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감과 고집
단감주문이 들어왔다. 모르는 전화번호다. 지난해 먹은 단감 맛을 잊지 못하겠다면서. 우리 집 단감은 시월 중순이 넘어야 택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농부의 호통이 따라붙는다. ‘십일월 돼야 한다니까 또 시월 중순이라니 말을 제대로 해라.’ 나는 바짝 긴장을 한다. ‘아직 단감 수확 안 해요. 솎아내기 끝내야 정품 판매에 들어가요. 시월 중순 넘어 연락드릴게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한바탕 잔소리가 이어진다. ‘여보, 우리가 단감농사지은 지 몇 년이나 됐지?’ 농부의 잔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툭 던졌다.
농부는 잔뜩 화가 나 나를 쬐려 본다. ‘해마다 이맘때면 똑같은 말이 오가네. 문장도 토씨 하나 안 바뀌네. 어쩜 우린 천생배필은 맞나 봐. 두 사람이 똑 같이 고집쟁이니 죽을 때까지 심심하진 않겠다.’ 내 말에 농부의 눈꼬리가 내려앉는다. 올해는 단감 익는 속도가 더 늦을 거란다. 추석이 너무 빨랐다. 워낙 더워서 단감은 자라지도 못했다. 요 근래 겨우 찬바람 불자 단감 굵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단감은 하루가 다르게 익을 채비를 한다. 시중에 나갔더니 태추 단감이나 조생종 단감이 보이긴 했다. 단감은 날씨가 차가워질수록 식감도 좋아지고 당도가 오른다.
우리 집 단감은 농부의 허락이 떨어져야 일반 고객에게 배달될 수 있다. 맛과 당도가 제대로 올라야 수확을 하기 때문이다. 슬쩍 ‘우리가 단감 농사지은 지 얼마나 됐지?’ 물었다. ‘몰라’ 농부는 부드러워진 눈으로 나를 본다. ‘한 이십 년이 다 됐지?’ 과거로 돌아간다. 사십 대, 우리는 고사리 농사를 주업으로 하면서 아랫집 단감농장의 일을 도왔었다. 그때 동네로 귀농했던 친구가 단감농사를 짓고 있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지병으로 북망산으로 떠났다. 그 친구가 짓던 단감 산을 주인은 우리에게 부탁했다. 그때부터 단감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십 년이 넘도록 단감과 고사리가 주업이었다. 나잇살 늘면서 농사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고사리 농사는 남에게 내주고 단감농사도 조금만 짓는다.
강산이 두 번쯤 변해도 농부와 나는 막상막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감정을 금세 누그러뜨리고 서로 맞추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나잇살 덕인지 마음공부 덕일지도 모르겠다. 단감 수확 철이 오면 농부와 나는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보내자. 안 돼. 맛있다. 맛없어. 보내자. 안 돼. 밀고 당기지만 번번이 나는 농부에게 승복한다. 택배 보내라. 농부의 허락이 떨어지면 일사불란하다. 농사는 농부가 대장이고 판매는 내가 대장이다.
우리 집 단감을 기다리는 고객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도 진심이고, 맛있는 단감을 원하는 농부의 마음도 진심이다. 일찌감치 주문이 들어오면 노트에 기입했다가 농부의 허락이 떨어지면 홈페이지 광고도 하고 기 주문자에게 연락도 하고 입금확인하고 보낸다. 단감 맛있다는 말 들으면 힘에 부쳐 허덕이다가도 힘이 불쑥 솟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라. 단감이 빨리 익었으면 좋겠고, 잔고가 바닥나기 직전인 통장도 두둑해졌으면 좋겠다. 아무튼 거둘 게 있는 이 계절이 좋다.
여름 이불 빨래해 널고 봄 이불 폈다. 농부랑 단감 산에 인사를 갔다. 알밤도 지천이고 대추도 익어 터지지만 한 나절 기었더니 만신이 아프다. ‘아이고, 일 못해 먹겠다. 당신이 나보다 건강하니 좀 주워 오소.’ 농부에게 일임하고 단감에게 뽀뽀하고 왔다. 읍내 축제장 농산물 판매소에서 알밤 주워 오면 사겠다는데 돈 할 욕심부리다 병원비 더 나가겠다. 포기해 버리니 속이 후련하다. 가을아, 가을아, 동장군 막아놓고 푸지게 즐기다 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