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10.
양심 아픈 얘기다. 웃게 만드는 얘기다. 학부 시절 언제나처럼 합평 수업을 하던 도중에 내가 했다는 말을 한 선배가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그를 찌르려고만 해서 기억에 남은 말이라고 한다. 그때 내가 말하기를, 어떤 신인 가수가 공연히 밝히고서 다른 가수를 모방하여 자기 노래의 맛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그의 노래가 듣기에 좋더라는 예시를 들며, 마찬가지로 당신의 시도 학부 내의 어떤 사람들의 시를 떠올리게 하지만 읽기에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할 이야기가 그뿐이라면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으냐고 그가 비판하더라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가 옳기 때문이다. 이따금 나는 (정말이지 글을 써서 더 오래 기억되고 더 오래 살아보려는 지루한 욕망을 지닌 인간답지 않게) 나 또는 나의 말이 누구에게 실제로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인간처럼 행동할 때가 있고, 그런 망각이 이처럼 기억의 형태로 되돌아와 나를 찾을 때면 당황하게 되고 약간 허탈하게 웃게도 된다. 오늘 옛 합평의 내용을 전해 들었을 때 그런 말을 한 것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나라는 것은 바로 알아차렸다. 슬프다. 그 시절 생각이 나니까, 그 시절 생각을 할 때면 늘 하게 마련인 생각, 언제나 조금 더 잘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었을까?
그 무렵 나에게는 모방의 문제가 제법 중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당사자들의 의지와 거의 무관하게) 나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던, 내가 좋아하고 또 두려워하던 몇 작품을 쓴 사람들, 그들 중 특히 학부의 선배들이 공유하던 창작적 문제 의식을 나도 무척 단순한 형태로나마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송승언 시인은 이렇게 썼다. "흑막을 걷어내면 흑막을 드리우는 / 실험실은 중단된 실험의 흔적으로 어지러웠다 / 탁상 위에 정교한 웃음을 짓는 / 해골이 있었다 / 텅 빈 눈으로 / 텅 빈 눈을 쳐다보았다 / 어둠 속에서 오래 빛나던 / 너의 비웃음 / 그것을 베끼라고 했던 나의 선생님"(「유리 해골」). 그러니까, 그건 언어에 대한 고민이었다. 언어는 본래 모방적 체계다. 시를 공유 및 배포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기표라는 사물은 구조적으로 반드시 다른 기표와의 연쇄에 접속해 있다. 이걸 창작론으로 이식하면 우리가 순수한 창조적 행위라고 상상하는 많은 일들이 기실 일종의 모방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이 모방은 그저 물신화한 기표에 대한 강박적 돌아섬 같은 게 아니다. 그걸 모방인 채로 두지 않으려는 다각도의 노력이 시를 실질적으로 다각화하고 더 큰 틀로 개방하기도 한다. 대강 이런 식의, 텍스트 자체의 콘텍스트성에 대한 고민, 어쩌면 윤리적 고민 같은 것이 나에게도 (막연하나마) 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베끼는 방식으로만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도 아니었고, 그것에 좌절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예술에 있어 그토록 본질적으로 여겨졌던 창의성의 기반이 의문시되는 와중에도 작품으로부터 여전히 어떤 좋고 나쁨이 '솟아오르는' 현상이었다. 나에게는 그게 붙잡고 싶은 증거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 테두리에 적절한 논리의 살이 붙기까지는 그것만이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적어도 이 정도로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합평에 말을 얹기보다는)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 삶은 결국 기다림의 문제처럼 느껴지는데, 또 어떨 땐 삶이 오직 기다림을 거부하며 미래를 당겨오는 싸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은 내내 어려운 문제다.
모방이라는 주제는 또 다른 회상으로도 나를 이끈다. 문제의 그 합평이 있고서 한참 뒤의 일이다. 나는 졸업작품집을 (다소 애매하게 비상업적인 형태로) 자비 출판하여 다행히도 졸업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문예창작학과라는, '진짜' 사회와 유리된 유사-현실적인 공간(해당 학과 소속자들이 자주 지니는 이런 시각이 다소 부당하고도 부정확하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하지만)을 여행한 데 따른 일종의 기념품으로서, 졸업작품집은 주변인에게 선물되고 흩뿌려졌다. 그런데 그렇게 졸업작품집을 수령한 이들 중 한 사람이 그 다음 학기엔가 졸업작품집을 만들기 위해 생산 중인 시 작품들이 내가 졸업작품집에 실은 시 작품과 너무 닮은 인상을 주더라,는 얘기를 지인들이 꺼낸 것이다. 내가 이른바 표절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땐 나도 모방과 표절 등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었고(위에 대강 적었듯), 글의 좋고 나쁨이 유사도에 따라 그리 명쾌하게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창작적 이념 비슷한 것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창작물을 확인하기 전에 이미 어떻게 반응할지를 웬만큼 결정해 두었다. 나는 시라는 것이 무엇보다 운동성임을 잊지 않을 셈이었다. 그러므로 비슷한 단어로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고 비슷한 분위기로 비슷한 이미지를 만드는 식의 매끄러운 표절이란 없는 것이라고, 최소한 글을 첨예하게 읽어내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하다고 주장할 셈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따라해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시였기 때문일 거라는 친구들의 무척 고마운 위로도 사실 꼭 필요하지는 않았다. 물론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을 줄 때 우정이 기뻐지는 감은 있다. 아무튼 그것들은 그냥 시였다. 그 경험 뒤에 남은 의문이야말로 앞으로의 쓰기에 반영될 것이므로 개개의 시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의문은 다음과 같다. 나 자신도 내가 어떻게 내가 쓴 시를 통과했는지를 모르고, 정확히 무엇을 좋다고 생각했으며 그 좋음을 어떤 경로로 추구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이미 만들어진 시와 비슷하게 뭔가를 만들어보고자 했다면 그건 그가 나에게는 명확하지 않은 그 프로세스를 외부자-독자로서 어떤 식으로든 감지했거나 유추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아름다움의 어떤 속성이 그에게 그런 자격을 주는가? 분명히, 언제부터인지는 흐릿해도, 좋은 시란 당연하게 아름다운 것이라거나 시의 본령이 아름다움에 있다는 등의 생각을 나는 저버린 것 같다. 그러나 만약 내가 시를 쓴다면 그건 당연히 아름답게 쓰려고 하는 것이다. 불균형의 동력. 이것은 내내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