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스포츠 애호가가 되고싶다] - ⑤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세계인의 축제가 됐어야 할 올림픽은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다. 페어플레이. 이 다섯 자의 단어가 올림픽 정신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올림피아 제전'은 고대 그리스의 성소 올림피아에서 열린 제사였다. 제사에는 운동 경기가 포함됐는데,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제전 경기의 성격이었다. 올림피아 제전은 종교, 예술, 군사 훈련을 집대성한 헬레니즘 문화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로마가 그리스를 지배하게 되면서 올림피아 제전의 종교성은 퇴색하기 시작했다. 오락과 유희를 강조하는 풍습이 생겼고, 황제가 경기를 조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올림피아 제전은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되면서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이교도의 제전'이라는 명목 하에 폐지됐다.
올림피아 제전은 지금의 올림픽과 달리 온갖 반칙과 폭력이 오가는 제사였다. 패배자는 죽음보다 더한 불명예를 얻었으며, 승리하기 위해 무슨 수든 쓰는 경기 양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올림피아 제전이 '평화의 제전'으로 인정받은 이유는 당시 도시국가로 흩어져 전쟁을 이어가던 그리스가 같은 민족, 같은 언어, 같은 종교 이념이라는 공통의 가치 하에 한 장소에 모여 일시적으로나마 화합을 도모했다는 데에 있다.
제전 시작 3개월 전부터 그리스 전역에 휴전령이 내려졌고, 제전 경기는 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여겨졌다. 휴전령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킨 도시국가 스파르타는 올림피아 제전에서 임시 제명되는 벌을 받기도 했다. '스포츠'에 주목하는 근대 올림픽과 달리 올림피아 제전은 종교적 제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가치는 근대 올림픽까지 이어졌다.
올림피아 제전을 계승한 것은 근대 올림픽이었지만, 이전에도 올림픽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는 몇 차례 있었다. '코츠월드 올림픽'은 잉글랜드 코츠월드에서 열리는 스포츠 축제였다. '올림픽 부활'을 내세우며 열린 이 축제는 1850년까지 지속됐다. 영국 올림픽 위원회도 이 대회를 영국 올림픽 역사의 중요한 일이라 평가하고 있으며, 1951년 부활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코츠월드 올림픽에서는 줄다리기나 전통 댄싱 등의 종목으로 축제가 열린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사업가 에방겔리스 자파스의 주도 하에 '자파스 올림픽'이 개최되며 올림픽 부활을 시도했다. 1859년, 1870년, 1875년 3회 개최됐지만, 그리스의 재정난으로 인해 이후 폐지됐다. 자파스 올림픽은 그리스 주변 국가 중심이었으며, 참가자 대부분이 타지에서 온 그리스인이었다. 하지만 자파스 올림픽의 남은 자금이 그리스 정부에 전달됐고, 이것이 근대 올림픽의 시작인 1986 아테네 올림픽에서 개최 자금으로 쓰이며 그 의의를 더했다.
'웬록 올림픽'은 자파스의 영향을 받은 윌리엄 페니 브룩스가 마을 사람들의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1850년 영국의 머치웬록 마을에서 개최했다. 웬록 올림픽은 4년마다 열렸으며,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규모가 작고 지역 스포츠 단체에게도 그저 행사 취급을 받았지만, 브룩스는 올림픽을 범 세계적 경기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근대 올림픽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2 런던 올림픽의 외눈박이 마스코트 '웬록'이 바로 여기서 나온 이름이다.
근대 올림픽은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창시했다. 스포츠 마니아였던 쿠베르탱은 프랑스 청년들의 신체를 단련하고 국민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발상으로 근대 올림픽을 구상했다.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패배 이후 프랑스 국민의 사기는 침체돼 있었고, 이런 분위기는 프랑스에 국가주의와 애국주의 열풍을 불어왔다. 교육학자였던 쿠베르탱은 프랑스 몰락의 이유를 청년들의 신체 허약에서 찾으면서, 신체 단련과 경쟁을 통한 청소년 교육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그의 올림픽 구상은 세계 청년 대상으로 확대됐다. 쿠베르탱은 올림피아 제전이 전쟁 중인 그리스를 하나의 공통 가치 하에 통합했던 것을 떠올리며 스포츠 제전을 통해 세계 청년의 우정과 화합을 도모하자는 결론을 내게 됐다. 쿠베르탱은 고대 올림픽인 올림피아 제전 정신의 부활을 주창하며 189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조직했고, 1896년 아테네 올림픽을 개최하며 근대 올림픽의 시작을 알렸다. 쿠베르탱은 웬록 올림픽에도 감명을 받았고, 창시자 브룩스와 만나 대화를 나눈 뒤 그의 아이디어를 근대 올림픽에 반영하기도 했다.
'Fairplay(페어플레이)'
스포츠나 게임에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일컫는 말로, 셰익스피어가 창시한 단어 중 하나다. 쿠베르탱의 취지 하에, 페어플레이는 근대 올림픽의 정신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7월 20일 제138차 IOC 총회에서 IOC는 'Faster, Higher, Stronger! - Together(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 - 다 함께)'라는 새로운 모토를 발표하며 올림픽 헌장을 124년 만에 변경했다. 올림픽을 경쟁 만을 위한 대회가 아니라 화합과 결속을 위한 세계인의 축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모토였다.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Together'라는 단어가 추가됐음을 알리는 시간이 있었을 정도로 그들은 올림피아 제전의 공통 가치 정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개최되는 올림픽은 그 가치를 완전히 훼손하고 있다. 124년의 역사를 거쳐 새롭게 주창된 이 모토는 불과 1년 만에 무시되고 말았다.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다. 누군가에겐 감동을, 누군가에겐 도전을, 누군가에겐 증명을 주는 화합의 장이자, 전 지구가 모이는 유일무이 스포츠 축제다. 스포츠 정신과 페어플레이. 두 단어가 올림픽을 요약한다. 언제나 올림픽에서는 논란이 즐비했지만, 이토록 지독하고 노골적인 현상은 처음이다. 선수 부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경기장 관리. 특정 국가에 유리한 판정. 4년의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대회. 이러한 대회를 우리는 올림픽이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절대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놀려하지 말라. 그대가 게임을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되 상대방을 영원히 잃게 될 것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