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 3종 아이언맨 구례 10
몇 년 만의 슈퍼 블루문이라며 밤마다 둥글게 자라던 달이 보름의 절정을 지나고도 여전히 환하고 밝게 빛나는 새벽이었습니다. 4시 30분이 지난 이른 새벽 반포종합운동장 트랙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1000미터 10회 운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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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벌 트레이닝은 아스팔트나 시멘트 도로보다 육상 트랙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인터벌 페이스에서 전해오는 강한 충격을 푹신한 우레탄 바닥이 흡수하기 때문에 부상 방지에도 좋고, 무엇보다 정확한 거리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000미터는 400미터 트랙 레인을 두 바퀴 달리고, 정확히 200미터 지점까지 더 달리는 것입니다. GPS 시계 상 200미터 지점이 아니라 트랙에 표시된 200미터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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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프로그램처럼 인터벌 트레이닝 또한 숫자 놀이입니다. 오늘 1000미터 페이스는 3분 40초였습니다. 400미터 1랩을 기준으로 88초이고, 100미터마다 22초씩 달려야 하는 속도입니다. 보통 마라토너들은 400미터 1랩마다 시계 랩 타임 버튼을 누르며 시간을 확인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오늘 페이스를 예로 들자면) 87초 대(87.XX)로 달리고 마지막 200미터는 43초대(43.XX)로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88초 대로 두 바퀴를 돌고 마지막 200미터는 44초 대로 끝내면 1000미터로 계산했을 때 3분 42초를 넘어가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찌나 간사한지 1000미터를 열 번이나 반복해야 한다는 오늘의 계획에 미리 겁을 먹어 랩 타임이 87초 대로 나오면 무척 힘든 것처럼 느껴지고 88초 대가 나오면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87초 대로 달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88초 대가 나와도 ‘88초 나왔다!’며 혼자서 만족합니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보고 듣고 결론 내려버립니다. 이런 것을 확증 편향이라고 해야 할지 탈진실, 아니면 인지부조화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제 자신이 그렇게 그냥 우긴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힘냈으면 충분히 달릴 수 있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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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놀이에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습니다. 인터벌에서 나쁜 것은 페이스가 들쭉날쭉하여 랩타임이 일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첫 번째 1000미터를 제가 이끌었는데, 1랩에서는 90초 대가 나왔고, 조금 더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에 2랩에서는 88초 대로 달렸습니다. 더 급한 마음에 마지막 200미터는 42초 대로 당겼습니다. 가장 좋지 않은 경우입니다. 좋은 숫자 놀이는 앞서 나왔던 것처럼 87초 대로 달리고 마지막 200미터를 43초로 끝내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끝자리에 따라 3분 38초 대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만약 10회 모두 이렇게 달린다면 물론 좋겠지만 이러면 목표 설정이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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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다니엘스 <러닝 포뮬러>에 따르면 인터벌 트레이닝의 목적은 유산소 능력(최대 산소 섭취량 VO2max) 향상입니다. 완전 휴식 상태에서 VO2max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90~120초가 걸리기 때문에 인터벌 트레이닝 페이스로 달리는 시간은 3~5분이 적당하다고 합니다. 마라토너 대부분 1000미터 정도 거리에 해당합니다. 질주 후 휴식을 길게 가지지 않으면 다음 질주까지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다음 질주에서는 단시간에 VO2max에 도달하게 됩니다. 만약 목표 설정이 지나치게 높거나 오버 트레이닝으로 초반 몇 회만 VO2max 영역에 도달하고 이후 지치고 피로하여 제대로 페이스를 지키지 못하고 힘들게만 달린다면 이것은 원래의 훈련 목적을 전혀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60초씩 휴식하며 무사히 10회 모두 페이스를 지켜 마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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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짧은 200미터, 300미터, 400미터의 훈련은 인터벌이 아닌 리피티션(질주 반복) 훈련이라고 합니다. 페이스는 더욱 빠르게 진행됩니다. 이번 주말에는 400미터 반복 훈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리피티션 훈련에 대한 내용도 미리 공부를 조금 해두어야겠습니다. 프로그램 대로 운동을 해도 실력 향상은 되지만 미리 목적과 취지를 알아두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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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아오리 사과, 청사과를 보내주셨습니다. 한때는 동네 슈퍼마켓 진열장에 놓인 사과의 크기와 색깔을 보며 가을의 깊이를 가늠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보내준 사과는 생긴 것 자체가 녹색인, 종이 다른 사과이기 때문에 빨갛게 익지는 않습니다만 초록으로 익은(?) 사과의 크기와 빛깔을 보니 다가오는 가을만큼 엄마의 깊은 사랑이 느껴집니다. 오늘 새벽은 조금 시원해졌습니다. 여름도 가을도 각자 나름대로 달리기 좋은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