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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고들꽃 May 17. 2022

도토리거위벌레

요람

도토리거위벌레와 도토리 속 도토리거위벌레의 알(쌀 한 톨 모양)(7월)


노랑배거위벌레와 노랑배거위벌레가 아까시잎을 말아 만든 집과 알의 모습(5월)


 6월부터 7월까지 이어지는 긴 장마가 지나고 8월 무더위가 절정을 이루는 한낮이면 나무들도 더위에 지쳐 잎사귀들을 축 늘어뜨리고 잠을 잔다. 그런데 요 시기에 숲에 들어가 걷다 보면 싱싱한 잎사귀와 아직 익지 않은 도토리를 단 채 가지가 떨어져 온 산책로를 뒤덮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밤사이 바람이 많이 불었나? 이렇게 많은 가지가 왜 떨어져 있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다 관심을 갖고 가만히 가지를 살펴보다 아직 덜 익은 연둣빛 도토리가 몇 개씩 달린 채 나뒹굴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더 복잡해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 도토리를 따기 위해 가지를 부러뜨린 것으로 판단하여 ‘사람들이 양심이 없지! 아직 익지도 않은 도토리를 따려고 이렇게 가지를 잘라놓았단 말이야!’라고 화를 내는 경우를 직접 목격한 경우가 여러 번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짓도, 바람의 짓도 아닌 몸길이 8.5~10.5mm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도토리거위벌레’라는 곤충이 떨어뜨린 것이다.

 도토리거위벌레는 6~9월에 주로 발견되는데 참나무류의 아직 덜 익은 연둣빛 도토리에 주둥이를 이용하여 구멍을 뚫고 알을 낳은 후 도토리와 잎이 달린 가지를 주둥이로 잘라서 땅으로 떨어뜨린다. 잎이 달린 가지와 함께 떨어뜨리게 되면 마치 낙하산이 안전하게 땅 위에 내릴 때 반구형이 우산 모양으로 펼쳐져 공기의 저항을 크게 하여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잎사귀가 마치 프로펠러의 날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성의 지혜로 안전하게 땅에 떨어진 도토리 속의 알은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는 완전히 익기 전 도토리의 부드러운 과육을 먹으면서 자라게 된다. 그러다가 애벌레는 땅속으로 들어가 흙집(토와)을 짓고 겨울을 보내고 5월 말에 번데기가 되어 6월 중순에서 9월 말 사이에 우화(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되는 것)한다. 그렇게 우화 한 도토리거위벌레는 제 어미가 그러했듯 다시 설익은 도토리 속에 알을 낳고는 안전하게 땅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다.

 여름철 산책을 하다가 땅에 떨어진  연둣빛 도토리를 발견하게 되면 하나 떼어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까맣게 되어 있는 아주 작은 점을 찾아보자. 그런 다음 까만 점이 있는 곳을 손톱으로 떼어내도 되지만 작은 칼을 이용하여 아주 조금씩 잘라 본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자르면 알이 있는 부분까지 훼손이 되므로 조심스럽게 조금씩 잘라가다 보면 구멍이 넓어지면서 쌀 알 크기의 아주 투명한 알을 볼 수가 있다.

 노랑배 거위벌레는 몸은 검은색이며 복부가 노란색 혹은 붉은 노란색이다. 몸길이는 3.5~5.5 밀리미터로 성충은 5월에서 8월에 발견된다. 아까시 잎 끄트머리를 조금 말고 난 후 알을 낳고 나머지를 돌돌 말아 안전한 요람을 만든다.

 요즘 아까시나무는 가지가 축 늘어질 정도로 풍성한 흰꽃을 피워내고 상큼한 향기를 온 천지에 퍼뜨리고 있다. 풍성한 꽃을 감상하고 향기를 충분히 만끽했다면 아까시 잎에서 노랑배 거위벌레가 만들어 놓은 요람을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신비롭고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사랑

     

 사람이 살아가면서 맺는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주고받는 것, 즉 ‘give and take'가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그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이고 진리인데 단 예외가 하나 있다면 엄마와 자식 간의 관계일 것이다. 그래서 예부터 부모 밥은 누워서 얻어먹고, 남편 밥은 앉아서 얻어먹고, 자식 밥은 서서 얻어먹는 다고 하는 웃지 못할 소리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하해와 같은 사랑을 주기만 하며 오로지 자식의 안위만을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하기나 할까? 아니면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구절이라도 있을까? 어떤 낱말을 가져와도, 어떠한 말로 정의를 내리더라도 그 마음을 다 헤아리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에 모두 공감하리라 감히 단언해 본다.


 우리 마을은 1970년대 중반 신작로(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새로 낸 길)가 만들어지면서 아침시간에 한 번, 점심 즈음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대중교통인 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신작로의 표면은 잘 정리되지 않아 제법 큰 돌들도 길 위에 그대로 방치되어 울퉁불퉁하였고, 버스가 지나가고 나면 거대한 흙먼지가 풀풀 뿌옇게 날렸다.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이면 길이 미끄러워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마저도 운행되지 않았다.

 길이 매끄럽지 않은 비포장도로에서 버스는 속도를 많이 내지 못하며 덜커덩덜커덩하였고,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버스 천장에 붙어있던 플라스틱 손잡이는 이리저리 세차게 요동쳐 천장에 닿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냈다. 어쩌다 맨 뒷좌석에 앉기라도 하는 날엔 엉덩이가 30센티 정도는 번쩍 튕겨졌다가 털썩 내려앉는 일이 반복되어 밥 먹은 것이 금방 소화가 되겠다고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였다.


  그 당시 학생들이 이용하는 버스는 등교 시간에 맞춰서 오는 아침 첫차와 하교 후 저녁시간의 막차뿐이었다. 이렇게 한정된 시간에 많은 학생들이 몰리면 버스 안내양은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버스 깊숙이 사람을 밀어 넣었고, 간신히 버스 문이 닫을 때도 있었지만 닫지 못한 채 운행되기도 했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승객을 태우고도 승객을 더 태워야 했던 운전기사는 브레이크를 갑자기 밟기도 하였는데 커브를 돌 때와 울퉁불퉁한 곳을 지날 때마다 버스 안 승객들은 이리저리 쏠리며 아우성을 치곤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불편함이 나한테 만큼은 예외인 날이 있었는데 바로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는 날이었다. 엄마는 재빠르게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아 나를 앉히고는 앞 좌석과 뒷좌석 의자에 설치되어 있는 손잡이를 꽉 잡고 있다가 차가 흔들릴 때 사람들이 내게 밀리는 것을 차단했다. 지나치게 과한 보살핌으로 유난을 떠는 엄마의 모습이 썩 유쾌하지 않아 친구들 앞에서 창피하기도 하여 엄마를 피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어릴 적 시골엔 마을마다 내려오는 무서운 이야기가 많았는데 우리 마을도 예외는 아니어서 섬뜩한 이야기가 참 많았다. 그중 하나는 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저수지 옆 묘지에서 매일 밤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이 나와 손을 흔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서운 기억으로 점철된 산골길을 캄캄한 밤에 2시간 정도를 혼자 오롯이 걸어갈 일이 생기고 말았는데 여고시절 학교에서 수업이 늦게 끝나 집으로 가는 막차  버스를 타지 못한 것이다.

 칠흑과 같은 어둠에 모든 것이 묻혀 버리고 보이는 것이라곤 거대한 병풍처럼 사방에서 버티고 있는 산이 전부였다. 바람에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반응되는 초긴장 상태로 한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영숙이니?”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난 그만 너무 놀라 엉엉 울어버렸다.  

집에서 따끈한 밥을 해놓고 나를 기다리던 엄마는 도착시간이 지났음에도 오지 않자 바로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성은 헤아릴 수 없는 큰 힘이 발휘된다.


 도토리거위벌레가 도토리에 알을 낳고, 노랑배거위벌레도 아까시 잎에 알을 낳고 요람을 만들어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세상에 나갈 힘을 비축할 수 있도록 해 주듯, 엄마가 계셨던 집은 내가 세상에 나가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준 요람이었다.

 그러나...... 그 집에 지금은 엄마가 계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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