래서 또 미안하다. 결국, 우현이와 승기는 몇 안 되는 사무실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떠난 셈이다. 경찰이 사무실로 들이닥치면, 이들을 추궁해 우현이와 승기의 행방을 찾으려 하겠지. 그래서 또 미안하다. 철저하게 홀로 남겨진 오늘이다. 외롭다. 괴롭다. 자꾸 눈물이 흐른다. 해맑게 웃고 있는 직원에게 미안해서다. 행여라도 있을지도 모르는, 착한 부자에게 미안해서다. 결정해야 한다. 자수해 사무실 직원을 구원할지, 모른 척하고 떠날지를.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눈을 감는다. 혼란하고 복잡한 심경을 무심한 초침 소리에 기대본다.      



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틱톡.     





48. 집이다. 소파에 앉는다. 졸리다. 눕고 싶다. 눈을 감을까? 그래, 눈을 감자. 잠시만 평화로운, 아무도 없는 무의 공간을 즐기자. 눈을 감으니, 당연한 소리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둠은 내 불안함을 걱정한다. 이내 바로 눈을 뜬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서다. 우현이가 그리고 승기가 따르고 싶은 과정을 생각한다. 부자를 속여 뺏은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분배하는 게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일인가? 그 일로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범죄다. 범죄라는 사실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모를까, 변하지 않는다. 정황적으로, 나 역시 공범이다. 정말로 괴롭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괴로운 감정은 가시지 않는다. 왜, 왜, 왜, 왜, 내가 범죄자가 되어야 하는가? 난, 난, 난, 정말 좋은, 너무나 기쁜, 행복이 넘치는, 우리만의 제국을 건설하고 싶었다. 악한 마음은 없었다. 카테피아를 구실로 돈벌이를?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수사기관에 자수를 왜 고려해야 하는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기존의 시스템을 전복해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발상은 위험하다. 카테피아는 그러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전두엽의 기능은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다. 마지막까지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 설득할 수 있을까? 세상이 말하는 범죄로 세상을 정화하는, 그런 일을 필요악이라고? 그렇게 설득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일로 난 떳떳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가슴이 답답하다. 소리를 지른다. 작은방에서 아이들이 나온다. 안방에서 아내가 나온다. 잠꼬대라고 둘러댄다. 슬프다. 또 슬프다. 무엇을 잘못했지? 왜 이렇게 돼 버린 걸까?     

 


오 주여, 제발 가르쳐 주세요.     



블루 고스트로 합류하면, 평생 도망자 신세다. 도망자로 살면서, 세상을 등지고 영웅 놀이를? 그럴 용기도 흥미도 없다. 그들의 과정이, 그들의 옳음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남겨진 가족이다. 혼자라면, 고민하지도 않는다. 취조실에서 모든 사건 과정을 실토한다. 남편 없이, 아비 없이, 지내야 하는 아내와 아이가 눈에 밟힌다. 아내하고 상의해야 하나? 그래, 상의하는 게 맞다. 일방적으로 통보한다면, 너무나 잔인한 처사다. 아내의 의견을 듣고 난 후, 결심하자.      



“여보, 혹시 내일 시간 돼?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집에서는 말하기가 어려워.”     


“무슨 일인데?”      


“그건, 내일 이야기해. 장소는 방금 문자로 보냈어. 이리로 와. 오후 1시까지.”     


“여기가 어디야? 좀 먼 곳이네. 굳이 거기까지 가야 해?”     


“응, 이 장소가 중요해. 그래야 대화할 수 있어.”     



30분 동안, 아내는 말이 없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30분 동안 운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승기 씨와 우현 씨는 한국에 없다는 소리지? 그래서, 지금 자기가 모든 죄를 안고 자수를 하겠다는 거지?”      


“모든 죄를? 상황이 그렇게 되나? 그래, 지금 너무 괴로워. 처벌을 받지 않으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     


“눈앞에 놓인 돈은? 이 돈은 다 어쩔 거야? 전부 자기 몫은 아니라며? 반은 승기 씨 몫이라며?”     


“여보, 어차피 범죄로 얻은 돈이야. 아무 의미 없다고. 그리고 승기도 한국 떠나기 전, 이 돈의 처분을 내게 일임했어.”     


“자기는 왜 그렇게 순진해? 눈앞에 보여도, 손으로 이렇게 만질 수 있어도, 꿈을 꾸는 기분이야. 평생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니, 생각조차 않는, 그렇게 큰돈이야. 그것을 승기 씨가 그리 쉽게 포기한다고? 승기 씨가 그리 선택했다면, 승기 씨 가족도 그렇게 선택했다는 뜻인데, 돈을 포기하겠어? 더군다나, 승기 씨 얼마 전 전세사기 당해서, 힘든 상황이라며? 그럼 더욱더 포기하기 어렵지 않을까?”     


“당신 이야기 들으니, 그럴지도. 그런데, 승기는 그런 친구가 아니야.”   

  

“자기야, 세상에 나올 때부터, ‘나 살인범이오.’라고 이마에 쓰여 있는 사람 있어? 없잖아. 자기가 자수해서, 모든 돈을 몰수당하고, 만약, 그 돈의 일부를 우리에게 갚으라고 하면? 자기는 감옥에 있는데?”  


“그럴 일은 없어. 승기는 그렇게 하지 않아. 내가 알아. 승기를.”     


“그럼, 자기는 승기 씨가 이런 선택을 하리라 생각했어? 우현 씨가 당신과 승기 씨를 중대한 범죄에 끌어들이리라 상상은 했어? 모두 아니잖아. 그러니까, 아무것도 장담하지 마.”     


“그럼, 여보, 나보고 어찌하라고? 자수하라고? 아니면 그들과 함께 범죄자가 되라고?”     


“나도 몰라! 모른다고! 이렇게 엄청난 일을 들었는데, 모른다고! 모르겠다고!”     






49. 아내는 원망 섞인 마음이 낚시터 공간에 숨 쉬는 모든 공기를 산화한다. 숨이 막힌 것처럼 답답해진다. 아내는 그렇게 또 운다. 이야기하지 말았어야 했나? 하면 할수록 망가지는 기분이다. 수백억이 눈앞에 있는데, 행복하지 않다니. 한참을 운 아내는 정리가 끝난 듯하다.      



“난, 용납 못 해. 허락할 수 없어. 자수하는 것. 너무나 이기적이라고 생각 안 해? 남겨진 우리는? 자기 마음 편해지자고, 벌받는 동안, 남겨진 우리는? 뭘 먹고살라고? 그동안 글 쓴다고, 알지?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그나마 우현 씨와 일하면서 좀 나아지나 싶더니만, 이게 뭐냐고! 자기는 우리 가족한테 예의가 없어. 예의가 없다고! 이렇게 자수해 떠나면, 평생 우리 못 봐. 그리고 평생 당신 저주할 거야.”     



예상은 했지만, 아내의 원망 섞인 단호함은 폐부를 찌른다. 틀린 말은 없다.      



“알겠어, 자기야, 그럼 당신 하라는 대로 할게. 어찌하면 좋겠어?”     


“대포폰으로 우현 씨가 전화한다며? 당신 생각 들으려고. 그때 제대로 매듭을 지어. 자수할 생각이면, 가족의 안전부터 챙기라고. 그렇게 도망치듯 사라질 생각 말고.”     



아내는 말없이 남겨진 여행 가방에 돈을 주섬주섬 담는다. 이유는 모른다. 또 운다. 돈이 좋아서 울고 있나?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는 돈 가방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방문을 잠근다. 그리고 또 운다. 아무래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순수한 아내를 공범으로 만든 느낌이다. 난 정말 쓸모없다. 이후로, 아내는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 그렇게 며칠이 또 지났다. 대포폰이 울린다. 우현이다.      



“여보세요, 나 우현이. 아직은 아무 일도 없지? 승기는 곧 중국으로 넘어올 거야. 결정했어? 어느 공간을 느슨하게 할지?”     


“우현아, 아무래도 난, 자수하려고. 자수해도 너희 둘 이름은 불지 않아. 다만, 남겨진 우리 가족 안전을 챙겨 줄 수 있어? 그렇게만 한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 너희 둘, 너와 승기는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처럼 생각할게. 아내와 내 아이 좀 부탁해.”     


“효상아, 나한테 가족을 부탁하지 말고, 네가 지키면 되잖아. 왜 자수를 하려고? 감옥에서 얼마나 살 줄 알고? 폰지사기 금액이 얼마인지는 알아? 어림잡아도 3천억은 넘는다고. 너 그거 혼자 뒤집어쓰면, 평생 감옥에서 못 나와. 다시 생각하는 게 어때? 생각만 조금 바꾸면, 마음도 편해지고, 모든 서민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고.”  

   

“우현아, 힘들고 괴롭다. 매일매일 죄책감이다. 정말 너희 둘 이름은 불지 않아. 친구로서 맹세해. 내가 너희 둘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처럼, 우현이 너도, 내 선택을 존중하면 안 될까?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우리 25년 지기 친구 아니냐. 자수해 감옥에 들어가면, 우리 가족 좀 가끔 들여봐 줘.”     


“알겠다 치고. 그럼 금고 안의 돈은? 어떻게 하려고? 다 태울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자수할 때 금고 존재도 말하려고. 그래야 사기당해 손해 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돌아갈 것 아니야.”     


“효상아, 진짜, 그 돈은, 그들에게 없어도 되는 돈이라니까. 그리고 그런 금고를 경찰이 발견하면, 이를 단독범이라 생각할 수 있겠어? 생각을 좀 해. 진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어야 해? 그래,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끝나잖아.”     


“그 한번이 힘들다. 우현아.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다. 미안하다. 그래도, 응원할게. 너희 둘의 새 삶을. 가족을 부탁한다.”     


“일단, 그 돈을 국가기관에 귀속하는 짓을 볼 수가 없네. 그 돈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블루 고스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알았어. 자수해. 그리고 남겨진 가족도 챙길게. 다만, 그 돈은 안 돼. 그 돈은 네 몫만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그 금고가 들키면, 일이 더욱 꼬여. 아무도 단독범이라 믿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해? 남겨진 가족만 지켜 준다면, 우현이, 네 말대로 할게. 고맙다. 못난 친구의 힘든 부탁도 들어주고.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정말로.”     


“그래, 너무나 아쉽지. 너의 결정은. 그래도 이해한다.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 지문 등록이야 다시 하면 되는데, OTP 카드는 2개밖에 없어서 회수해야 해. 바로 장소 문자로 보낼게. 사람 하나 보낼게. 그 친구한테 카드 전해 주면 돼.”     


“그래, 그렇게 할게. 정말로 고맙고, 정말로 미안하다.”     


“그래, 효상아, 이게 마지막 통화겠구나. 네가 어디에 있든, 네 마음이 편해졌으면 한다. 거기서도 편했으면 한다. 나도 25년 동안 정말로 고마웠다. 그리고 정말로 미안하다.”     






50. 아내에게 우현이와 통화한 내용을 말한다. 아내는 아무 말이 없다. 차라리 그때 돈을 더 담으라고 할걸. 그래도 우현이가 가족을 챙긴다고 하니 안심이다. 아내는 여전히 날 투명인간 취급한다. 이미 결심한 듯하다. 내가 없는 삶을 살아가기로. 문자가 왔다.      



마포대교, 13번 가로등

오후 11시.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온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은 조금 쌀쌀하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는 신호다. 다리 아래를 바라본다. 새까맣다. 이내 현기증이 올라와 하늘을 바라본다. 보름달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역시 보름달은 아니다. 모두가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주님은 날 이해하리라 믿는다. 곧 모든 게 끝난다. 하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인 셈이다. 카드를 건네면, 바로 자수할 생각이다. 아내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이들은 보지 않고 나왔다. 결심이 무너질 것 같아서다. 아내가 잘 설명하리라 믿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해야 한다. 그게 나라서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 그래야 시스템은 좋은 방향으로 진보할 수 있다. 안효상으로 살아간 날은 오늘이 끝일지 모른다. 설사, 나의 날은 끝나도, 나의 날은 끝나도, 나의 날은 끝나도….     



“안효상 씨?

임 대표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아 넵, 여기 카드. 그럼.

아, 아, 왜 그러세요?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말라고! 아아아아아악!!”     



우현이 말대로, 결국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걸까?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이 상황을 마주하기까지 수많은 전조현상을 놓쳤던 걸까? 조금은 억울하다. 매사 최선을 다했기에, 옳은 방향이라 믿었기에, 우리 셋은 하나의 방향을 추구한다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살면 복이 온다는 옛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왜 이렇게까지 어긋난 걸까? 최선은 차선이었을지도, 그릇된 방향으로 움직였을지도, 우리 셋은 동상이몽[284]이었을지도, 처음부터 열심히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설사, 나의 날은 끝나도 주님은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 곧 주님을 만난다. 그렇기에 안심이다. 인간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린다. 받아들이자. 벌어진 일이다. 더는 돌이킬 수 없다. 한국인 체형의 맞게, 어떠한 흔들림에도 사람의 몸을 지지해 주는, 단단한 압축률의 스프링을 자랑하는, 천국으로 안내하는 검은 침대가 저 아래서 나를 기다린다. 곧, 정신을 잃을 것 같다. 인체공학적으로 내 몸을 감싸는 침대의 감미로운 촉감을 맨정신으로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다. 우현이는 날 믿지 않았다. 승기도 알고 있을까? 승기가 걱정이다. 우현이의 무서움을 모르니. 우현아, 승기한테는 그러지 마. 많이 외로워진다. 혼자서는 세상을 살 수 없어. 우현아. 알겠지? 널 미워하면, 가족에게 해를 가할까 두렵구나. 그러니 원망 안 한다. 진심이다. 가족을 부탁한다. ‘꼭’이다. 의식은 흐려진다. 뇌의 스위치가 꺼진다. 너희들과 웃었던 행복한 날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백번을 사과해도 부족할 만큼 미안한, 더는 미안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한 사람이 떠오른다.      



미안하다.

마지막까지,

못난 사람이라서.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연례행사로 먹는 한우처럼

너무나 아낀 것 같아.     


과분한 너이기에

혹시라도 마음을 들키면

날개옷을 받아 하늘나라로 사라진

선녀처럼 나를 떠날까 봐      

항상 무뚝뚝하게 대했어.     


그래서 마지막 용기 내어

마음을 몰래 보낸다.     


내 사랑의 조도는

퀘이사의 밝기[285]를 뛰어넘는다.     


내 사랑의 면적은

방패자리 UY 별의 크기[286]를 뛰어넘는다.


너라서, 너여서 좋았어.      

사랑해. 너무나도.

그래서 말하기가 두려운 거야.


이 모든 게 사라질까 봐.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284] 동상이몽(同牀異夢): 같은 자리에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일컫는 말.

[285] “빅뱅 직후 6억 7000만 년 뒤에 관측된 이 퀘이사는 우리 은하보다 1000배나 밝으며, 태양 질량의 16억 배 이상에 달하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에 의해 구동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출처: 김병희, 『우주 최초 초거대 블랙홀과 퀘이사 발견』, The Science Times, 2021.01.13., https://www.sciencetimes.co.kr/news/우주-최초-초거대-블랙홀과-퀘이사-발견

[286] “이제껏 알려진 별 중에서 가장 큰 별로, 태양 반지름의 1,708배에 달한다. 지름은 24억 km(16AU)이고, 부피는 태양의 50억 배다.”

   (출처: 이광식, 『[아하! 우주] 우주에서 가장 큰 ‘별’(항성)은 얼마나 클까?』, 서울신문, 2015.01.17.,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1176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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