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고양이 명아
고양이의 재롱에 시간을 잊는다. 고양이 입양을 하겠다는 지인에게 갖다 줄까 말까. 딸은 ‘엄마, 우리가 그냥 키운다고 해.’ 보내기 싫다는 거다. 철망 우리에 넣어 키우던 것을 며칠 전부터 처마 밑에 풀어놓는다. 낮에는 풀어놓지만 밤에는 야생 큰 고양이에게 해코지 당할까봐 철망우리에 넣는다. 아침에 철망우리에서 꺼내 놓으면 멀리 가지도 않고 구석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짚을 넣어 놓은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똥오줌은 가르친 적 없는데도 모래를 담아 놓은 통에 들어가 해결한다. 어찌나 귀여운지.
“너를 어째야 될까?”
배를 발랑 뒤집고 만져 달라고 보채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쉰다.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는데. 다른 집에 보내려니 마음 한 곳이 허전하다. 그새 정이 들었나보다. ‘정 안 줄 거야. 모른 채 할 거야.’ 그랬던 내가 수시로 고양이의 안전을 점검하고 먹이를 챙기게 된다. 애완동물을 받아들이면 사랑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심리를 생각한다. 내면에 깃든 외로움을 표출할 뭔가를 찾는 것이 인간의 본능 중 하나 아닐까.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 아닐까.
일주일 전에 분양한 고양이는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지낼 것이다. 먼저 입양 보낸 그 고양이는 사람에게 유난히 치대는 녀석이었다. 어미에게 버림받고 죽어가는 아기고양이를 거둔지도 한 달이 되어 간다. 두 녀석을 키우다 한 녀석을 분양 보낸 날은 남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슬펐다. 잘 울지도 않던 녀석이 긴 울음을 우는데 어찌나 짠한지. ‘너도 아는구나. 이별은 언제나 가슴 아픈 거야. 미안하다. 다행히 너의 형제는 어떤 할머니 집에 줬어. 사랑받으며 잘 자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맘 잡고 잘 자라야 해.’ 남은 고양이는 내 말을 알아듣는 듯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가만히 바라봤다.
우리 집에 남은 고양이는 어른스럽다. 눈치도 빠르고 잘 울지도 않는다. ‘명아,’ 부르면 살그머니 다가와 내 다리 사이에서 논다. 왜 ‘명아’란 이름을 지었나. 녀석이 집에 온 날 첫 마디가 ‘명아’였다. ‘명아’라는 이름을 부르면 나도 모르게 친정엄마를 떠올린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 꾼 꿈이 너무 선명해서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지 오래 되지 않았을 때다. 우리 집에는 애완용 작은 개 두 마리가 있었다. ‘명아’와 ‘그네’였다. ‘명아’는 잿빛 털에 흰 털이 섞인 귀가 쫑긋한 치와와 잡종이었다. 치와와보다 두 배 큰 덩치였다. ‘그네’는 하얀 잡종이었다. 영리했다. 내 말을 기막히게 잘 알아들었다.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그 즈음 나는 엄마를 잃은 아픔을 반려 견 두 마리에게 쏟았다. ‘명아’는 어른스럽게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행동도 의젓했다. 천방지축인 그네와 달랐다. 속이 꽉 찬 사람 같았다. 행동도 의젓했다. 나는 ‘그네’보다 ‘명아’를 더 좋아했다. 내가 쪽마루에 앉으면 ‘명아’는 내 옆에 와서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주인에게 치대지도 않았다. 이제 나는 고아구나. 찾아갈 친정도 없구나. 엄마는 부처님 곁으로 가셨을까. 환생하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슬퍼했고, 엄마가 참 많이 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지금도 선명한 목소리다. ‘이것아, 에미를 옆에 두고도 못 알아보는 네가 무지한 거다.’ 나를 째려보는 것은 ‘명아’였다. 깜짝 놀라 꿈을 깼지만 꿈은 너무나 선명했다. 여태 지워지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와 ‘명아’의 모습이다. 엄마의 영혼이 ‘명아’에게 깃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꿈을 꾼 다음 날 나는 ‘명아’를 안고 ‘엄마’라고 부르곤 했다. ‘엄마, 다음 생에는 부잣집 고명딸로 환생해서 엄마가 원하는 인생 살다 가야 해.’ 군담하곤 했다. 그 ‘명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날 나는 몇날 며칠을 우리 집 아래 위 숲을 뒤지며 ‘명아’를 찾아다녔다.
지금은 ‘명아’가 사라진 것처럼 엄마에 대한 내 슬픔도 사라졌지만 그 꿈만은 여전히 선명하고 ‘명아’란 말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 온다. 나는 고양이를 어르며 ‘명아’ 속삭인다. 고양이는 말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아주 깊고 속을 알 수 없는 눈이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분양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 명아, 우리 집에서 자유롭게 같이 살자. 큰 도둑고양이 오면 눈치껏 숨어야 한다.’ 나는 고양이를 마당에 내려놓는다. 고양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고개를 쏙 빼고 나를 바라본다. 샴푸로 목욕을 시키고 드라이기로 털을 말려 거실에 두면 호기심 많은 녀석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제 자리를 확보한다. 사랑스럽다. 자꾸 안아주고 싶다.
** 지금 명아는 중고양이로 자랐고, 야생에서 놔 키웁니다. 어찌나 재롱꾼인지 추석 연휴에 모인 우리 집 식구들 혼을 쏙 뺍니다.^^
모두 추석 잘 보내셨지요? 건강한 가을나기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