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Nov 21. 2024

비상 걸린 가을철

비상 걸린 가을 철     


 거실에 난로를 피웠다. 가을은 짧고 겨울은 길 조짐이다. ‘타작을 해야 하는데. 소용도 없는 비가 와 이리 잦누. 나락이 꼬실라졌다.’ 촌로는 들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올해 벼농사는 흉작이란다. 누렇게 익어 일렁이던 황금들녘이 어느 날 보면 벼가 쭉정이로 변해 누운 논이 자주 눈에 띈다. 둥글넓적하게 푹 삭아버린 자리, 짚조차 거둘 게 없다. 나락 논은 나락과 피가 제멋대로 섞여 있다. 모내기 끝내놓고도 모가 뜬 자리 나 빈자리가 있으면 촌로는 모춤을 들고 논바닥을 기었다. 풀 한 포기조차 용납하지 않던 촌로도 사라져 가는 농촌, 기계로 모내기 끝내면 병충해 방지 약은 드론이 치는 세상이 되었다. 


 과수농가도 마찬가지다. 단감농사를 짓는 우리 집도 비상이다. 솎아내기를 해야 할 시긴데 반갑잖은 비가 수시로 질금거린다. 탄저병 올까 두렵다는 농부는 날마다 감산으로 문안인사를 간다. 찬바람이 불자 맛과 굵기가 달라지는 단감이다. 주황색으로 물드는 감산을 바라보면서 결실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만큼 몸도 고단하다.  


 농부를 따라 감산에 갔다. 탐스러운 단감을 따서 물기를 닦고 베어 문다. 아삭하고 맛있다. 첫 수확한 단감을 보내드린 제주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알이 어쩜 이리 굵고 맛은 또 어쩜 이리 좋아. 시중에서 산 단감 하고는 확실히 맛이 다르네.’ 감탄사를 연발하신다. 


 미국에 이민 가셔서 50년을 살았다는 선생님은 한국 나올 때마다 낯설단다. ‘여기서 자라고 공부하다 이민을 갔지만 이제 한국은 타국 같아. 나는 한국에서는 못 살겠어. 미국 내 집이 진짜 편하고 좋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이번에 들어가면 한국에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 목소리에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 마음이 그대로 내게 전해진다. 인터넷 글밭을 통해 알게 된 선생님이지만 큰언니처럼 든든하고 편하다.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산골에 젖어 사는 내게 제주도도 서울도 타국같이 낯설고 먼 길이다.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부디 세계 작가대회가 성황리에 끝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오기를. 사람의 인연이란 이어졌다 끊어지고 끊어졌다가 또 이어진다. 살아 있으면 만날 수도 있다. ‘어쨌든 열심히 글 쓰고 살아’ 그 말이 참 따뜻하다. 


 산비탈 감산에 올라서면 앞이 확 터여 시원하다.

 그러나 샛길을 사이에 두고 아래위 단감 과수원의 풍경은 아주 대조적이다. 농부의 정성이 깃든 우리 집 단감은 나뭇잎도 짙은 초록에 단감도 튼실하지만 길 위쪽 과수원은 엉망이다. ‘농사 포기한 건가?’ 까치밥 같은 단감이 달렸다. 감나무를 감아 오른 온갖 넝쿨손도 걷어주지 않았고, 감나무 아래 풀도 치지 않았고 감도 솎아주지 않았다. 

 

 태평농법인가? 감나무가 단풍 병이 든 것 같은데.

 태평농법이 아니라 착취 농법이다. 

 저리 관리를 안 하면 남의 감산 망치는 거잖아.

 아무리 가르쳐도 들어와 말이지. 나도 포기했다. 

 

 농부는 한숨을 쉰다. 길 위의 감 농사는 초보농부가 짓는다. 초보농부는 감 농사에 애착이 없는 것 같다. 농부가 늘 멘토 역할을 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어떤 농사든 주인의 발자국 소리에 자란다고 한다. 그만큼 농사는 주인의 정성이 들어야 결실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무릇 세상일이란 정성 안 들이고 얻어지는 것이 있던가. 특히 농사는 더 그렇다. 밭농사든, 논농사든, 과실수든, 생물은 주인이 키우고 보살피는 애착 없으면 결실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돈을 벌고 싶으면 어떤 일이든 그만큼 투자와 정성을 들여야 한다. 

 아직 젊어서 그런가. 할 일이 많아서 그런가.  

 품은 안 들이고 거두기만 하겠다는 것인지. 딱하다. 

 임대농이니 더 신경 써야 할 텐데. 산주가 보면 한소리 하겠는 걸.

 가르쳐도 듣지도 않는데 어쩌겠나.

 이런저런 농사 탁 접어버리고 단감농사에만 집중해도 먹고 살 텐데. 

 아직 젊어서 그래, 나이들면서 깨치겠지.

   

 농부 속도 내 속도 타지만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간 감산이다. 남의 농사를 감내라 배내라 할 수도 없다. 3년 전까지 우리가 가꾸던 감산이다. 노인이 된 우리가 감당하기엔 감산의 덩치가 너무 컸다. 마침 젊은 농부가 단감농사를 지어보겠다고 해서 넘겼다. 농사짓기 수월한 평지는 넘기고 가장 열악한 조건의 감산 한 조각만 우리가 농사를 짓기로 했다. 초보 농군을 가르치기 위한 점도 있었다. 


 농부는 빈틈없이 가꾸었던 감산이 망가지는 것을 바라보며 속상해한다. 

 나도 젊을 때 농사를 저렇게 지었어?

 아니야, 당신은 어떤 농사든 지극정성이었지. 소작농을 해도 내 것처럼 가꾸었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모두 우리 집 단감이 제일 맛있다고 하지. 소문났잖아. 우리 감과 다른 집 감은 맛이 다르다더라. 수영장에 갔더니 할머니들이 ‘단감 온제 나오 요? 그 집 단감 참 맛있던데. 파지 나오모 이자삐지 말고 갖다 주소.’ 그러는 걸. 수량이 적어서 내 맘대로 퍼내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지.


 그랬다. 단감농사 푸지게 지을 때는 퍼주기도 잘했다. 단감 농사 5분의 1로 줄였더니 퍼낼 게 적다. 칠십 노인 농부가 애써 지은 농사라 눈치를 더 본다. 물론 생계 걱정도 아니할 수 없다. 산다는 것은 민생고를 해결하는 일이다. 농민의 민생고 해결은 농사에 있다. 어떤 농사든 먹고살기 위해 짓는다. 칠십 노인이 된 우리도 농사짓기 힘들다. 일꾼도 귀한 가을걷이 철, 딸이 와서 힘을 보태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농가에서는 집집마다 자식들 불러 농산물을 거둬들이기 바쁘다. 아랫집 단감 산이 훤하게 비었기에 ‘저 집은 실농이네’ 했더니 아니란다. 일찌감치 자식들 불러 막 따내기를 했단다.


 맛이 덜할 텐데. 

 요새 단감가격이 좋다더라.

 우리는 왜 그렇게 안 해? 돈 된다는데. 

 꿈 깨소.


 나는 웃었다. 해마다 우리 집 단감을 먹던 손님은 시중에 나오는 단감은 맛이 없어 못 먹겠다며 감 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주문 전화를 한다. 수확하는 대로 따서 보낸다. 다음 주부터 택배 보내라는 농부의 허락이 떨어졌다. 단감을 껍질 째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집으로 왔다. 달디달고 아삭하다. 맛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