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운다_러다이트
안녕하세요, 카테난조입니다.
현업에 치여 업데이트가 늦네요.
그래도, 꾸역꾸역, 느릿느릿, 억지로.
가고자 하는 바람을 걷겠습니다.
1. 대테러진압부대로 발령받은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부대에서 대기 중이다. 첫 임무와 관련한 기본소양훈련을 받는다. 대테러진압부대의 주요 임무는 요인 감시와 곧 부여받을 임무다.
“최하진, B56 지역은 곧 네게 부여할 첫 번째 현장이다. 그곳은 현재 철거 중이다. 하지만, 남아서 지역을 지키는 무리가 다수 있다. 그들의 저항은 거세다. 우리는 이들을 디파퓰리스트(depopulist)라 칭한다. 디파퓰레이션(depopulaton)와 포퓰리스트(populist)의 합성어지. 인구 감소라는 대한민국의 절체절명[359]의 위기를 교묘히[360] 악용[361]한다. 또한, 그릇된 정보로 대중의 감정을 자극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들의 사악[362]한 본질[363]이지.
그들은 국가 질서를 해하는 포괄적인 테러리스트다. 시간 내에 모두 안전한 지역으로 이주시켜야 한다.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물리력 행사는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물리력을 행사해 빠르게 진압[364]한다. 흥분은 금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국가를 대신한다. 현장으로 출발하기 전, 배포한 자료에 적시한 관련한 주요 요인을 파악해.”
코리안 아포칼립스 이후로 급격하게 진행하는 지방소멸은 대한민국의 뼈아픈 사실이다. 이대로는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사회가 모두 붕괴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역사회의 붕괴를 막으려 다양한 정책을 진행 중이다. 놀랍게도, 코리안 아포칼립스 후로 출산율은 소폭 증가했다. 출산율의 증가는 놀랍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도 정책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유의미한 결과라는 방증[365]이다. 하지만, 인구 감소는 예정된 일이다. 인구 감소로 버려지는 지역사회가 늘어난다. 초기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거 및 복지 지원으로 지역사회의 재건[366]을 꾀했다.[367] 하지만, 실패했다. 인구 감소와 가혹한 자연재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정부는 현재의 암울한 대한민국 상황을 인정했다. 그리고 정부는 선택했다. 무너진 지역사회를 소각[368]하기로 한다. 소각은 말 그대로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작업이다. 정부는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인구를 늘리려 한다.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추진[369]하려면, 그들이 예전에 거주했던 비슷한 환경이 필요했다. 소각한 지역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환경으로 새롭게 조성한다. 사람을 수입해 인구를 늘리는 게 바른 정책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다른 민족과의 불협화음은 끊이지 않는다. 이질적[370] 문화의 충돌로 각종 범죄가 증가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관련한 범죄에 대해서는 한결같은 자세다.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도약[371]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통합 과정입니다.”
113번 훈련병, 유민서는 잘 지내고 있을까? 악바리[372] 같다. 그 연약한[373] 몸으로 수석 졸업이라니. 놀랍고 고맙다. 이유는 모르지만, 퇴소할까 봐 걱정했던, 눈길이 가는 동기였다. 그날도 그랬다. 화생방 훈련. 뒷머리를 질끈 묶은 말총머리, 갸름한 타원형 얼굴, 얼굴 크기에 비해 훤한 이마, 짙은 눈썹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눈, 적당한 높이의 콧대로 이어지는 둥근 콧방울, 그리고 입꼬리가 살짝 내려간 두툼하지만 작은 입술. 시원시원한 하체를 자랑하는, 특히 잘록한 발목에 도드라진 복숭아뼈가 매력적인, 균형 잡힌 몸매에 키는 한 165~166cm? 발 크기는...... 뭐지? 뭐지? 뭐 이렇게나 정확히 기억하지? 그만 생각하자. 꼭 변태 같네. 여하튼, 화생방 훈련 때 방독면의 문제가 있는데, 숨을 꾹 참고 버티려는 너, 정말 인상적[374]이었어. 이대로 더하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래, 그게 우리 첫 대화였지.
“113번 훈련병, 할 수 있겠어? 힘들면 말해. 도와줄게.”
“227번 훈련병, 무슨 소리야? 너야말로 중간에 포기하지 마.”
결국, 훈련 도중, 기절했다. 참 멋쩍다.[375] 생각해 보면, 체력은 내가 훨씬 약했는데, 어디서 솟아오른 객기[376]였을까? 남자에게는 질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전사처럼, 우리를 압도했지. 그렇게 대단한 너였는데도, 난 말이야, 네가 불안해 보였어. 오늘만 살아가는, 그래서 지금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모든 행동은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몸부림처럼, 언제라도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운[377] 너여서.
“113번 훈련병, 유민서. 그렇게 부서질 듯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227번 훈련병, 최하진. 남 걱정할 때가 아니야. 넌 좀 부서질 듯 열심히 하는 게 어때?”
“유민서, 내 말은 혼자서 다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동기사랑, 나랑사랑 아니냐.”
“그래, 말만이라도 고맙다. 하지만, 너한테 기대는 일은,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아. 최하진, 너야말로 혼자서 좀 하려고 해. 동기들 좀 그만 괴롭히고.”
사계절 내내 꽝꽝 언 빙판 호수를 걷는 애처로운[378] 너. 모든 남자 사람을 싫어할까? 도훈이하고는 잘 지내던데. 아니면, 내가 싫었던 걸까? 그래도, 신경 쓰인다. 신경 쓰인다고.
“그나저나, 우리 예전에 본 것 같아. 분명히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아닌가?”
“아니야.”
“아니라니까, 내가 기억력이 좋아. 분명해. 너도 생각 좀 해 봐.”
“아니야.”
“진짜라니까. 왜 안 믿는 거야?”
“아니니까.”
도훈이를 통해 종종 소식은 듣는다. 유민서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 도훈이도 모른다고 한다. 수석 요원이라서 그런가? 무슨 임무를 받았길래, 이렇게나 비밀스러울까?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본다. 어색하다. 일어나서 거울을 바라본다. 오른쪽 눈을 찡그린다. 거울에 비친 나는 반대로 따라 한다. 코를 만진다. 거울에 비친 나도 코를 만진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로 나일까? 오늘따라 타인처럼 느낀다. 핸드폰으로 얼굴을 찍는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얼굴과 비교한다. 다르다. 다르게 생겼다. 동일 인물이 아닌 것 같다. 나를 증명하는, 아니, 믿을 수 있을까? 어쩌면, 나라고 믿고 있는 자아는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혼란스럽다. 모든 게 가짜일지도.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게 이리도 없을까? 있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기억.[379] 설사, 사진과 거울에 비친 모습이 거짓일지라도, 과거로부터 이어진 기억은 우리가 누군가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조작된 로봇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과거로부터 이어진 기억에 유민서는 없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유민서도 곧 기억해 내리라. 분명히 어디선가 유민서를 만났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만났다. 벌써 새벽 3시다. 내일부터 현장 근무다. 첫 임무다. 자야 한다. 쓸데없는 고민은 무가치하다. 몸에 해롭다.
커튼으로 가려진 쇠창살
뾰족한 쇠창살 끝에 걸린
혐오스러운 진물과 섞인
형태가 없는 스산한 물체.
그 끔찍한 것이 다가온다.
그리고
나를 어루만진다.
괴롭다. 벗어나고 싶다.
누가 나를 구해줘.
제발.
2. 악몽이다. 매번 같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머리가 아프다. 편두통이다. 빌어먹을 꿈만 꾸면 몸이 고생이다. 늦게까지 무가치한 생각에 빠진 벌이다. 장갑차[380]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 중이다. 팀장님이 말씀한 디파퓰리스트를 곱씹는다. 곧 그들을 진압해야 한다. 진압의 조치는 어디까지 허용하는가. 그리고 디파퓰리스트는 진압의 대상인가? 그래서 이렇게나 많은 장갑차가 필요한가? 저항이 거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B56 지역에 사는 이들도 처음부터 디파퓰리스트는 아니었다. 사는 게 힘들어서 변질한 거다. 세상이 바뀌지 않으니, 그들이 변한 거다. 그들에게 무력을 사용해 보금자리를 빼앗는 게 올바른 행동일까? 아니다, 아니야. 이러한 생각은 부대원으로서 적절하지 않다. 트리플엑스 요원은 국가의 안녕질서를 유지하려고 선발된 인원이다. 국가의 안녕질서[381]를 스스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인, 더군다나 다른 생각은 위험하다. 왜 이런지 모르겠다. 나만 다르다. 이 부대 안에서. 나만 겉돈다.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냥 그러면 되는데, 그게 힘들다. 편두통이 더욱더 심해진다. 무가치한 생각에 빠진 벌이다. 무가치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B56 지역보다 다소 떨어진 장소에 도착한다.
“곧, B56 지역에 도착한다. 준비해. 일단, 디파퓰리스트에게 우리를 노출하면 안 된다. 다소 떨어진 지역에 내려서, 작전을 수행한다. 디파퓰리스트도 우리의 국민이다. 물리력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 사복조가 미리 진입해 그들의 정황을 파악해 설득할지 체포할지 결정한다. 디파퓰리스트들만 해결하면, 나머지 선량한[382] 주민은 자연스레 우리 말을 따른다. 사복조의 시간은 일주일이다. 일주일 후, 그들을 진압할지 결정한다. 다시 한번 말한다. 물리적인 행사를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사복조는 구청에서 요청한 대민[383]봉사지원자로 위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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