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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쓰다 Jun 01. 2022

양화대교 대신 가양대교

#1.

3년 간의 회사생활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힘들고 외로웠다. 대학 이후엔 나름 정서적으로 안정되었다고 생각해왔는데 기반이 약해서 그런가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물론 회사에 잘 적응하며 삶의 보람이 되는 분들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에게 맞지 않았을 뿐. 남편은 깊은 우울감에 빠진 나를 힘겨워했고 심리상담까지 받으러 다녔다. 그럼에도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고서는 휴대폰 번호도 바꾸었다. 몇몇 좋은 인연을 만들었던 분들을 제외하곤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회사에서는 내가 결혼하자마자 이혼했다는 소식이 나돌았다고 한다. 남자 잘 물어서 팔자 폈는데 어쩌냔 말도 들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시집을 왔을 뿐인데 온갖 소문이 도는 게 충격적이었다. 웃어넘겨버리라고 남편이 위로했고 나는 알았다고 대답한 뒤 잠도 못 들고 '그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쓸모없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생각을 끊는 법을 모르니 무조건 그래야 했을 뿐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오게 된 것은 결혼 준비를 하던 차에 서울 본사에 마침 좋은 자리가 났기 때문이다.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서울 부서로 자리를 옮기고 엄청난 부동산 가격에 결혼도 서둘러 진행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친구 하나 없이 지내야 했고 사람들이 왜 고향을 그리워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쓰다 보니 온통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다. 어쨌든 근 3년간 거의 고통의 감정으로 매일을 살아왔고 자유롭고 당당했던 나를 절대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2.

입덧이 멈춘 어느 날, 괜히 운전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케아까지 차를 몰았다. 드라이브를 하며 대교를 건널 때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생각났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는 문구가 반복되는 예쁜 노래다. 그 노래는 마치 양화대교를 건너기만 하면 이제껏 아팠던 모든 것은 잊어버리고 앞으로는 행복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드라이브를 하다가 다리에만 들어서면 습관처럼 남편에게 여기가 양화대교냐고 묻곤 했다. 


양화대교 대신 내가 지난 다리는 가양대교지만 어쩐지 앞으로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살짝 해가 넘어가는 다리와 한강이 너무 예뻤다. 자유롭게 운전을 해서 경기도까지 다녀올 수 있고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다. 집에 도착하면 글을 쓰고 여유롭게 저녁을 먹을 수 있다. 그날의 가양대교는 이전의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별 거 아니라고 위로해 주었고 비로소 해묵은 감정이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나 힘들어했을까. 


나는 배를 붙잡고 말했다. 타인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구분하고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혼자서도 스트레스를 잘 다룰 수 있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비록 누군가가 너의 마음을 다치게 할지라도 금방 툭툭 털어내고 덤덤하게 살아내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아이에게 건넨 말이었지만 그 말에 위로를 받은 건 분명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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