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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이길 수 없다

자전거 뒤에서 손을 뗄 시간

by 그대로 동행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간 막내아들 성이가 학교에서 자서전 쓰기 동아리에 들었다고 한다. 생기부에 도움 되는 인기 동아리가 아니라 전교에서 3명만 지원해서 간신히 폐지를 면한 동아리에 들어간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아이 왈.

"작가가 되려고요. 제가 글쓰기를 좋아하잖아요."


밤늦게까지 공부 대신 창작활동을 한답시고 끙끙대며 혼자 만화를 그리거나 글을 쓰던 아이의 모습을 익히 알기에 수긍이 갔다.


의욕에 차서 혼자 자서전 목차를 만드는 아이를 보고 "그래. 잘해봐라. 우리 성이는 잘 해낼 거야."라고 격려했다. 엄마의 격려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아들을 보며 문득 수년 전 이맘때 큰아들 환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 공부를 곧잘 했던 환이었기에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아이를 향한 의욕이 충만했다. 당시에는 동아리 활동이 입시에 반영 됐기에 인기 동아리는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어떤 동아리에 들어갈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했는데 아이는 갑자기 교육 동아리를 들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나중에 학원 강사가 되고 싶어서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때 내 머리를 스쳤던 현실적인 계산들. 고액 수입을 얻는 인강 강사나 유명 학원 강사들을 보면서 아이가 환상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호하게 당시 인기 동아리였던 컴퓨터 동아리를 들라고 했다. 말 잘 듣는 성실한 맏이였던 아이는 순순히 엄마 말에 동의했고 자기소개서, 면접을 통과해 동아리에 들어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아이는 동아리 활동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내내 푸념했다. "엄마, 컴퓨터를 잘 다루고, 프로그래밍도 잘하는 아이들이 넘쳐요. 나는 정말 그 속에 낄 수가 없어요. 괜히 이 동아리를 들었어요." 간신히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3년을 버티게 했건만 결국 생기부 내용은 별로 넣을 것이 없이 밋밋하게 끝났다.


재수 끝에 정시 원서를 접수할 때, 인기 과 중 하나였던 컴퓨터 공학과에 대한 미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당시 아이는 재수 끝에 얻은 성적이 마음에 안 든다고 삼수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였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삼수는 없다면서 컴퓨터공학과로 정시 원서를 접수했다. 결국 아이는 합격 통지를 받아 학교를 다니기 위해 짐을 싸서 서울 할머니집으로 옮겼다.


그러나 한 달이나 지났을까. 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 전공이 안 맞아서 도저히 공부를 계속 못하겠어요. 저 그만두고 싶어요."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아이를 달랬다. 그러나 결국 환이는 자퇴서를 제출했다. 황급히 학교에 사정해서 담당 교수님 선에서 자퇴서를 철회하고 아이에게 한 학기만 버텨 달라고 사정했다.


마침 그때 둘째가 고 3이었어서 어떻게든 큰아이가 학교에 남아 버텨주길 바랐다. 그러다가 군대를 가던지, 전과를 하던지 길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자퇴를 못하자 학교를 안 가기 시작했다. 결국 큰애는 삼수생활에 들어갔다.

부모는 결코 자식을 이길 수 없고 이겨서도 안됨을 깨달았다.

중학교 때까지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착실한 맏이였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아이가 나에게 시위를 했다. 매번 그런 아이를 놓아줘야 한다고, 존중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다짐하면서도 막상 아이를 마주하면 나는 늘 세상의 정답과 부모가 원하는 방식을 들이밀었다.


자신이 원하는 동아리를 한다고 행복해하는 막내를 보며 생각했다.

진작에 큰 애도 이렇게 원하는 대로 가도록 격려해 줬다면 지금 우리 모습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이가 일찍 자기 길을 찾아 행복하게 갔을까 . 엄마의 욕심과 강압으로 아이의 길이 더 지체되고, 소모적인 고생을 했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자책이 밀려왔다.




아이들이 어린 때 자전거 타기를 가르칠 때가 생각났다. 자전거를 배울 때 처음에는 뒤를 단단히 잡고 밀어줬다. 그러나 서서히 자전거 타기가 몸에 익으면 더 이상 밀어주지 않아도 바퀴가 굴러감을 아이들이 알게 된다. 그렇게 혼자 바퀴를 굴리다가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것도 부지기수. 그 넘어짐을 통해서 아이는 마침내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졌다.

자녀를 키우는 것도 결국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

한때 나는 아이의 뒤를 부여잡고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도록 도와줬다. 조마조마해서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아이가 혼자 핸들을 잡고 패달을 밟겠다고 한다. 넘어지고 까지고 부딪히는 순간도 많을 것이다.그러나 언젠가는 자기 힘으로 원하는 곳까지 굴러갈 것이다.


자서전을 쓰겠다며 행복해하는 막내는 그런 형과의 경험으로 인해 많은 수혜를 누린다. 이 아이에게는 그저 '네가 행복하면 된다'라고 격려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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