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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형 Mar 09. 2022

투표

2022. 03. 08.

그는 괴로워 보인다. 그가 너무 응집되어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의 전형성으로 인해 그는 혼란스러워 보인다. 그는 불안한 맹수의 눈을 가진다. 스스로가 만든 신화 속에서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겼다. 그는 근원으로 어슬렁대며 가본다.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면 그는 견딜 수 없다. 아무것도 없다면 그는 맹수일 수도 없다. 그 점이 그를 가장 불안하게 한다. 그는 거칠게 말한다. 크게 말한다. 그에게 청중이란 언제나 너무 먼 것 같다. 청중은 뒤집혀 있는 자신 같고 위협적이다. 그는 자신에게 이해받고 싶다. 그는 자신을 깨닫게 만들어주고 싶다. 지금 너는 속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도 너를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두 믿음이 모순되기 때문에 그는 불안하다. 그는 언젠가 울었던 게 부끄럽다. 맹수처럼 울었어도 부끄럽다. 그는 울음으로 다른 누구도 위협하지 못했고 오직 그 자신만을 위협했기 때문에 부끄럽다. 그는 자신을 지우고 싶다. 그냥 그는 흔적이 되고 싶다. 이를테면 가장 난해한 흔적. 그는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인간이고 싶다. 그런데 그는 맹수이고 싶다. 그는 필연적인 재앙이고 싶지만 또한 영원히 잠들어도 좋은 유년이고 싶다. 그런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정말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그는 모른다. 그래서 그는 타인의 욕망을 자기가 직접 그려주고 싶다. 그들을 깨닫게 만들어주고 싶다. 너희도 이를 악물고 나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나와 같다면 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같은 존재는 없다고 굳게 믿는다. 그 믿음이 그를 괴롭힌다. 그는 긴 잠에 빠진다. 꿈속에서 그는 팔다리를 뻗는다. 팔다리가 무한히 길어져서 남의 집 문을 부수도록 둔다. 그는 기쁘지 않다. 자유롭지도 않다. 그저 이것이 꿈이 아니란 사실, 그의 자유 또한 꿈이 아니며, 지금 부수어지는 문 너머에 누군가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 그러나 아무도 그와 함께 탈출하지 않는다. 그 자신도 탈출하지 않는다. 그는 전형적인 자신인 채로 깬다. 거울 속에는 불안한 맹수의 눈. 가짜가 아니다. 가짜 으르렁거림. 두려움을 주기 위한 가짜 한숨. 남성으로 자라난 비현실적으로 자유로운 신체와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그 자신의 비일관성. 모두 가짜가 아니다. 그는 제 불안을 감상한다. 그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싶기 때문에 친구들 앞에 가장 늦게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먼저 나타났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그가 가장 먼저 나타나서 친구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어떤 친구를 버릴 것이다. 어떤 친구를 다른 어떤 친구와 싸우게 만들 것이다. 그것만이 권능이리라. 그는 흥이 올라서 자기 생각을 설파한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다. 허락된다면 꿈속에서라도 좋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에게 말한다. 이것은 너의 꿈이 아니고, 너는 지금부터 한 인간에게 표를 던지도록 되어 있다고. 네가 던진 표는 너에게 돌아오지 않으며 자기만의 신화를 쓰기 시작할 것이라고. 어떤 이야기로 자라나든지 우리 모두 그 이야기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거야. 인간은 신화를 증오하니까. 친구들의 말에 그는 울기 시작한다. 그는 한없이 움츠러든다. 그는 어디로든 튀어나갈 수 있는 고무공 같고, 그래서 자신이 무생물 같다. 그는 무척 흥분해 있다. 그러나 너무 난해한 흥분이다. 그는 물론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선택은 가짜가 아니다. 그 점이 그를 가장 불안하게 한다. 그는 투표소에 갇혀 누구를 기다리는 듯 한참 서성인다. 마지막에, 그는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 속인다면 그건 속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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