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14.
이 얘기를 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가 없다. 국민의 통합이란 대체 무슨 뜻인가? 국가라는 것이 이미 일정한 범위 내에 거주하는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만들어진 사회적 개념임을 차치하고서라도, 말 그대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분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정말? 정확히는 범주화할 수 있는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말해야겠다. 만약 더 이상 갈라내어서 볼 수 없는 명확한 개인 또는 집단(불가능한 집단!)의 탓이라면 그를 제거하면 분열도 덩달아 해결될 테니까 말이다. 일이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걸 아니까 그토록 국민의 대승적 통합을 부르짖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체성이란 그 내부에서 한없이 꼬여가는 능력이다. 반면 외부의 적과 대결하는 것으로서 국가의 정체성은 그러한 자기 정립의 문제를 부단히 외주화함으로써 작동한다.
국민은 왜 하나 되어야 하는가? 상상 가능한 단 하나의 트랙, 단 하나의 레이스, 통합적인 레이스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사실 이런 의도는 무척 명확히 공고되어 있다. 따라서 의문점을 확실하게 하려면 국민의 통합이 무슨 뜻인지 묻기보다는 이런 질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국민의 통합을 가지고서 뭘 하겠다는 건가? 이게 여전히 의문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실제로 우리가 내던져진 레이스부터가 결코 통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 사회의 성장성은 분열적이다. 성장이 실질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형상은 분열 뿐이다. 자본 자체가 분열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환상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자본이 계속 자본주의적으로 성장해올 수 있었단 말인가. 이성적인 인간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고 이기적인 인간은 자본주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편의상의 도식은 필히 버려져야 한다. 바로 여기에 반례가 있다. 이기적인 인간은 단지 사태를 좁게 볼 뿐이다. 자기 안의 필연적인 이타성을 간과할 뿐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정말, 악한 존재로서든 선한 존재로서든, 아무튼 정치적인 것에 대한 상상력을 갖춘 어엿한 주체라면 요청되어야 할 것은 정반대다. 분열은 서둘러 은폐될 것이 아니라 더 명징해져야 한다. 이제 분열은 없기로 해요, 한다고 해서 우리가 합체 로봇이 되어 괴물 키메라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되는가? 합체 로봇이 바로 키메라다. 일시에 분열이 사라진 듯이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사태의 징후일 수 있다. 우리의 반성적인 의지를 위협하고 또 모욕하는 어떤 이념이 맞선 얼굴들을 덮어버리는 사태 말이다. 생존마저도 결코 '순수'하지 않다. 적어도 흔히 상상되는 방식으로는 말이다. 합체 로봇과 키메라는 서로 다른 것을 바라기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다. 그들은 똑같은 것을 바라기 때문에 싸운다. 그렇다면 이때 분열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들 자신이 '합체'된 혼종적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바라는 것 또한 내부에서 한없이 깨질 수 있는 것이며, 얼핏 똑같아 보이지만 실상 서로 다른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분열만이 그 균열을 그려내준다.
이렇게 보면 분열과 통합은 (통합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생각 속에서처럼) 그리 대립적이지 않다. 분열이 드러났다는 건 결코 명확하게 분열되지 않는 자신을 드러냈다는 의미다. 맥락상 약간의 용어 참조를 하자면, 분열은 일종의 절합적인articulative 전체로 나타난다. 우리가 분열되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가장 긴밀하게 함께하고 있다. 분열되어 소외된 상태를 인지하게 하는 힘(진정으로 통합적인 힘)이 소외된 자 모두를 실질적으로 견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지막엔 결국 당위로 질문해야 맞겠다. 국민의 통합은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 국민이라는 지칭에 흡수되는 개인을 단 한 사람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여야 한다. 물론 우리는 능동적으로 어떤 상상에든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능동이라면 우리는 참여하면서 동시에 맞서고 있어야 한다. 빠져나갈 길이 차단된 '국민'은 거기에 들어가는 길 또한 차단한다. 그 안에서는 지도를 그릴 수 없다.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 열광, 열광 속에서 헤맬 뿐이다.
이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고 느낀 건, 사회 내의 갈등과 분열을 뭉개서 어떤 실용적인 인력으로 치환하려는 관행에 대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앞에 한 것과 비슷한 얘기를 (논리적으로든 뭐든 훨씬 훌륭하게)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아직도 해야 되냐는 생각이 드니까 아직도 해야 하는 걸까. 지금 드는 생각은 그렇다. 통합은 언제나 새로운 당위이기 때문에, 통합은 결코 관성적으로 요청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통합을 가지고 무엇을 할 건지 명확히 제시하지도 못하는 그런 통합, 국민이 사이 좋게들 지내시면 내가 그 국민을 섬겨볼게, 그런 것은 이제 안 된다. 모르겠다. 여기서부터 국민이라고 하면 그건 그냥 나다. 궁극적으로 국민은 분열을 원한다. 삶에 개입하는 진짜 피로감을 원한다. 국민도 웃고 싶을 때만 웃고 싶다. 자기 행복마저 정의롭게 개편하고 싶다. 바보 같은 속임수로 섬기지 좀 말고 바보 취급도 말고...... 괴로운 사랑노래 가사 같다. 정당한 기대 없이 주문처럼 외워지는 통합은 기법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게으른 창작자가 할 말이 없을 때나 하는 말이다. 하지만 할 말이 없다니 그럴 리가.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