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스포츠 애호가가 되고싶다] - ②
야구는 한국에서 '구기 종목'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스포츠다. KBO는 물론, MLB도 한국에서 꽤나 인기가 있다. 하지만 사실 야구는 그다지 세계적인 스포츠는 아니다. 축구는 물론 농구와 배구보다도 국제적 인기는 떨어진다. 야구가 국지적 스포츠에 그친 이유에 대한 주장은 다양하지만, 그 '기원'에 관련된, 꽤 흥미로운 주장을 소개한다.
야구의 기원은 끊임없는 논쟁거리였다. 가장 강력하게 야구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1890년대, 미국 야구선발팀은 영국 등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경기를 했는데, 영국에서는 미국야구를 두고 크리켓 등의 구기 종목에서 비롯된 스포츠라는 보도가 이루어졌다.
이에 미국야구 초창기의 유명 투수이자 야구계의 영향력 있는 사업가였던 앨버트 굿윌 스폴딩은 '야구'라는 스포츠의 원조가 미국임을 강하게 주장했다. 스폴딩은 상원의원 두 명을 포함하여 야구의 기원을 찾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축하였다. 위원회는 애브너 데블데이 장군이 사관학교 동기들과 만들어낸 규칙을 통해 야구가 탄생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러한 스폴딩의 노력은 미국의 국제적 위치와도 관련이 있었는데, 미국은 당시 선진국들에 비해 역사가 짧은 국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들의 전통이 될만한 문화들을 확보하기 위해 신경 썼는데, 야구 또한 그 타깃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위의 주장에 반대하는 이가 있었는데, 바로 세계 최초 야구팀인 니커보커스를 조직한 알렉산더 카트라이트의 손자 브루스 카트라이트였다. 브루스 카트라이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만든 '니커보커 규칙'에서 다이아몬드형 경기장과 9명의 경기 인원, 3 스트라이크 1 아웃 등의 근대야구 규칙을 공식화하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메이저리그는 재조사를 실시하였고, 스폴딩의 후원을 받은 특별위원회의 결론이 조작이라는 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와 명예의 전당은 야구의 기원을 더블데이로 고집했다. 1939년 야구 창안 100주년 기념우표를 만들고, 야구계 인사들이 더블데이 장군 무덤에 찾아가는 등 조작 사실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1953년, 미국 의회가 공식적으로 알렉산더 카트라이트를 현대 야구의 창시자로 공표하였지만, 메이저리그와 명예의 전당은 여전히 더블데이를 야구의 시조로 명시했다.
이렇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던 논란은 '닥 애덤스'의 등장으로 다시 미궁에 빠졌다. '야구의 법칙'이라는 서류가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이 1845년 카트라이트의 기초를 시작으로 1960년 닥 애덤스가 완성했다고 알려진 '니커보커 규칙'과 매우 유사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서류가 완성되었다고 기록된 해는 1857년이었다. '니커보커 규칙'보다 3년이나 앞서 있었으며, '야구의 법칙'에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참여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이에 따라 카트라이트의 영향을 이어받아 애덤스가 1860년에 '니커보커 규칙'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야구의 법칙'을 통해 이미 1857년에 근대 야구의 규칙이 애덤스의 단독 집필로 만들어져 있던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위의 미국 내에서의 논쟁들과 별개로, 이러한 미국의 야구 종주국 주장에 반박하는 주장이 전 세계 각지에서 등장했다. 영국의 국민 스포츠 중 하나인 '크리켓'만 해도 야구와 유사하며, 실제로 'Baseball'이라는 단어는 미국에서 야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영국에서 구기 종목의 일종을 칭하는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1700년대부터 기록으로 찾아볼 수 있었으며, 결국 미국은 물론 메이저리그와 명예의 전당도 베이스볼이란 이름의 기원이 영국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영국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야구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미국이 생기기도 전에 '이햐 만 그룩'이라는 야구와 유사한 공놀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야구와 비슷한 규칙의 스포츠를 전통 놀이로 해왔음이 밝혀졌다. 루마니아의 전통 노이인 '오이나', 폴란드의 '필카 팔란토와', 쿠바의 '바토스' 등이 미국야구보다 오랜 전통을 가진, 야구와 유사한 형태의 스포츠로 제시되었다.
결국 2000년대에 들어, 메이저리그와 명예의 전당도 입장을 수정하였다. 명예의 전당은 '무수한 스포츠들의 기원설이 있고, 현대의 야구는 더블데이가 아니라 알렉산더 카트라이트로부터 창안되었다.'라고 글을 수정하며 야구의 기원이 더블데이와 미국이 아님을 인정했다. 결국 야구는 전 세계의 여러 전통 구기 종목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미국은 여러 스포츠를 참고하여 현대야구를 개편한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한국에서 야구는 인기 스포츠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는 야구와 축구를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로 받아들이지만, 전 세계에서 축구와 야구의 인기 차이는 굉장히 크다. 당장 야구는 축구는커녕 농구와 배구보다도 세계화가 되지 않았다.
야구의 세계화가 실패한 이유에 대한 주장은 다양하다. 상대적으로 룰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한 축구와 농구, 배구 등에 비해 야구는 기본적인 경기 운영부터가 어렵다. 즉, 진입장벽이 높다. 대표적으로, 스포츠의 가장 핵심 요소인 '득점'부터 복잡하다. 어떤 식으로 타자가 출루하며, 어떻게 해야 베이스를 움직여 홈으로 들어오게 되는지부터 설명하기가 까다롭다.
게다가 야구가 유럽에서 인기를 잠시 끌었던 것이 1920년대부터였는데, 세계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스포츠 종목 자체가 사회에 정착하기에 부적합한 시기였다.
참여 스포츠로서의 접근성 문제도 지적된다. 축구나 농구는 공만 있으면 많은 부분이 해결되지만, 야구는 공과 배트는 물론 글러브도 필요하다. 참여 스포츠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것이 관람 스포츠로의 관심까지 이어지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바로 위에 있는 기원과 관련되는 주장도 있다. 1890년대 미국 선발팀이 유럽 각지에서 미국야구 경기를 할 때, 유럽 현지에서의 반응이 꽤 좋았다. 크리켓과 비슷한 종목이었고,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현대야구의 기원을 미국으로 고집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의 반감을 샀고, 미국 스스로도 그들만의 리그에 만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야구가 세계화에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야구는 국지적 스포츠에 그쳤고, 특히 미국 위주의 스포츠로 남게 되었다. 미국의 야구 종주국 주장이 과연 야구의 세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국 미국의 자존심이 야구의 세계화를 가로막았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