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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운더리 Feb 11. 2022

한 모금으로 느끼는 계절

바운더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시리즈 - eert 편

eert가 계절마다 생각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ert 연희대공원점 내부

일기일회.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 또는 일생에 한 번 만나는 인연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다도에서 유래했는데요. 차를 마시는 모임(다회)을 할 때 지금 이 순간, 이 만남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므로 상대방에게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계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계절은 매년 돌아오지만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오롯이 느끼며 살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24절기의 차를 통해 계절을 선물하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도심 속의 쉼’이라는 주제로 계절에 맞는 차와 디저트를 소개하는 브랜드, eert의 강동우 대표를 만나 차와 계절, 그리고 휴식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습니다.



도심 속의 쉼


연희대공원 앞뜰 정원

Q. eert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가게를 오픈할 때 영감을 받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5월 즈음에, 작은 공원에서 한 여성분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책을 읽으면서 차를 마시고 계셨어요. 그 모습을 보고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밀도 있게 쉰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사람들에게 그런 ‘쉼’을 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나무, tree를 거꾸로 한 eert를 브랜드명으로 지었어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나무에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한 번 방문하고 끝나는 식으로 소비되는 공간이 아닌, 계절마다 생각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eert를 만들었어요.



Q. eert는 다양한 지점이 있는데 연희대공원점만의 특색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매장을 오픈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건 ‘그 지역이 가진 색을 담는 것’이에요. 서울숲에 처음 매장을 열 때는 서울숲의 나무와 정원이 잘 보이는 위치로 잡았고, 망원동은 오래된 주거지역이기 때문에 60년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건물을 찾아서 뼈대만 그대로 남겨두고 그 안에 저희의 느낌을 담으려고 했어요.

연희동도 마찬가지로 오래된 주거지역이고, 큰 집이 많이 있는 동네예요. 연희대공원은 마당에 넓은 정원이 있기 때문에 이 공간에서 eert가 어떤 쉼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고, 잘 가꿔진 정원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차와 커피, 디저트를 즐기면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했어요.



Q. eert 매장에는 정원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아요. 카페를 오픈할 때 정원을 조성해야겠다거나, 정원이 있는 공간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자연 속에서 앉아서 쉴 수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제가 바다보다 산과 숲을 좋아해요. 나무를 봤을 때 훨씬 더 쉼을 느끼고, 쉴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요. 그러다 보니 브랜드명도 나무이고, 정원을 활용하게 된 것 같아요.


처음 서울숲 지점을 오픈할 때 ‘가레산스이*라는 일본의 정원 양식을 가져왔어요. 일본 교토 지역의 신사에 간 적 있었는데, 1시간, 2시간씩 가만히 앉아서 돌 정원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명상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좋아서 저도 저런 방식의 쉼에 대해서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서울숲 지점에 ‘가레산스이’를 저희식으로 해석해서 도입한 게 eert만의 시그니처가 된 것 같아요. 이후 여러 곳에서 ‘가레산스이’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사실 가레산스이에는 종교적, 시대적 배경도 담겨있어서 가볍게 소비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에 어떤 식으로 정원에서 쉼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대구점은 저희가 직접 조경을 했고, 연희대공원은 정원이 있는 곳에 들어온 거예요.


* 가레산스이 :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 등으로 산수를 표현하는 일본의 정원 양식




계절과 차, 디저트


eert 연희대공원점 내부

Q. eert는 계절마다 다른 디저트를 선보이고 있어요. 계절에 맞는 디저트는 어떻게 구상하시나요?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건 ‘제철’이에요. 제철 음식이 가장 맛있고, 제철에 나는 식재료가 몸에도 좋고 맛있기 때문에, 제철에 나는 재료를 활용해 디저트를 만들려고 해요. 과일의 경우, 농장과 따로 계약을 해서 제철 중에서도 당도가 가장 높은 시즌에 맞춰서 사용하고요.



Q. eert의 디저트 박스에는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디저트가 들어있는데요. 디저트를 구상할 때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마찬가지로 제철 재료에서 영감을 가장 많이 얻어요. 디저트를 만들 때는 계절감을 많이 표현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겨울에는 제철 재료인 딸기를 활용한 디저트를 만들기도 하지만, 파운드케익 위에 화이트 초콜릿을 이용해서 눈이 쌓인 것 같은 느낌을 낸다든지, 쌀 크런치를 이용해서 눈이 내린 것처럼 표현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계절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는 것과 제철 재료를 가장 맛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Q. 계절마다 매번 새로운 디저트를 구상하려면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블렌딩 티나 디저트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ert에서는 24절기에 맞는 자체 블렌딩 티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차를 블렌딩할 때 힘든 점은 사람마다 같은 차에서 다른 계절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차에서 봄을 느꼈는데, 누군가는 여름을 느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또 구성원 입장에서는 메뉴에 익숙해질 때쯤 계절이 바뀐다는 점과, 계절이 오기 훨씬 전에 미리 계절을 생각해서 디저트를 구상해야 한다는 점이 힘든 것 같아요.



Q. 사람마다 같은 차에서 다른 계절을 느낀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그러면 절기에 맞는 차를 개발할 때 구성원의 의견이 만장일치 되는 쪽으로 개발을 하시나요?


웬만하면 만장일치 되는 편이에요. 사계절 중 여름이나 겨울은 뚜렷한데 봄이나 가을은 좀 애매한 경우도 있거든요. 특히 봄과 여름 사이, 여름과 가을 사이 같은 경우는 더 애매하고요. 그래서 저희가 계절보다 ‘절기’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절기는 24절기로 나누어지니까 애매한 부분이 덜하거든요.


‘백로’라는 차가 있어요. 이 절기는 9월 8일로, 여름과 가을 사이거든요. 조금 덥긴 한데,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예요. ‘백로’에는 가을의 과일인 무화과와 사과가 들어가고, 허브와 장미 꽃잎 등을 블렌딩했어요. 이 조합이 저희가 생각하는 백로라는 절기에 딱 맞는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고객님들께서도 ‘백로’에서 여름과 가을 사이의 분위기를 많이 느껴주시더라고요.



Q. 특별히 좋아하는 차가 있나요?


호지차를 자주 마시고, 좋아해요. 호지차는 녹차를 한 번 볶아서 고소한 맛이 나는 차인데, 녹차를 얼마나 잘 볶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매력이 있어요.



Q. 차는 어떤 계기로 좋아하게 되셨어요?


차의 맛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차를 즐기는 문화나 차를 마시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차를 마시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해요. 커피가 잘 안 받는 체질이라 저녁에는 카페인 없는 차를 주로 마시고, 아침에는 정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편이에요.


eert가 차에 포커싱이 되어있긴 하지만 차와 커피, 둘 다 다루고 있거든요. 다른 카페는 커피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면 저희는 거의 반반이에요. 연희대공원점은 차가 훨씬 많이 나가긴 하지만요.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 쉼을 주고 싶다는 게 원래의 의도였어요. 제가 차나 커피의 맛보다는 향에 더 집중하는 편이어서, 커피도 향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원두로 라인업을 잡고 있고요.



Q. 24절기 차 중 어떤 걸 마셔야 할지 고민하는 고객도 많을 것 같아요.


취향을 여쭤보고 차를 추천드리기도 해요. 단 맛을 좋아하시는지, 고소한 맛을 좋아하시는지, 과일 맛, 꽃 향, 허브향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지 물어보죠.


그리고 본인의 생일이 있는 절기의 차를 많이들 골라 드시더라고요. 그 절기 시즌에는 그 절기의 차만 나가요. 모든 절기의 차를 상시로 판매하지만 봄에는 봄 절기, 여름에는 여름 절기, 가을에는 가을 절기, 겨울에는 겨울 절기의 차가 가장 많이 나가요.



Q. 이미지에 맞는 차를 추천해 주시기도 하나요?


추천은 드릴 수 있지만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미지를 정하는 건 편견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먼저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그게 불편하신 분들은 저희가 느낀 걸로 추천드리기도 하죠. 밝은 에너지를 뿜는 분들에게는 달달한 차, 차분한 이미지의 분들은 조금 더 눌러줄 수 있는 묵직한 차를 추천드리는 식으로요. 차를 추천해 드렸을 때 ‘너무 맛있었다, 구매할 수 있냐’ 같은 만족의 피드백이 왔을 때 보람을 많이 느껴요.




eert에서 일하는 사람들


Q. 매장 직원분들도 차를 닮아서인지 차분한 분위기인 것 같아요.


mbti i 성향이 많은 편이에요. 저희는 손님분들이 먼저 저희에게 아는 척을 하기 전까지는 저희가 나서서 아는 척을 하지 않아요. 단골분들 얼굴을 당연히 알고, 들어오시는 것만 봐도 미리 준비하기는 하지만 그분들이 편하게 쉴 수 있게 배려하는 거죠. 누군가가 알아보고 ‘또 오셨네요’라고 아는 척을 한다면 편하게 쉴 수 없고, 더 이상 가게에 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매장에 오시는 분들이 편하게 쉴 수 있게 저희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eert에서 편하게 쉬시고, 계절마다 생각나면 한 번씩 들러주시고,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죠.



Q. 일을 하면서 만난 고객분들 중에 인상 깊었거나 기억에 남았던 고객이 있나요?


어느 날 단골 분이 오셔서 서울숲 매장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매장 안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열심히 준비해 드렸던 기억이 있어요. 저희도 너무 좋아하는 분이고, 그런 경험을 앞으로도 살면서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했는데 너무 뿌듯하고 좋았던 경험이었어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오셨던 분들이 다른 분들을 데리고 오시고, 계절마다 다시 찾아와 주시는 거예요. 누군가와 만나서 함께 있는 순간은 일생에 단 한 번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차를 대접하고, 즐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eert를 꾸려나가고 있어요.



Q. 치열하게 일하다 보면 쉬고 싶은 순간도 생길 것 같아요. 긴 휴가가 주어진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최근에 자가격리로 의도치 않게 쉰 적이 있었거든요. 막상 그렇게 쉬는 시간이 주어지니까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긴 휴가가 주어진다면 핸드폰 안 터지는 곳으로 멀리 떠나고 싶어요.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곳으로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장소에서 아무 생각 안 하면서 쉴 것 같아요.




eert가 그리는 앞으로의 차



Q. 보통 카페에 가면 차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잖아요. 차보다 커피가 일상에 가까이 있는 음료라고 생각되는데, 사람들이 차를 어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다도’라고 하면 역사가 깊고, 정적인 느낌이 있다 보니까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기술적으로 따지면 커피가 훨씬 어렵거든요. 차는 복잡한 테크닉이 필요하지 않아요. 적정한 온도와 찻잎의 양정도만 알면 맛있는 차를 우려 마실 수 있죠.

저희도 사람들이 차를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더 캐주얼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캐주얼하게 접근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한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의 다도 문화가 있잖아요. 그런 다도의 방식이나 틀에 국한되지 않고, 다도에 대해 공부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차를 마시면서 쉴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싶어요.

다른 업계 분들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사람들이 차를 무겁지 않게, 편하게 생각해야 일상에서도 차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가장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커피처럼 차도 캐주얼하게 마시는 문화를 만드는 게 저희의 숙제이자 목표인 것 같아요.



Q. 사람들이 차에 더 쉽게 다가가도록 eert에서 하는 노력이 있나요?


사실 차 자체는 맛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도 맛을 채우기 위해 직접 만든 청을 넣거나, 과일을 같이 블렌딩하고 있어요. 저희 맛있는 차 만들고 싶어요. 차도 맛있어야죠.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나요?


차가 조금만 더 쉬워졌으면 좋겠어요. 쉬워질 수 있게 만들고 싶고요. 저희의 목표는 한국, 중국, 일본에 다도가 있듯이 eert 식의 다도를 만드는 것이에요.


<일일시호일>이라는 영화에 다도하는 장면이 나와요. 선생님이 다건을 여러 번에 나눠서 접고, 물을 뜨는 데도 C자로 세 번 그려서 떠오는 등 복잡한 다도의 규칙을 따르는 것을 보고 수강생이 ‘왜 그렇게 하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선생님이 ‘원래부터 이렇게 해오던 것이라서’라고 대답하거든요. 저희도 원래의 방식을 따를 수 있겠지만 저희만의 방식을 만들고 싶어요. 손님들에게도 본인만의 다도를 만들 수 있다고 말씀드려요. 나만의 법과 규칙을 만들어서 각자의 방식대로 다도를 즐긴다면 그게 사람들이 다도를 조금 더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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