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 터진 김밥
낮 기온도 뚝 떨어졌다. 시렁에 걸린 시래기도 숨이 죽었다. 효자노릇 했던 가지나무도 된서리를 맞았다. 텃밭에 풋풋한 것은 시금치와 쑥갓이다. 쑥갓이 꼭 쑥 같다. 필요할 때마다 뜯어먹는 상추도 겨울을 나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상추도 부드럽지 않고 억세다. 씹을 맛이 있다. 상추를 뜯어 식탁에 올린다. 자급자족할 정도만 심은 것들이 제 몫을 한다. 채소 값 역시 비싸다. 음식 값도 모두 올랐다. 3천 원 하던 김밥도 3천5백 원이다. 서민 음식이라는 돼지국밥도 9천 원에서 일만 원 선이다. 외식도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치와 거리가 멀게 사는 촌부지만 가끔 외식하는 즐거움은 누린다. 그 즐거움까지 반납해야 할 것 같다. 최저 국민연금과 노령연금으로는 생계유지가 될 것 같지 않다. 무릎이 아프다는 농부랑 정형외과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는 퇴행성관절염이라며 노동을 줄이란다. 노인이 되면서 농사를 대폭 줄였지만 삭아가는 몸뚱이를 막을 재간은 없다. 염증 때문에 통증을 느끼는 것이라며 진통제 처방을 해 주며 연골주사를 맞아보겠느냐고 말한다. 농부는 일주일에 세 번 맞는 연골주사를 맞기로 했다. 첫 번째 주사를 맞았다. 그 사이 나는 단골 김밥 집에서 김밥 세 줄을 샀다.
김밥 집주인은 내 또래다. 시국 이야기를 하다가 김밥 옆구리가 터졌다. 김밥 집주인은 옆구리 터진 김밥 한 줄을 덤으로 준다. 살짝 옆구리가 터져도 맛있는 김밥이다. 옆구리 터진 김밥에 담긴 정이 따뜻하다. 농부 앞에 옆구리 터진 김밥을 펼쳤다.
“이건 덤이야. 옆구리 터진 것은 내가 먹을 테니 당신은 안 터진 것 드셔.”
“당신은 김밥 집에서도 덤을 얻네.”
“그러게. 덤이 더 맛있는 것 같지?”
“앞으로 단감 농사도 못 짓게 되면 김밥도 못 사 먹을 텐데. 어쩔래?
“내 복만큼은 살게 되어 있어. 나라가 안정되면 물가도 안정되겠지. 각자 타고난 복대로 살아. 미리 걱정할 필요 없잖아. 당신은 퇴행성관절염 초기라니까 잘 다스리면 괜찮을 거야. 난 그렇게 못해서 이 지경이 됐잖아.”
김밥이 참 맛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빛깔도 좋다고 했던가. 나도 여의도 광장에서 응원봉 들고 신나게 소리 지르며 피켓 들고 춤추고 싶다. 세상이 요지경처럼 돌아가도 산 사람은 살아간다.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 사람은 그 시대에 맞추어 살아왔던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변하는 대로 적응하는 것이 인간의 능력 아닐까.
이번 비상계엄령 선포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요구하기 위해 백만 인파가 여의도 광장에서 모였다. 그 백만 인파 중 젊은이의 흥겨운 무대를 봤다. 화려한 응원봉과 엘이디 촛불을 들고 윤석열 퇴진을 외치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예전의 촛불 집회와 달랐다. 송현주, 김우진, 박상연 기자의 글을 읽었다. ‘빛난 K시민 의식, 충돌과 갈등은 없었다. 대신 배려와 양보가 있었다.’고 했다.
노인은 사라지는 세대지만 젊은이는 떠오르는 세대다. 앞으로의 세상은 젊은 그들이 살아갈 터전이다. 젊은 그들이 지켜내야 할 민주주의다. 그들은 그들 방식으로 시대의 흐름을 읽고 거기에 발맞추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 길을 가는 세대가 젊은 자식들에게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식의 말을 경청하고 자식을 믿어주는 방법이 가장 현명하지 않을까. ‘그래,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잘할 것이라고 믿어. 지금도 잘하고 있어. 네가 자랑스럽다.’ 그런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수영 언제 올 거야? 단감 갖다 줘. 다 먹었어.”
“갈 때 전화 할게.”
단감을 싫어하던 딸이 저녁마다 단감 두 개를 먹는다고 풋 늙은이 엄마는 행복해한다. 엄마는 배를 곪아도 자식이 맛있게 먹으면 그냥 행복하다. 자기 입에 든 것도 꺼내 먹이고 싶은 것이 모정이다. 그녀에게 고맙다고 했더니 ‘맛있으니까. 단감을 두 박스 째 먹는 것은 진짜 처음이야. 우리 딸이 단감을 먹어 글쎄. 얼마나 입이 까다로운 아인데. 과일도 아무거나 안 먹어. 사고도 포도도 귤도 한 박스를 사면 반 이상은 썩어서 버려야 해. 그 애가 단감 더 살까? 물었더니 글쎄 응 하잖아.’ 그녀는 행복해서 입이 귀에 걸린다. 단감 맛있게 키워 줘서 고맙다고 한다.
우리 집도 늘 식탁에 단감이 놓인다. 과일 싫어하는 나도 단감은 들며 나며 먹는다. 알 감 끝나면 단감 주문도 뚝 끊어지는데 아직 단감 주문이 이어진다. 저장단감을 싫어한다던 고객도 한 박스 주문해 먹었더니 더 먹고 싶다고 재 주문을 한다. 제철에 나는 과일에 길든 사람도 저장단감 맛을 보면 계속 먹게 되는 것 같다. 덕분에 올해도 직거래는 목표달성을 했다. 우리 집 단감을 사랑해 주신 고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내년에도 단감을 맛있게 키울 수 있길 바란다. 물론 농부의 정성과 노력의 결실이다. 이미 퇴행성관절염 진단을 받은 농부의 무릎이지만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농사꾼으로 오래 산 사람은 대부분 농부 증을 앓는다. 젊어서부터 농사짓느라 고생한 농부니 그 몸인들 온전하겠나 마는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조금 느슨하게 농사일을 해야 할 것이다. 늙어가는 몸이 회춘할 수는 없다고 본다. 쇠약해지는 몸의 기능을 다스리면서 남은 나날을 살아가야 하리라. 옆구리 터진 김밥을 먹고 주문받은 단감을 박스에 담으며 슬쩍 농부를 위로한다.
“나는 이미 망가졌지만 당신은 이제 시작이니 잘 다스리면 괜찮을 거야.”
“당신이 의사가?”
“그럼, 내가 퇴행성관절염으로는 선배잖아.”
20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