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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Sep 07. 2024

오늘이 힘겨운 고3 아들에게

지금까지 온것만도 장하다

호야,

매일 밤마다 "엄마, 너무 힘들어요. "라며 어깨를 늘어뜨린 네가 한숨 섞인 말을 건넬 때마다 엄마는 18세 나이에 너무 큰 인생의 무게에 짓눌린 너에게 마땅히 할 말을 찾아 고민한다.


연약한 몸으로 날마다 철근같이 무거운 책가방을 지고 늦은 밤까지 학원, 독서실을 오가며 고생하는 우리 소중한 둘째.


몸이 허약해 학교를 자주 빠지더니 급기야 고 3 되자마자 예기치 않은 뇌수막염 질병으로 인해 2주 넘게 입원하고 결핵약을 먹으며 수개월째 투병하는 너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몇 번이고 속으로 "이제 그만 애쓰자. 네가 건강한 게 우선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꾹 눌러 참았단다.

중간고사 때는 급기야 병마를 못 이기고 네가 시험 기간  내내 토하고  시험을 망치고 왔지.  돌아와서  결핵약 따위 다신 안 먹겠다고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냈던 너.  아픈 널 위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가슴에 얹힌 슬픔을 몇 번씩 주먹으로 내리치기만 했단다.


입시가, 시험의 중압감이, 진로에 대한 부담이 네 삶과 몸을 갉아먹는 것만 같았다. 아픈 네 곁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엄마는 그저  수능까지 네가 건강하게 버티고 시험 보기만을 아침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며 이제 수능을 불과 2개월 앞둔 지금.  밤늦은 시간 땀과 피곤에 절은 네가 건넸던 말을 기억한다.


"엄마,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기엔 부족하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그래, 호야. 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운명적인 간극을 메우는 과정이더라. 그래도 엄마는 지금 네가 이만치 해온 건 기적이라 생각하고  감사드린다.


네가 좋아하는 것,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열망들을 유예하면서 사각의 책상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지탱해 온 외롭고 지독스러운 싸움이 이제  끝나가는구나.


부실하고 연약한 몸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네가, 오늘만 버티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주어진 순간을 꽉 채우며 걸어온 네가,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면서 허탈해하는 네가, 짠하면서도  자랑스럽다.


자녀야말로  부모에게 세상 누구보다 위대한 스승임을 너를 통해 배운다.


중학교 때까지 매일 게임에만 파묻혀, 공부에는 통 생각이 없어 다니는 학원마다 쫓겨나고 냉대받았던 너.

어느 날, 전기에 감전된 듯 "엄마, 이제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어요. 공부도 열심히 해서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을래요."라면서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닥부터 무섭게 매진해서 올라온  너.


비록 병마에 무너지고, 노력만큼 안 나온 성적으로 좌절했을 망정 네가 온 힘을 다해 분투한 시간은 인생의 가장 값진 시간으로 남을 줄 믿는다. 엄마는 네가 이렇게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며 우뚝 서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잘해 왔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네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고 슬프게도 앞으로도 없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게 축복임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인해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실패하고 좌절한 타인을 이해하며 진심으로 마음을 내어 줄 수 있단다.


사람이 성숙해지는 시간은 내 힘이 최고조에 달한 때가 아니라 가장 연약한 때이며, 실패를 다루는 것보다 성공을 다스리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거든.


호야,

엄마는 항상 이 자리에서 너를 응원한다. 엄마 힘들게 한다고, 부모님 고생하신다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너는 이미  네 몫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 이상의 충분한 보답을 해주고 있다.


사랑한다, 우리 아들.

지금 이 시기가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을 배우는 기회로 여기고  누려라.


어떤 결과가 나오건 네 인생을 위한 가장 좋은 길로 이어질 줄 믿는다.

앞으로 남은 모든 시간, 부디 건강하게 잘 완주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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