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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인천 Oct 08. 2024

가슴으로 가르치는 한글 선생님

한글날 특집 | 굿모닝인천 10월 Vol.370


- 고려인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게 쏟는 남다른 열정 

- 학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러시아어 열공 중

- 우리말뿐 아니라 한국문화 세계에 전파하고파  

    

우리말뿐 아니라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이영화 선생의 포부는 현재진행형이다.

    


인천함박초등학교의 계단을 오르면 3개 국어와 마주친다. 계단 사이 좁은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각기 다른 언어의 문장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계단에 오를 때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언어는 영어다.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몇 계단 더 오르면 ‘Не разговаривайте на занятиях’ 같은 생소한 러시아어가 발걸음을 주춤하게 한다. 러시아어를 모르면 읽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계단 끝부분에서 마주하는 한글 문구가 유난히 반갑다. “수업 시간에는 떠들지 않습니다.”

이 학교 학생들의 대화에서 러시아어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화장실에서도 러시아어로 쓰인 문구를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학교는 학생 상당수가 고려인 다문화가정 자녀인 다문화정책연구학교다. 학교 건너편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들과 중앙아시아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함박마을이다.

이영화(44) 선생은 함박초등학교의 고려인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 중 한 명이다. 한글날(10월 9일)을 앞두고 이영화 선생이 이끄는 배움터인 어울림 9반의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비빔밥은 어느 나라 음식이에요?” “한국요!” “그럼, 비빔밥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계란요!” “당근요!”

아이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교실 가득 울린다. 이어 학생들은 테이블을 둘러싸고 한데 모여 갖가지 음식이 그려진 퍼즐 조각을 맞추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신이 났고 선생님은 즐겁다. 수업이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깝다. 그런데 학습효과는 수업보다 뛰어나 보인다. 분명 언어의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음식을 활용한 한국어 교수법은 이영화 선생이 한국어 강사 동아리에서 회원들과 함께 개발했다. 그는 ‘다다이음’, ‘위더스With us’ 등의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영화 선생은 “책으로만 가르치면 아이들이 금방 지루해 하고, 너무 힘들어한다”며 “음식 그림을 활용한 한국어 교육으로 학습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어 강사로서 이영화 선생의 이력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어통번역과 관광경영을 전공하던 그는 유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한글 전도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졸업 후에는 필리핀으로 건너가 현지 대학에서 2년 동안 한국어 강사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와 미국 등 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외교관을 꿈꾸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삼고 있다. 

국내외를 오가다 보니 한글로 맺은 인연이 국경을 뛰어넘는 일도 생긴다.

“필리핀에서 가르치던 학생이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에 건너온 적이 있어요. 그 학생이 청주의 한 공장에서 일할 때 찾아가 보았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비자 만료로 한국을 떠날 때는 공항에서 서로 아쉬움을 달랬죠.”

한글을 매개로 한 스승과 제자로서의 소중한 인연은 3년째 근무 중인 함박초등학교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제가 가르치던 2학년 학생들이 이제는 3학년, 4학년이 됐어요. 이제는 우리 반 학생이 아닌데도 멀리서 저를 발견하면 함박웃음 지으며 한달음에 달려와 품에 안기곤 해요. 한국어 강사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가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의욕이 넘치는 만큼, 고민도 따른다.

이영화 선생은 “다문화가정 친구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도록 잘 가르치는 게 중요한지, 아니면 한국어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한지 항상 고민한다”며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 셈인데, 두 가지를 절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저의 숙제”라고 말했다.

이영화 선생은 요즘 틈나는 대로 러시아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저도 외국에서 생활해 봤기 때문에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아요. 제가 직접 러시아어를 배우면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러시아어로 소통의 폭을 넓혀 학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면 한국에 대한 학생들의 애정도 더욱 커지지 않을까요?” 이 정도 열정이면 조만간 절충의 해법을 찾지 않을까 싶다. 

우리말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이영화 선생. 그의 포부는 현재진행형이다.     


제가 가르치던 2학년 학생들이 이제는 3학년, 4학년이 됐어요. 이제는 우리 반 학생이 아닌데도 멀리서 저를 발견하면 함박웃음 지으며 한달음에 달려와 품에 안기곤 해요. 한국어 강사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가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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