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7일의 일기
어제 새벽에 이상하게 환한 느낌이라 밖을 보니 눈이 펑펑 오고 있었다.
애들 학교 갈 때 미끄러질까 봐 빗자루를 들고나가 쓰는데 쓸면 쌓이고 쓸면 쌓이고...
예쁜 쓰레기 같으니라고! 속으로 욕을 하며 돌아와 애들 학교 보내고 밖을 보니
벌써 녹고 있었다.
그냥 애들 학교 갈 때 조심해서 가라고 그럴걸.
내 에너지의 반의 반은 좀 있으면 녹아 없어질 눈 치우는데 소비해서 잠깐 누워 쉬었다.
엄마가 매년 겨울이면 제주도 농장에 연락하셔서 귤을 보내주시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귤이 도착했다.(엄마 사랑해요^^)
난 두어 개 먹었으려나? 오늘 먹으려고 박스를 보니 귤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얼굴이 누르띵띵한걸 보니 호나가 범인이로구나....
먹성이 대단해서 엥겔지수가 폭발하는 가난한 우리집.
앞으로가 더 두려워진다.
뭔가를 하겠다고 움직이는 도중에 내 기억은 증발해 버린다.
도무지 생각이 안 나 한참 멈춰서 내가 뭘 하려 했던가... 생각을 골똘히 하다 보면
섬광과 같이 기억이 나는데 그 기억은 섬광과 같이 다시 사라져 버린다.
적어야 한다.... 이제는 적어야 기억할 수 있다.
쫌 슬프네.
이어지는 이야기로 일주일 전에 주문해 놓고 새까맣게 잊고 있던 박스가 갑자기 배달 왔다.
난 안 시켰는데 이게 뭔가 싶어서 송장 전화번호로 전화해 보니 내가 시킨 거 맞네.
내가 시킨 거 기억나자마자 왜 이제야 보내셨냐고 하니 깜박 잊으셨다고.
나도 똑같아서 할 말이 없다.
겨울이면 굽는 고구마.
오늘도 따끈하게 구워 바구니에 담아 식탁에 올려놨는데 댕이가 바람보다 빠르게 달려와
고구마 한 개를 스틸해 갔다.
그 몸으로 그렇게 빨리 움직이다니.... 대단하다.
댕이는 고구마의 부드러운 속 부분만 쪼금 발라먹고 나머지는 먹지 않는데 왜 그러는 거니???
왜 다 먹지도 않을 거 매번 가져다가 속만 파먹니.
이런 부르주아 고양이 같으니.
오늘은
하늘에서 내리는 예쁜 쓰레기를 치웠고, 귤 한 박스는 3일 만에 호나가 다 먹었고, 내 기억은 빛과 같이 사라져서 메모가 필요하며, 막 구운 고구마의 속만 파먹는 댕이는 부르주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