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벗어나니 나는 아무개가 되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나를 돋보이게 할 필요도 없다. 예쁘게 차려입고 멋진 시계를 손목에 두르지 않아도 되고 멋진 차가 필요하지도 않다.
웃고 싶으면 웃고 슬프면 그냥 슬퍼하면 되는 나는 아무개가 되었다.
홀가분하게 벗어버린 나의 페르소나는 서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 나는 아무개로 살고 있다. 아무개는 더없이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지금을 살고 있다. 피부 아래 깊게 숨어있다 한껏 피어난 감각들을 온몸에 휘두르고 하루를 온전히 느끼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값진 시간을 살고 있다.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면 이런 아무개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내 직업이 무엇인지보다는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에 더 관심을 갖고 또 남들도 내게 내 직업보다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궁금해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아마도 비슷하지 싶다.
하지만 비교집단이 있는 서울에서는 지금과 같은 아무개는 힘들지 않을까? 어느 동네 몇 평 아파트에 사는지, 차는 무엇을 타는지, 목걸이는 어느 브랜드 것인지, 헤어스타일은 세련되었는지 신경 쓰며 살겠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그렇다면 나는 지금 아무개로 살고 있는 이 삶을 온전히 누리고 즐겨야 하나?
내 친한 친구가 그랬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미지 말고 그동안 살아보고 싶었는데 혹은 닮고 싶었는데 못해봤던 캐릭터로 지금껏 살아보지 못한 새 삶을 살아봐. 아는 사람도 없어서 누구도 놀라지도 놀리지도 않고 원래 그런 사람인줄 알거야."
정말 신박한 생각이라고 감탄했었다. 어디서 그런 깜찍한 생각이 나왔는지 너무 마음에 쏙 드는 조언이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친구의 조언이 오늘 갑자기 떠올랐다.
뭐가 있을까? 심지어 나는 닮고 싶은 캐릭터조차 마음속에 하나 없이 살아왔구나. 목적지가 없이 물이 흐르는 대로 이쪽으로 가라면 이쪽으로 저쪽으로 가라면 저쪽으로 그렇게 표류하며 살아왔던 내 삶에 이제는 이정표를 하나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다.
'노홍철처럼 살아보고 싶은데? 노홍철처럼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 거야...'
노홍철 형님이 하고 싶은 거 하thㅔ요라고 내 귓전에 대고 쩌렁쩡렁 울리도록 열심히 떠들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