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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을 또 들어가는 나, 밉다

나는 쿠팡의 봉이다

by 그대로 동행

오늘도 쿠팡을 들어갔다. 속으로 이를 갈면서 기어이 주문을 하고 말았다. 샐러드, 과일 등을 로켓프레시로 주문했다. 집 앞에 나가서 살 수도 있지만 소포장 한 샐러드는 마트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원래 나는 쿠팡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남들이 로켓 어쩌고 저쩌고 할 때도 흘려 들었었다. 그러다 주변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한 번 사용해 보았다. 신세계가 열렸다. 이 좋은 걸 왜 여태껏 몰랐는지 억울해 땅을 쳤다.


이번에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을 때, 분노로 온몸이 달아올랐다. 전산 등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혁신 기업이라고 온갖 이미지 각색은 다 해놓고 정보 관리를 이렇게 허술하게 했다니, 어이가 없었다.


롯데 카드 정보 유출 때는 카드를 새로 만들었다. 롯데에서 그렇게 해줬다.


그런데 쿠팡은 사고가 터진 지 수일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사과 메일 하나 받았다. SK 때와 롯데 때와 비교해 보니 심하게 미적지근하고 오만하다. 이제 서서히 쿠팡에서 멀어지리라, 너를 단죄해 버리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내가 다시 쿠팡의 주문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이번 사태가 터지고서야 알았다. 쿠팡은 대안이 없다는 것을. 나는 결국 쿠팡의 봉이 되고 만 것이다. 쿠팡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갈 곳이 없어서 빌붙게 된 형국이다.


오늘자 신문을 보니 글로벌 투자은행 JP 모건이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털린 쿠팡 사태에 대해 '이탈 고객은 제한적이다'라고 단언했단다.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쿠팡의 지난해 매출(41조 원)은 대형마트 3 사인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한다. 배달앱도 쿠팡이츠가 서울에서는 배민을 눌렀단다. 가히 쿠팡 공화국이다. 우리 일상은 이미 쿠팡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아침에 눈 떠서 쿠팡에서 배달된 식재료로 식사를 차리고, 퇴근후나 시간 날 때는 쿠팡 플레이로 프로그램을 본다. 배달음식도 쿠팡이츠로 해결하고, 선물할 곳이 있을 때도 쿠팡으로 보낸다.


쿠팡으로 시작해서 쿠팡으로 끝나는 일과다. 그러니 쿠팡이 고객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실질적 오너인 김범석은 아직 얼굴도 내밀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쿠팡이 갑인 형국 아닌가.


신문에서는 이 모든 일의 원인으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등에 족쇄를 끼웠던 2012년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을 지적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쿠팡을 키운 건 결국 소비자이다. 특히 코로나가 터졌을 때, 우리는 쿠팡의 편리함에 얼마나 열광했던가. 쿠팡 없이는 못 살았을 거라며 각종 예찬론이 난무했었다.

코로나 시기 쿠팡 이용 사진

그 이전까지 쿠팡은 일개 온라인 유통기업이었건만 코로나를 지나며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쿠팡에 대적했던 티몬 등의 모든 경쟁업체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자취를 감춰 버렸다.


쿠팡의 개발인력들은 다국적 인력 부대라고 한다. 각기 다른 국적의 그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엄밀하게 쿠팡은 우리나라 기업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해커들의 먹잇감이 된 지 오래이다. IT강국의 양면성이다. 잘 깔린 인터넷 인프라와 데이터베이스가 도리어 해커들의 침입을 유리하게 했단다. 올해만도 사이버 사고로 유출된 개인정보고 6624만 명이라니, 전 국민이 털린 셈이다.

이제 개인정보 유출에도 사람들이 시큰둥한 이유이다. 또 털렸거니 하면서 이내 관심이 사그라든다. 그런 정보들이 곳곳에 돌아다니며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악용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정보유출 사태로 알 수 있듯, 쿠팡이 더 이상 독점기업이 되도록 좌시해서는 안된다. 정부에서는 과징금을 많이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지만 전직 관료들을 등용한 쿠팡이 어떤 로비를 할지 아직 모른다.



물론 소비자를 위해 혁신을 거듭해 온 쿠팡의 공도 분명 있다. 우리는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려왔나.


그러나 그 편안함이 독이 되어 우리를 습격하는 시대이다. 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쿠팡의 독점력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쿠팡에 대적할만한 기업들이 등장하도록 정부도 낡은 법을 개선하고 숨통을 틔어 주어야 한다고 본다. 쿠팡의 지배력이 더 이상 소비자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 IT 생태계에는 유독 독점적 지배력의 기업들이 많다. 네이버가 요즘 화면 하단에 블로그와 동영상이 나오도록 하는 것, 카카오가 인스타그램 흉내를 내서 개편된 것은 다 그들의 독점적 지배력으로 인한 결과이다.

그래서 나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을 들어갈 때마다 저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으로 바짝 긴장한다. 나의 금쪽같은 시간을 뺏으려는 저들의 저열한 시도가 괘씸해서이다.


나는 쿠팡의 주문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려다 보류했다.


소심하지만 그것이 내 나름의 복수이다. 더 이상 봉이 되지 않으리라는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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