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부릴 수 있는 최고의 마법
지금부터 우리는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부릴 것이다.
그것은 바로 관점의 전환, 인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이다.
이것은 행복을 위한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여기 시원한 물이 담겨있는 컵이 한 잔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컵을 들어 물을 마시려고 보니, 컵에는 물이 반 정도 담겨 있었다.
여기서 대부분의 불행한 사람들은 컵에 물이 반밖에 들어있지 않다고 아쉬움을 느낀다.
물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더 많은 물을 마시기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은 물이 반이 차 있든, 꽉 차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물이 있다는 것에 대해 별생각 없이 그저 마실 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물이 반이나 있다고 기뻐하며 물을 소중히 마신다.
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기쁨을 표현하며 소중히 대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본질적으로는 그저 컵에 물이 반 정도 차있을 뿐이다.
객관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똑같은 물컵이 주어졌지만, 우리는 주관적으로 다르게 느끼게 된다.
물컵이 별로 와닿지 않는다면 이것을 다른 것으로 비유해보자.
물컵을 계좌로, 물을 돈으로 바꿔서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우선 우리들의 계좌에 백만 원이 있다고 하고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떠올려 보자.
여러분들이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더욱 많이 떠올릴 수 있을수록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불행한 사람은 백만 원 가지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어디 여행 한번 갔다 오거나, 브랜드 제품, 전자기기 하나를 사면 사라져 버리는 돈에 불과하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백만 원으로 그래도 이것저것을 할 것이다.
평소 눈길이 가던 제품이나 인테리어 소품, 음식 등을 구매하고 취미를 즐기는 것에 소비한다.
행복한 사람은 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백만 원이 생긴 것처럼 맛있는 음식부터 시작해서 의류, 액세서리, 게임, 다양한 취미, 선물 등 사소하지만 정말 많은 활동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납득가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보통은 내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나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할 때이다.
그러한 생각들은 점점 깊어져 우리를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만약 우리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계좌에 남은 돈이 하나도 없다고 해보자.
이런 상황은 정말로 암담하고 우울한 최악의 상황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곧 다음 달 월세조차 내지 못해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길바닥에 나앉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진다. 바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나 직장도 없는데 무엇으로 돈을 벌까?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새로운 직장을 구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취업이 어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새로운 직장을 얻는 것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인데,
만약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직장을 구한다면 운이 정말 좋은 것이다.
그렇다면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을 통해 생활자금을 대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라 대출이 막혀 그것조차 안된다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제외하고
집에 있는 돈이 될 만한 모든 물건들을 중고로라도 팔아야 할 것이다.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하여 거래를 진행한다.
만약 컴퓨터나 스마트폰조차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근처 PC방을 이용해서라도 시도한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여전히 취업이 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집에 있는 돈 될 만한 물건들은 모두 팔아서 돈으로 바꿨지만 그것마저도 곧 떨어진다.
그러면 우리에게 이제 남은 수단은 몇 개 없을 것이다.
개인회생제도를 신청하거나, 길바닥에서 구걸하거나, 세상을 떠나기를 선택하거나...
그런데 사실 이쯤 오면 삶의 의욕이란 게 티끌만큼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자, 나는 아주 절망적인 상황을 일부러 이야기해보았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이러한 최악의 상황은 우리들이 아직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힘들다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아직 가진 것이 많고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만약 실제로 암담한 상황일 때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관점은 좋지 않다.
대표적인 예시로 사업에 실패해서 파산했는데, 그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이 성공할 것이라고 여긴다거나, 도박에 전재산을 부어 패가망신했는데 운이 안 좋아서 그런 거라고 한방 주의를 유지한다든지 등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지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려 한다면
이것은 관점의 전환이 아닌 합리화에 해당한다.
오히려 관점을 바꾸지 못하고 문제에 매몰 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점을 바꾼답시고 합리화를 한다.
사실 이것은 심리상태가 불안정할 때 본능적으로 발동되는 방어기제에 가깝다.
합리화를 하게 되면 불안감이 줄어들고 안정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또한 긍정적인 합리화뿐만이 아닌, 부정적인 합리화도 좋지 않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그 사람이 날 도와준 이유가 불쌍해서라든지,
무언가를 해내지 못했을 때, 내가 능력이 없어서 못한 것이라든지 등
자기 연민, 자기 비하와 함께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합리화한다면,
문제 해결과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며 자존감이 빠르게 떨어질 것이다.
이러한 합리화는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합리화를 하면 할수록 현실은 점차 악화될 것이다.
우리는 불행과 행복을 서로 별개의 것으로 구분 짓는다.
그리고 불행을 어떻게든 겪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불행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하루에 라면 한 끼로 식사를 때우던 사람이,
돈을 벌어 맛있는 음식들을 사서 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음식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반대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굶주림 없는 풍족한 생활을 하던 사람은,
가진 것의 소중함에 대한 행복을 잘 모르고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가진 것을 잃게 되면,
그제야 그것들이 주고 있었던 소중함과 행복함을 깨닫게 된다.
모든 불행과 행복들이 그렇다.
다른 이들이 불행한 것을 보고 들어도 스스로 그것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그 아픔과 괴로움을 잘 알 수가 없다.
상처입지 않아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아픈지 잘 모른다.
넘어져 본 사람만이 다시 일어서는 법을 안다.
이별해본 사람만이 만남의 행복을 안다.
다만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불행을 겪는 것을 보며 내가 멀쩡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결국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직접 불행한 일을 겪지 않아도, 불행한 사람들의 경우를 배우며 애도하고 감사할 수는 있다.
공부하는 것이 지겹고 힘들다면, 공부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돈을 버는 것이 힘들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지금 만나는 주변의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주변에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하자.
정 감사할 것이 없다면 멀쩡히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표해보자.
정말 부정적인 경우에도 우리는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사랑하던 사람이 바람을 피워서 나와 멀어졌을 때,
그런 정서적으로 좋지 못한 사람과 헤어질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다.
혹은 서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멀어졌을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준 경험 그 자체에 감사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런 일들을 겪고,
다시는 같은 경험을 하지 않도록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주관적인 생각 관점에 따라서 불행함과 아무렇지 않음, 행복함이 변화한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때야 말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다
합리화는 관점의 전환이 아닌 그 반대이다
불행과 행복은 사실 연결되어있다
행복의 핵심은 감사함과 배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