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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Sep 26. 2024

04. 우리는 난임을 맞이했다

괜찮아

우리는 병원을 나오자마자 관할 보건소로 갔다. 병원에서 난임 진단서를 받았고 나머지 필요 서류는 보건소에서 해결했다. 혼인신고 다음으로 하는 공무가 출생신고가 아닌 난임지원 신청이라니…… 아쉽고 속상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보건소 모자보건부서로 갔다.


담당 공무원은 내가 무엇이라도 털어놓으면 조용히 다 들어주는 언니 같았다. 차분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얘기해서 위화감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상황을 공감해 주는 말투라 위안이 됐다. 남편과 함께 지원서를 작성하려고 나란히 앉아 있는데 순간적으로 내 처지가 딱하게 느껴졌다. 감상에 잠기면 눈시울이 젖을 듯하여 앞에 놓인 지원서를 향해 펜을 들었다. 남편과 나는 여러 동의 항목에 이름을 쓰고 서명하기를 반복했다. 보통 문서에 둘의 서명이 필요할 때는 남편이 먼저였었지만 이번에는 내 이름이 더 앞섰다.


‘역시 내 책임인 건가? 이 일은 내가 우선으로 책임져야 하는구나.’


서류를 쓰는 동안 2023년 7월부터 서울시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이 확대되었단 설명을 들었다. 확대된 내용을 보니 지원 소득기준 폐지, 시술 간 횟수 제한 폐지였다. 소득과 무관하게 지원을 해준다는 내용과 시술 유형(신선배아, 동결배아, 인공수정)에 관계없이 총 22회까지 지원을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45세를 기준으로 지원금이 적어지는 차이가 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어 다른 지역보다 더 나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지원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서울에 난임부부가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이겠지. 45살이 되기 전에 이 과정을 끝내고 싶었다.


서류를 쓰고 업무처리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왜 엄마가 되려 하는지 물음이 생겼다. 의학의 힘을 빌려서 라도 부모가 되려는 이유를 대기시간 안에 답할 수 없었다.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려는 건지 누구를 위한 건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생각이 길어지자 미간이 좁혀졌다.



1차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결정통지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나왔다. 결정일로부터 3개월 내에 이 통지서를 병원에 제출하면 되었다. 부적을 받은 듯이 염원을 담아 통지서를 바라봤다.


‘1차에 끝내면 로또라는데 그 행운이 내게 올 수 있겠지?’



신청서 작성 내내 마음속에서 나눈 걱정과 질문 때문에 보건소를 나오자마자 나는 풀이 죽어버렸다. 그런 나를 감싸 안아주는 품이 있었다. 남편은 내 등을 나긋이 토닥였다. 엄마에 이어 내 등을 토닥여주는 유일한 사람. 그 품에 기대었다.


“괜찮아. 고생했어.”


남편의 다정한 말씨에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뭘 했다고 고생했다는 거지? 난 그저 쓰라는 대로 썼을 뿐인데.’


지원서에 몇 자 적었을 뿐인데 고생이라 하니 괜스레 뾰로통해졌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둘이 사는 것도 좋아. 네가 더 소중하니까. 하지만 네가 포기하지 않으면 나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우리에게 친구가 늦게 찾아오는 거라고 생각하자.”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아이를 ‘친구’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아이는 불확실한 존재였기에 부담스러웠고 태어나게 되는 아이에겐 우리의 소유물이 아닌 동반자처럼 대하고 싶어서 친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삐죽하게 튀어나왔던 마음이 두부 같은 남편 가슴을 찌를 까봐 그의 등을 토닥이며 못난 마음을 거두었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울림으로 이 사람의 마음을 감히 느껴본다.



Pixabay: StockSnap님의 이미지



‘당신도 힘들 텐데 나를 우선으로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줘서 고마워요.’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생각했다. 난임시술 지원금에 적힌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종이 한 장이 주는 파장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 여정 끝에 원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난임이 처음이라 당장 답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당신과 나는 둘이어도 재미나게 살기 위해 결혼했으니까.


괜찮아!


우리는 친구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는 난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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