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월아 천이 그립다.
농촌살이 한 지도 40년이 다 됐다. 촌부로 살아오며 시부모님과 자식들 뒷바라지하다 보니 나도 노인의 길을 걷는다. 농촌의 현실은 갈수록 열악해진다. 농민은 늙고 옥토였던 들에는 이런저런 이름을 단 건물만 는다. 땅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귀농하여 농사를 지을 청년이 많이 아쉽다. 국가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내 걸고 귀농을 장려하지만 농민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는 귀하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했지만 토지가 사라지고 농민이 사라지는 농촌은 해가 바뀔수록 비어 간다.
나 역시 농촌총각 만나 농촌으로 들어와 늙어가지만 돌아보면 어떻게 그 힘든 시절을 살아냈나 싶을 때 있다. 예부터 농촌 부모는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어했다. ‘너는 공부 많이 해서 펜대 굴리며 편하게 살아라.’ 부모는 소처럼 농투성이로 살면서 자식에게는 농투성이로 살지 않기를 바랐다. 그만큼 농촌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열악하다. 자연과 더불어 살지만 자연을 즐길 여유를 가진 농민이 얼마나 될까. 모두 생활터전에 매어 먹고사니 즘이 우선이고 자식 뒷바라지가 우선이었다. 무슨 농사를 지어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나 노심초사하는 것이 농민의 삶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폭염 탓인가. 아침부터 짜증이 났다. 밤에도 열대야가 연일 계속된다. 소나기도 수시로 쏟아진다. 열대야보다 더한 것이 바로 습기다. 산속집인 데다 사방이 풀밭이니 습하다. 이삼일이라도 쨍쨍한 햇살 구경 했으면 좋겠다. 냉방기를 돌리고 제습을 해도 상쾌하지 않다. 자연바람이 그리워 금세 창문을 연다. 후끈 달아오른 바람이지만 풀냄새가 좋다. 복더위에 삼시세끼 챙기는 것이 고역이다. 점심때가 다가온다. 국수나 삶아야지. 야채를 채썰기 시작했다. 내 인상이 찌그러진 냄비 같았나 보다.
나가서 먹자. 바람도 쐬고
그럴까?
채 썰던 오이도 양파도 양푼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집을 나섰다. 이층 베란다에 걸린 빨래가 나풀거린다. 또 소나기 오려나. 비설거지 해 놓고 나가? 점심 먹고 올 텐데. 그 새 비 오랴. 그냥 가자. 그대로 등을 넘었다. 냉방 잘 된 승용차 타고 계속 바뀌는 풍경 바라보며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다. 내친김에 합천호를 향해 달렸다. 얼씨구! 하늘이 컴컴해진다.
우리가 비를 따라가는 것 같은데. 집에는 비 안 오겠지?
국지성이라 알 수가 없지.
그러면서 합천호를 향했다. 중간에 할머니 손칼국수 집에 들어섰다. 유명 짜한 맛 집이란다. 면 종류를 좋아하는 나는 손칼국수라는 낱말에 꽂혔다. 손님이 제법 된다. 신기한 것은 로봇이 음식 배달을 하는 것이었다. 전통 손칼국수와 맷돌 콩국수와 만두를 시켰다. 꽤 오래 기다려서 로봇이 배달한 점심을 먹었다. 면이 손칼국수가 아니다. 기계로 얇게 뺀 국수다. 농부는 좋아하겠지만 나는 손맛 안 나는 기계 면이 싫다. 제분 실이 있는 것을 보니 직접 밀가루 반죽을 해서 기계로 뽑나 보다.
손칼국수가 아니잖아.
국물이 담백하네.
농부는 입에 맞는 모양이다. 갓 치댄 생김치는 맛있다. 농부는 닭 칼국수와 들깨칼국수를 포장해서 가잔다. 면이 마음에 안 든 나는 포장은 싫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시켰다. 점심 한 끼 4만 원을 썼다. 합천호를 빙 둘러 오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따라 드라이브를 한다. ‘우리 동네도 비가 왔겠지? 빨랫줄에 걸린 빨래가 흠뻑 젖었겠다.’ 걱정하자 농부는 우리 동네는 비가 한 방울도 안 왔을 거란다. 그랬으면 좋겠다. 서둘러 돌아오니 뽀송뽀송 말라 있어야 할 빨래가 조금 젖었다. 다행히 가는 비가 잠깐 내렸나 보다. 빨래를 걷어 다시 물에 헹구어 널었다.
너무 덥다. 이젠 장마도 끝났으니 따끈따끈한 햇살이 났으면 좋겠다. 풀밭 집이라 습한 것이 마음에 안 든다. 가슴을 뻥 뚫어지게 하는 쌀쌀한 가을바람이 그립다. 시간은 계속되니 언젠가는 시원해지겠지. 북극의 빙하가 다 녹아버리는 지구는 어떻게 될까. 인간은 사막화된 지구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중국 둔황, 사막 속의 오아시스, 신비로운 마을이 떠오른다. 초승달 모양의 마을, 초록색 물이 흐르는 그곳이 실재한다니. 월아 천, 지금 그곳 날씨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