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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an 19. 2022

늦기 전에 떠나자.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러 갑니다"

이민을 결심한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1. 여기 계속 있다간 사람 잡겠다

2. 언젠가 아이도 가지고 싶은데 이런 생활로는 아이를 낳아서 기르기가 불가능하다

3.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늦기 전에 떠나자


한국에서의 직장은 너무 신나서 재미나게 일했기도 했지만 "9 to 11"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가정을 꾸려나갈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에게 9 to 11이라고 했더니, 오전 11 시인 줄 알더라. 아침 9시 일 시작하니... 8시 45분 정도에는 사무실에 도착해야겠고, 야근이 일상생활이어서 오후 11시는 거의 평범한 수준이었다. 초반에는 내가 일을 잘 못하나?라는 자괴감이 들었으나 입사 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려보니 일의 절대량이 어마 무시하였던 것. 


일이 익숙해지면 더 일이 들어오고, 국제처다 보니 항상 응급하고 나의 우선순위를 벗어나서 0순위로 달려드는 업무들이 많았다. 그 0순위를 하고 나서 내가 생각하는 우선순위 일들을 또 해야 했기 때문에 야근은 밥 먹듯이. 어느 정도 가끔 휴번기가 있는 타 부서와는 다르게 우리 부서는 항상 농번기였다. 


밖에서 보면 화려한 국제처. 사실 일도 판타스틱 재미난다. 보람도 상당했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라는 마음가짐으로 멘탈 강하게 쉴 틈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은 약 2년 정도였다. 2년 정도 후 멘탈이 흔들리면서 이렇게 있겠다간 사람 잡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바로 직장을 떠났냐고? 노노노노. 나의 카드값을 내주어 주는 곳은 직장이오.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나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짓이었다. 어딜 가더라도 직장 경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3년 이상은 꼭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견디면서 조금씩 계획을 하고 실행으로 살살 옮겨갔다. 언젠가는 한국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극한 한국 직장체험이 큰 몫을 단단히 하였다. Permanent Contract이니 안정적인 직장, 있어 보이는 간판, 또 일은 재미나니까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러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보람이 내 행복감을 가득 채울 만큼 크지 않았다. 솔직하게 내가 해 내는 일에 비하여 돈도 작다고 생각했었다. 월급이 좀 더 많았다면 행복감을 더 느꼈을까?  모를 일이다. 


월급의 80%는 욕 값이다


이전에 선배가 직장생활을 견디는 문장을 알려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월급의 80% 욕 값이다"라는 것이다 말을 듣고 나니 상사분께서 뭐라고 하시던 마음이  편해졌었다하지만 당시 우리 부서는 똘아이 질량 보존 법칙에서 총량 법칙을 지키고 있었는데, 타 부서에는 없는 하지만 총량 법칙을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그러한 똘아이분들이 우리 부서에 몰려있어서  부서에서 고마워할 정도였다. 


사실 "월급의 80%는 욕 값"이다 라는 말은 상사가 뭐라고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하지만 정신적 욕받이에 대한 멘탈이 강해지더라도 업무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지 않았을 때의 고통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2016년 11월 업무량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고, 퇴근 후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신발장 앞에 퍼질러 않아 그 상태로 미친 듯이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사랑 이야기해서 업무량을 조절하거나 안 되는 일들은 대강대강 좀 놓아버리고 했었어야 했는데, 사람이라는 것이 사람의 생각이 참 무서운 것이 힘들면 그냥  힘든 것만 생각이 나서 이성적인 생각이  안들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한 뉴스를 봤다. 일본의 일류대학인 도쿄대를 나온 신입사원이 이성적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보다 본인의 삶을 놓아버리는 선택을 했던 것. 


그 뉴스를 보게 된 달, 일 그게 뭐시기라고 그렇게 크게 울었던 11월이라는 달, 그 달을 기점으로 Exit Plan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나의 힘듦을 말하지 않았던 않았던 이유는 말해도 바뀔  같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내가 상사랑 이야기를 하고 업무개선을 요청해보았자 바뀔 것은 없고그러한 업무개선을 요청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가능성 100%.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분위기는 '일은 내가 준다, 너는 닥치고 내가 주는 일 해' 였으니까 말이다. 암튼 난 그렇게 부서가 싫어졌고나는 마음이 떠나고 있었다


남편 역시 내가 멘탈이 탈탈 털리는 것을 옆에서 보고는 이래서는 사람 잡겠다는 생각에 떠나는 것에 적극적으로 바람을 넣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영국인인 남편은 사실 좀 더 일찍 한국으로 떠나서 본인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직장이 계약상 안정적이고  내가 보람과 재미를 느끼고 있었으니 한국에 정착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었는데, 아 이 여자가 마음이 흔들리는구나, 많이 힘들어하는구나, 그럼 떠나보자! 가 된 것이었다. 


나도 힘들고그의 직장도 한국에서 보장되지 않으니 이리 이리저리 하여 환경을 바꾸기로 남편과 상의 , 1년이라는 시간을  주고조금씩 정보 수집  실행에 옮기자고 하였다가장 중요했던 재정 증명을 위해 우리가 결정한 것은 따로 떨어져서 있는 것이었다비자 장사를 한다고 말할 만큼 영국 비자는 엄청 비싸다신청하는 것만 해도 비싸고재정 증명하는 것도 엄청 비쌌다그래서 둘이서 직장을 그만두고손가락 빨면서 영국에 들어가는 옵션은 우리에게 불가했고나는 한국에 남아서 직장 생활을 계속하고그가 먼저 들어가 새로운 직장을 잡는 한국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역시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합류하는 것이  틀이었다


인생사 계획대로 되지 않는 영국으로 먼저 들어갔던 남편의 직장 구하기가 녹녹하지 않으면서 남편의 페이 슬립으로 재정 증명하는 것보다 통장에 있는 돈으로 재정 증명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게 되었는데이리하여  시간은 흘러 흘러가더라다행스럽게 남편은 1년 정도  극적으로  회사의 인사과로 취직이 되었다


남편이 이제 직장을 가졌으니! 이제 남은 선택은, (A) 내가 영국으로 합류하기 전, 계속 일을 하면서 돈을 벌 것이냐? (B) 그때까지 가지지 못했던 'Gap Year'이라는 것을 가질 것이냐?라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돈은 땅에서 나오지 않는 법. 어린 시절의 가난함과, 항상 부족하게 살아왔던 사람인지라, '일을 하지 않는다. 고로 돈이 나오지 않는다.'라는 것은 상당히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니까. 도전에 대해서 자꾸 두려워지니까 더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고급스럽게 포장해서 "나에게 주는 선물"로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어학을 해외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 호사스러움을 느껴보기로 했다. 많은 언어 중에 중국 어학연수를 선택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당시 국제처에 있으면서 중국의 경제적 파워를 상당히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직장에서 미국과 중국과의 교류를 담당하였었는데, 영어로 교류를 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중국어를 알면 큰 도움이 되겠구나를 느꼈다. 


암튼 돈 걱정이 컸지만, 그 걱정을 상쇄시켰던 가장  생각은 40살이 넘기 전에 다시 도전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나는 평소 배우는 것을 엄청 좋아하고뭐든 시도도전하는 것을 좋아했다29  시점에 장학금을 받고 파리에 공부할 기회가 생겼는데기쁜 것도 있었지만두려움이 가득했다

정작 파리에 가서는 엄청  놓고 한국에 돌아오기 싫어서 낑낑대었지만완전 새로운 환경에 도전한다는 것이 20 초반처럼 설렘이  것보다 '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사나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나 고민이 엄청 많았다그때 '아... 나이를 하나씩 먹어 가니까 두려움 때문이라도 어릴 때처럼 도전이 쉽지 않구나를 느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서른  중반까지 열심히 달려오다 여기에 평생 정착을 하느냐 마느냐에서 NO!! 가 나오고 나니언제 떠날 것인지가 관건이었는데결론은 떠날 거면 빨리 떠나자, 40 되면  늦고역시나 두려움이  커질 것이니까 지금 떠나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는 것은 진짜 두려운 일이다퇴직할 당시에 페이스 북에 적었던 글을 보면 5퍼센트만 설레고 95퍼센트 두렵다고 적었다지금도 그때의 두려움이 남아있는  당연지사. 하지만 100%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하기 전에 다시 도전했다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게 다가온다.


아래는 2018 1월에 적은 글이다. 


오늘 사직서를 냈습니다이제 공식적으로 00 0000 본부를  떠납니다너무나도 신나는 경험이었고 함께 성장했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차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95% 두렵고 5% 신납니다앞으로 이런 캐미가 있는 사람들을 만날  있을까 두렵고돈돈돈하면서  많이   있을지 두렵고내가 선택한  길이 옳은 길인지 두렵습니다안정적이고 나를 인정해주는 곳을 떠나  나이에 뭔가 다시 시작하려니 이런 선택을   자신에게 다시 한번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싼다는 선배의 가르침을 다시  자신에게 들려주지만... 이 요강은 나에게 너무 작은  같아서 다른 곳에  싸지르러 가니 응원해주세요. 5% 신나는 것은 열심히 열정을 다해서 달렸던 지난  3년간에 대한 나에게 주는 선물 같아서 그 조금 기쁘군요나는  정착을 못하는 건지쥐뿔  놓은 것도 없으면서 무슨 근자감으로 떠나는 건지나도 모르겠지만 그냥 지금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같아서 지금  놓고 가볍게 떠날 준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일벌 이러 떠납니다

 

Today, I had submitted my letter of resignation. So it is official that I am going to leave 000 soon. Had so much fun and did grow up with 000. Someone said that I am reckless and someone said I am brave to leave my permanent contract. 95% of me is really scared and only 5% of me is excited with my undecided future. I don't know when I can experience this strong teamwork ever again and don't know when I can have a stable job with good money. I am so scared to start again at 34 years old and can't get out of the thinking that I am too old for a new adventure. However, 5% of excitement should be a gift to myself for my past 3 years in 000 and a chance to step up myself. I am leaving with unreasonable confidence that I will be ok and should be ok with my undesigned future. I am leaving this 34 years old to make trouble. I need a strong mind instead of a bit of good luck. Time to move on. 


퇴직을 하고 고향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몇몇 따로 만났다그중  아이가 대단하다고 하길래솔직하게 겉으로만 멋있어 보이는 것이고 솔직히 걱정이 많다고 했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지금 우리 나이 35살에 대부분 정착하고손에 얼마 없는 것이라도 손에서 놓기 힘드는데 그걸 버리고 떠나는 것이 대단한 것이다"라고 하더라그렇게 좋게 포장을 해줘서 친구가 고맙다. 그 친구와 함께 같이 야경 보면서 나는 이전 대학 시절을 생각했었는데 친구는 저기  땅은 얼마인지를 생각한다고 씁쓸해했다. 순수했던 시절은  이제 끝인가라며...


2018 1 퇴직, 2018 7월까지 중국 어학연수 그리고 2018 11 1 드디어 영국에 도착하였다.  도착하고 어느 정도 적응한  바로 직장 구하기에 도전하여 너무나도 운이 좋게 2019 3월에 취직이


이민을 결정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결정하고 나서는  달리는 스타일이니 호기 좋게 퇴직하면서 “파운드 왕창 벌어 보겠습니다.” “ 많이 벌어서 장학 재단 만들겠습니다  허세를 펼치고 나왔다허세반 진심반이다진심 언젠가는 장학 재단을 만들어서 내가 받은 장학금처럼 나처럼 돈이 없어서 해외 경험을 하기가 어려운 친구들을 돕고 싶다. 진심 언젠가는 꼭 이루어야 할 일.

 

그렇게 허세 좋게 나왔지만현실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10 여자애들한테서 인종 차별당할 때도 영웅호걸은 항상 시련이 있다며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불 킥할 상황은 많다그래도 늦기 전에 무엇인가 도전할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이렇게 두근두근 도전하고 나니진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고 살 수 있을  같다


아침 9시 출근, 11시 퇴근이 아니라 이제는 아침 8시 30분 출근 5시 퇴근인 삶을 살고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 월급은 한국에서 받던 것보다 작다. 그래도 내가 여기서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스스로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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