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운다_러다이트
8. 고라의 형벌 기간이 끝나간다. 태산처럼 쌓인 눈은 점점 녹아 물이 되어 사라진다. 그리고 신선한 공기를 벗 삼아, 지저귀는 새소리가 울려 퍼지는, 새롭게 새싹이 트는 생명의 계절인 봄의 시작이다. 미안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상황은 아니다. 형벌은 아직 끝난 게 아니어서다. 그렇게 많은 눈이 녹아서 물이 되어, 대규모 홍수 피해를 일으킨다. 여름에는 ‘노아의 분노’, 겨울에는 ‘고라의 형벌’ 그리고 봄에는 ‘통한의 아골’.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452]
‘통한의 아골’의 유래[453]를 말하자면, 아간은 유다 지파의 지도자다. 공적인 책임을 외면[454]한 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다. 여리고성 정복 시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군대는 아이성에서 패배하며 큰 고통을 겪는다. 그의 범죄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고통으로 빠뜨린다. 결국, 아간과 그의 가족은 돌에 맞아 죽고 화형당한다. 지도자의 실수가 공동체에 끼칠 수 있는 해악의 상징, 처형[455]당한 장소가 아골 골짜기였다. 고라의 형벌로 쌓인 눈이 녹아 대한민국 전체가 홍수로 움푹 팬 골짜기[456]처럼 보이기에, ‘통한의 아골’라 부른다. 이 시기가 다가오면, 홍수 대비로 분주하다. 역부족이다. 정말로 역부족이다. 신의 형벌을 겸허히[457] 받아들여야 한다. 서울도 예외는 없다. 많은 지역이 물에 잠긴다. 그래도 신은 우리에게 대피할 피난처를 제공한다. 매해 잠기는 지역은 일정해서다. 지대가 낮은 강남 3구인 A7, A8, A9. 가끔 강남 3구의 르네상스 시절을 국사책에서 만난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를 다투는 높은 땅값을 자랑하는 지역.’
한 150년 전에는 그랬나 보다. 현재의 강남 3구는 모든 건물 벽에 스민 물비린내로 사람이 살기는 쉽지 않다. 한마디로 인기척[458]이 없는 죽은 도시다. 초기 정부는 재개발로 이민자를 장려하려 했다. 하지만, 한해도 빠지지 않는다. 시계 알람처럼 울리는 ‘통한의 아골’로 모든 재개발은 물거품이 된다. 심지어, 이곳은 디파퓰리스트도 없다. 정부도 더는 관리하지 않는다.
혐오스러운 벌레와
도피자와 전과자
그리고 비렁뱅이[459]만 득실댄다.
강남 3구는
무법천지[460]다.
그래도, 겨울 시기는 그나마 살만하다. 고라의 형벌로 쌓인 눈으로 강남 3구의 시궁창 냄새를 잠시나마 잠재워서다. 국사책을 보노라면, 150년 전의 서울을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나 행복하게 살았던 건가? 그들만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던 거다. 우리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무엇이 대한민국을 자연재해의 집합소로 만들었을까? 대한민국은 이처럼 계절마다 자연의 형벌을 겪는다. 최상위 포식자의 무분별한 개발, 다른 개체를 고려치 않고, 자연이 모든 개체에 주어진 권리를 탈취[461] 후, 호의호식[462]하는 인간의 작태.[463] 자연은 더는 두고 보지 않았다. 자연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불태운다. 문제는 그 짓을 행한 조상은 모두 죽고 없다. 사실이다.그리고 그 최악의 형벌은 후세가 올곧이 짊어진다.
“인사하게, B56 지역 재개발 반대 추진 위원장일세.”
“안녕하세요, 최하진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그럴 리가. 모든 게 보안인데. 자네 수상해.”
“아니, 그게.......”
“장난 좀 그만 쳐. 우리 쪽에 힘을 실어줄 젊은 사람인데.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사람 찾기 어려워.”
“하하하, 그건 그래. 반가워서 농 좀 쳤어. 미안하네. 최하진 씨.”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