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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n 23. 2024

몸보신해야 할 때

 몸보신해야 할 때     


 딸과 일행이 지리산 종주에서 돌아오는 날이다. 딸은 오후 3시경 구례 성삼재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왔다. 농부가 마중을 가야 한다. 오전에 수영장에 갔다. 낯선 얼굴보다 낯익은 얼굴들이 많다. 한 해가 다르게 늙어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중에 칠십 중반의 아주머니를 만났다. 여전하시다. 아주머니도 반갑다며 손을 내민다. 


 수영은 꾸준히 다니는 가베. 다리 아푼 거는 우떻노? 나는 허리 수술하고 근 일 년을 쉬었다. 의사가 살살 걷기 운동을 하라 캐서 수영장에 다시 나온다. 하나도 안 변했네. 

 수술 안 하고 그럭저럭 견뎌요. 대신 농사일을 안 해요. 

 꾀사리 농사 그만뒀나? 단감 농사도 짓는다 캤잖아.

 꾀사리 농사는 남 다 내줬고, 남편 혼자 단감 농사만 쪼끔 지어요.

 농사 안 지니 훨씬 낫제? 수술 안 하고 전딜 수 있으모 거기 낫다. 

 모르겠어요. 견디다 안 되면 수술할 수밖에 없다는데. 


 그런 이야기들 나눴다. 수영장에서 만난 오십 대가 육십 대가 되고, 육십 대가 칠십 대가 되었다. 팔십 대가 된 사람도 서너 명 된다. 수영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그나마 건강한 편이다. 요즘은 게이트볼이 아니라 파크 골프가 유행이다. 이삼 년 전만 해도 게이트볼 치고 온다던 육십 대가 지금은 파크 골프 치고 온단다. 노인이 될수록 건강에만 관심을 쏟는다. 운동 중독에 빠진 사람도 의외로 많다. 나도 수영장 개장 후 꾸준하게 다니니 수영 중독 환자인지 모르겠다. 수영장에라도 다닐 수 있으니 그나마 건강 유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 고장에 수영장이 생긴 지 십칠팔 년 됐다. 처음 수영장이 생겼을 때는 수영장 가는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아는 사람 천진데 수영장에 갈 수 없다고 버티고, 농부는 수영이 관절염에 좋다는데 왜 안 가느냐고 밀어붙였었다. 그때 이미 나는 허리 디스크와 협착증, 무릎 관절, 발목 관절이 어긋난 환자였다. 물에서 걷기만 해도 좋다고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윗담 형님이 끈질기게 끌어주는 바람에 따라나섰다가 여태 꾸준히 다닌다. 수영장이 있어 살아진다는 말을 할 정도다.


 점심 때다. 집에 오니 농부가 나가잔다. 귀찮다고 그냥 집에서 밥을 먹자니까 하는 말이 이렇다. 

 눌 자리만 보는 당신이 쇠고기를 먹으면 기운이 난다는데 고기 먹으러 가자.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며칠째 불면에 시달리고 머리가 무거워 책도 읽지를 못하겠다. 눈도 침침해서 일상생활이 불편할 지경이다. 건강의 불균형인가. 진짜 나는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가. 인삼이 효과가 있나.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곰탕에 인삼이 들었었다. 열흘쯤 됐나. 그때도 자꾸 기운이 달려 죽을 것 같았다. 농부가 저녁 먹으러 가자는 바람에 따라나섰다가 곰탕 한 그릇 먹었었다. 어지럽고 힘들던 몸이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사실 마음병이지 싶은데 영양부족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었다. 


 단골 한우 점에 갔다. 곰탕과 육회 작은 것을 시켰다. 나는 육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농부와 남매는 육회를 좋아한다. 육회는 농부 먹으라고 시켰는데 농부는 자꾸 내 앞으로 민다. 육회가 푸짐했다. 붉은 살코기를 채 쓴 배와 버무려 먹는데 나는 고기 맛보다 배 맛에 먹는다. 요즘 배 하나에 만 원쯤 한다던데. 배보다 배꼽이 큰 것 아닌가 싶었다. 한방 곰탕은 든 게 별로 없다. 인삼과 대추 하나, 고기는 제법 푸짐하게 넣었지만 고기 맛은 퍽퍽하고 질겼다. 좀 더 푹 고아야 제 맛이 날 것 같다. 어쨌든 푸짐한 점심을 먹고 오자마자 농부는 아이들 마중을 갔다. 


 아빠, 시원한 거 챙겨 오세요.


 딸의 전화에 농부는 수박과 맥주를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갔다. 내게 갔다 온다는 말도 안 하고 내 뺐다. 급할 것도 없건만 마음이 더 급한가 보다. 덕분에 혼자 홀가분하게 남았다. 밀린 일기도 쓴다. 내가 밥 하는 것을 싫어하는 줄 아는 딸이라 그런가. 저녁은 준비하지 말란다. 나가서 먹잖다. 2박 3일 산행하고 지쳐 올 아이들이니 몸보신도 시켜 보내야 할 것 같아 쇠고기나 돼지고기, 삼계탕을 하나 고민했는데 딸은 미리 저녁준비 말란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딸이 고맙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몸보신하며 살 나이라는 것, 손님 대접하기조차 힘겨워진 현실이 서글플 따름이지만 어쩌겠나.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데. 

               202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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