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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고들꽃 Jan 01. 2022

깃동잠자리

저고리 끝동

 '깃동'이란 사전 상으로 보면 저고리나 웃옷의 목둘레에 둘러대는 다른 색동이라고 되어있고, '끝동'이란 여자의 저고리 소맷부리에 댄 다른 색이라고 되어있다. 저고리 소매의 끝부분처럼 4장의 날개 끝부분이 진한 갈색으로 되어 있어 이름 붙여진 잠자리가 있는데  바로 깃동잠자리다. 깃동이 맞는지 끝동이 맞는지는 우리가 생각해 볼 일이지만 깃동잠자리는 여름이 물러갈 태세를 하는 8월 중순쯤 되면 보이기 시작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잠자리이다.

 잠자리는 세 개의 홑눈과 3만 개 정도의 겹눈을 가지고 있고, 360도로 머리를 움직일 수 있어 먹이를 잡는 성공률이 95% 이상 된다고 한다. 우리를 귀찮게 하는 모기를 하루에 보통 200마리부터 1000마리 정도를 거뜬히 먹어치워 사람들에게는 아주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6개의 다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먹이가 포획이 되면 그물처럼 오므려 먹잇감을 움켜쥐기 때문에 절대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 풀들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눕는 방법을 택해 꺾이지 않는다면, 잠자리가 바람을 피하는 방법은 다리로 나뭇가지를 꼭 잡고 앞날개와 뒷날개의 위치를 서로 다르게 하여 바람을 통과시키는 방법으로 바람을 피하며 안전하게 버틴다.

 머리를 360도로 돌릴 수 있고 시력이 좋아 움직이는 것을 찾아내며 민첩하게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잠자리 잡는 팁을 하나 주자면 앉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네 장의 날개를 모두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을 때 천천히 다가가 시도를  해보자. 잠자리가 날개를 내린다는 것은 안심하고 쉬어도 된다는 나름대로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잠자리를 잡고 나면 루페를 이용하여 눈, 다리의 가시, 짧은 더듬이도 관찰해 보자. 그리고 잠자리의 다리로 물건을 드는 실험도 해 보면 흥미롭다. 숲 체험을 할 때 유아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층에서 재미있어하는 부분이다.    

 

*** 엄마의 저고리 ***     


  무남독녀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우리 집에서 나름 아주 귀하게 자랐다.

 1970년대  초,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절 농번기가 되면 친구들은 농사일을 돕기 위해 학교를 결석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난 밭에 나가 풀 한 포기를 뽑아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아주 엄하신 분이어서 귀한 것은 귀한 것이고, 잘못을 했을 때는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을 내는 불같은 성격이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나눠주는 통지문을 그만 잃어버리고 집에 가져오지 못한 적이 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엄마는 콩이었는지 팥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그것을 한 되(곡식, 가루, 액체 따위를 담아 분량을 헤아리는 데 쓰는 그릇으로 주로 사각형 모양의 나무로 되어있다)쯤 보자기에 싸서 내게 건네주고는 편도로 한 시간쯤 되는 학교를 다시 가서 선생님께 통지문을 받아오도록 하였다.

 이불을 반듯하게 개켜 장롱에 넣는 방법을 지키지 않아 가지런하지 않으면 다시 개켜서 넣도록 했다. 이불을 잘 개키는 방법은 이불을 세로로 반을 접고 양 옆을 가운데로 모아 다시 접는 것이다.  요즘도 어떨 때 대충 개켜 접어 넣으면 장롱문을 열었을 때 이불이 밖으로 우르르 쏟아지거나 뒤죽박죽 해 보이면 옛날 엄마의 말씀이 생각나 피식 웃으며 다시 접어 넣고 보면 장롱 문을 열었을 때 단정해 보이긴 한다.

 주변 상황에 개의치 않았던 엄마는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사춘기 시절에도 예외가 아니라서 또래 남학생들이 지나가든지 말든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면 큰소리로 혼꾸멍(혼내다로 충청도에서 쓰였다)을 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안절부절못했던 아찔한 기억도 여러 번이다.

 그런 엄마가 내가 결혼을 한 후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 집에 오셔서

  "약속이 있어 나갔다 올 테니 한복을 잘 다려 놓아라" 하고는 외출을 하셨다.

 결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살림에 서툴었던 난 한복의 재질에 맞는 다림질 온도를 잘 몰랐다. 조심스레 한복을 다림질하다가 아뿔싸 저고리 소매 끝동 부분이 다리미 바닥에  쩍  눌어붙고 말았다. 가슴이 쿵쾅쿵쾅, 그야말로  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어질 하는 순간이었다!

 반사작용으로 난 벌떡 일어나 그동안 길을 오가면서 봐왔던 한복집으로 달려가 수선을 의뢰했다. 그러나 한복집 아주머니는 저고리 소매 끝동에 있었던 기존 색깔은 도저히 불가능하고, 최대한 기존의 끝동 색과 비슷한 색으로 밖에는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천신만고로 저고리 양쪽의 동을 수선한 저고리를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시치미를 뚝 뗀 채 걸어 놓았고, 엄마는 저고리 동이 달라진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채 결혼식에 참여하셨다.

 ‘저고리 사건에 대해 언젠가 웃으면서 얘기할 날이 오겠지’하며 그 일에 대해 잊기도 하고, 가끔 한 번씩 생각나기도 하며 세월이 흘렀다. 그 후로도 한동안 그 비밀을 얘기하지 못하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엄마는 내 곁을 떠나 고백할 기회를 영원히 상실해 버렸다.

 처서가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자 깃동잠자리가 자유롭게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것을 보니 엄마가 그리워진다. 지금쯤은 저고리 동에 대해 일어났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얘기할 자신감이 세월과 함께 생겼는데 말이다. 오늘만큼은 엄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크게 한 번  혼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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