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을 설치했다.
아침부터 푹푹 찐다. 조석으로 시원해진다는 처서가 지났지만 폭염은 계속된다. 열대야도 계속된다. 음력으로 치면 윤 유월 끝나고 칠월 시작이니 한여름이 맞긴 하다. 새벽에 시댁 뒷정리 갔다 온 농부는 ‘2시간 일했는데 일한 표도 안 나고 소나기 맞은 것 같다.’며 무슨 날씨가 이러냐고 툴툴거린다. 지구 온난화가 무섭게 가속화 되는 것일까. 팔월 말인데 열대야로 밤잠을 설친다. 산골짜기 우리 집도 열대야를 겪는데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말해 무엇 하겠나. 밤새도록 냉방기 켜 놓고 잔다거나 선풍기 켜 놓고 잔다거나 빈말 아니다.
또한 가물다. 마당의 잔디가 배배 꼬인다. 밭작물이 타들어간다.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야 하니 마니하며 걱정스런 얼굴이다. 물난리 겪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뭄 타령인가 하겠지만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풍년을 기대할 수 있다. 나락이 패기 시작했다. 물이 필요한 시기다. 나락 만인가 논밭 농사에는 물이 필수다. 사람이 공급하는 물보다 비 한 번 쏟아져주는 물이 훨씬 낫다. 사람도 짐승도 풀도 나무도 물이 없으면 못 산다. 텃밭에 뿌린 당근도 싹이 올라오지 않는다. 아침마다 물을 주는데도.
결국 태양광을 설치했다. 폭염이 계속되자 전기세에 누진세가 붙어 거금이 지출된다. 가정용 태양광을 설치하면 전기세가 반으로 준단다. 국가에서 보조를 해주는 바람에 자비부담도 저렴하단다. 기후 변화에 따른 조치란다. 뒷북이라도 칠 수 있어 고맙다. 그동안 반대했었다. 내 터전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었다. 폭염은 계속되고 전기세가 폭탄을 맞으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태양광 설치를 하러 온 네 사람 중 두 사람이 청년이다. 그들은 오후 한 시에 와서 오후 일곱 시경 태양광을 설치해 놓고 떠났다. 땡볕 무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일을 하는 한국 젊은이를 보니 신기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 노동현장에는 외국인이 대부분이라는데. 일당이 높은가. 정규 직원인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새참으로 시원한 수박을 갖다드렸더니 새참까지 준비해 왔다며 고마워한다. 태양광 설치는 세 시간 정도 걸린다더니 저녁 답까지 마무리가 안 됐다. 중간에 다시 빵이라도 갖다 드릴까 물었더니 가져오지 말란다. 자꾸 쉬면 일의 진척이 느려진단다.
나는 시원한 거실에서 노는데 땡볕에서 일하는 사람들 보니 마음이 쓰였다. 태양광 설치가 늦어지는 것을 보고 딸 마중 갈 차비를 했다. 주말을 맞이해 서울의 친구 결혼식에 다녀오는 딸을 마중하러 가야 했다. 집을 나서며 일마치고 가시는 길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사 드시라고 현금 몇 푼 드렸다.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하면서도 받는 것이 고맙다. 태양광이 제자리를 잡은 것 같다. 텃밭 가에 서 있는 태양광이 의외로 눈에 거슬리지 않아 마음에 든다. 태양광이 폭탄 전기세를 깎아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물가는 여전히 높다. 한 번 오른 물가는 내려올 낌새가 없다. 아니, 한 번 오른 가격은 안 내려온다. 음식점에 가면 한 눈에 보인다. 음식 가짓수는 줄었는데 음식 값은 올랐다. 가장 저렴한 서민음식인 잔치국수 가격도 올랐다.
딸을 만났다.
저녁 먹고 가자.
허참, 당신 민생쿠폰 다 썼잖아.
집에 가서 밥 차리기 싫은데 먹고 가야지.
농부가 걱정하는 줄 안다. 우리도 절약해야 할 때다. 가을에 단감 나올 때까지는. 단감농사도 못 짓게 되면 생계비 걱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뭐 어때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데. 이보다 어려울 때도 살아냈는데. 시니어 일자리 찾지 뭐.’ 나는 천하태평이다.
그렇게 저녁으로 콩국수를 먹었다. 한 그릇에 만 천 원이다. 국산 콩으로 하는 콩국수라지만 가격이 너무 세다는 생각이 든다. 맛은 있었다. 음식 값이 아무리 비싸도 불 앞에 서서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들 생각하면 비싸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돈을 내고 먹는 음식이라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알기에 음식점 주인이나 종업원이 고맙고 미안하다.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란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음식장사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지만 삼복더위에는 음식장사만큼 고역인 직장도 없지 싶다. 내 나이쯤 되면 내가 하는 음식은 맛이 없고 남이 해 주는 음식이 더 맛있다.
집에 도착하니 완성된 태양광이 동쪽을 보고 빛을 낸다. 다시 봐도 자리를 잘 잡은 것 같다. 폭탄 전기세가 얼마나 줄어들지 알 수 없지만 경제가 어려울 때는 한 푼도 아쉽다. 그동안 괜히 태양광 설치를 반대해 농부 속을 썩인 것 같아 미안하다. 더구나 내 눈에 거슬리지 않게 설치됐으니 더 좋다. 배경이 된 은행나무가 귀찮아하지 않을까. 은행나무 둥치를 쓰다듬는다. 우린 공존하잖아. 사람이든 나무든 자주 보면 가족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