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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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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Dec 24. 2024

달을 보며 어머님 생각

 달을 보며 어머님 생각 

   

  이층 창가에 앉았다. 햇살이 집안 깊숙이 스민다. 혼자 있을 때는 정신없이 글을 쓰다가 농부가 오면 딱 그친다. 저장도 안 하고 아래층에 내려가면 그냥 잊어버린다. 아차, 컴퓨터를 켜 놨지. 올라와 종료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이틀간 썼던 글이 날아갔다. 내가 그 글을 썼는데 어디 갔지? 내 머릿속에 남은 잔재는 있지만 문서란에는 없다. 또 날려 먹었군. 옛날에는 내가 쓴 글이 날아간 것을 알면 어찌나 애통하고 서글펐는지 모른다.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그때 그 순간의 심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고, 어떤 내용이었는지 어렴풋이 생각은 나지만 글을 쓸 때처럼 절실할 수는 없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대청소를 했다. 틈새마다 먼지가 쌓였지만 대충 한다. 나는 청소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나잇살을 산다. 좀 더러우면 어떤가. 산속 맑은 공기랑 사는데. 먼지 정도 마신다고 내 몸이 달라지겠나. 달라져 봤자 별 건가. 살아온 날보다 죽음이 가까운데. 편하게 살면 돼. 나는 좌뇌보다 우뇌가 발달한 모양이다. 밝고 편한 쪽으로 마음이 모인다.


 질 볼트 테일러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너무 심취해 봤던 탓일까.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오랫동안 깨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더 말똥거려서 슬그머니 현관을 나섰다. 감청색 하늘에 금빛 쟁반이 동그랗게 떠 있다. 달 옆에 띄엄띄엄 하얀 별들 몇이 반짝인다. 맑고 깊은 하늘이었다. 잔잔한 바다가 뒤집혀서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우리의 몸을 소우주라고 하던가. 싸늘한 밤기운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다. 살아있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나는 방금 마지막 장을 덮은 책 속을 거닌다. 뇌 과학 박사가 37살에 뇌졸중을 겪고 8년에 걸쳐 회복해 가는 과정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좌뇌에 온 뇌졸중, 혈관 기형으로 온 뇌졸중이었다. 그녀는 어린애로 돌아가 언어를 배우고 익히고 걸음마를 배우고 몸의 기능을 되살렸다. 그녀의 어머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뇌는 신비롭다. 좌뇌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어쩌면 젊은 나이라 뇌졸중을 이겼는지 모르겠다.


 시어머님은 아흔에 뇌경색을 겪고 뇌수술을 했었다. 가볍게 온 뇌경색이었다. 몸의 기능은 잃지 않았지만 뇌수술 후 말하는 기능을 잃어버렸었다. 처음에는 띄엄띄엄 말을 하기도 하고,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4년을 더 살다 돌아가셨다. 어머님이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현재의 심정이 어떤지 알고 싶었고,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싶었다.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어머님의 눈을 보며 싫고 좋음을 간파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학지식을 꽤 안다고 자부하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환자의 마음을 읽고 환자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을 만큼 나는 여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환자를 간병하는 일은 전적으로 환자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나를 접어버리고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렇게 헌신적인 며느리가 아니었다. 내 딴에는 환자인 어머님 마음을 헤아린다고 했지만 어머님보다 내가 우선 아니었을까. 두 어른을 오랫동안 모시면서 나도 지쳐서 허덕일 때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었다. 결국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셨고 일 년 뒤 돌아가셨다. 


 감청색 하늘은 깊고 은은하다. 달을 바라보며 어머님을 생각한다. 내게 마지막 하고 싶었던 말씀이 있었을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었을까. 임종 시 어머님은 편안한 얼굴이셨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얼굴, 눈빛이었다. 고부간으로 만나 삼십여 년을 함께 한 정은 산자인 내 몫이었다. 영혼이 떠난 육신을 이미 사람이 아니다. 숨을 쉬고 먹고 자고 해야 사람이다. 그 과정이 없는 주검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흙이나 먼지일 따름이다. 내가 살아있기에 볼 수 있는 달과 별이다.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다. 

 질 볼트 테일러는 뇌졸중을 앓고 뇌수술을 한 후에 잠을 많이 잤다고 한다. 수면은 뇌를 쉬게 하면서 신경을 활성화시킨다고 했다. 신경계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으로 수면을 권했다. 깊이 잠들어도 좌뇌와 우뇌의 신경회로는 각자의 역할을 해 낸다고 했다. 환자에게 묻고 답하기도 단답형이 아닌 환자가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한 질문이라고 했다. 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환자가 유추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묻고 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제에 대해 뇌 속에 저장된 파일을 꺼내 찾아내고 정리하는 과정도 의식을 키우는 일이다. 좌뇌는 고통에 민감하고 우뇌는 열반에 민감하다고 하던가.    


 다시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해 본다. 달과 별이 창가에 다가와 손을 흔든다.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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