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느 교수님의 글

부모님께 보내드렸더니

by 오천사

어느 교수님의 글.


먹고 싶은 거 있거들랑

가격표 보지 말고 걸신들린 듯이 사 먹고,

가고 싶은데 있거들랑 원근 따지지 말고 바람난 것처럼 가고,

사고 싶은 거 있거들랑 명품 하품 가릴 것 없이 당장 사시오.

앞으로는 다시 그렇게 못한다오.

다시 할 시간이 없단 말이오.


아래 글은 십여 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서울에 살고 있는 연세대 수학박사로 안동교육대학,

단국대 교수를 역임한 분의 글입니다.


친구 한 사람(아내) 잃고 나니,

당신들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소


어제는 지나갔으니 그만이고,

내일은 올지 안 올지 모를 일,

부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고 아끼는 어리석은 짓이란 이젠 하지 말리오. 오늘도 금방 지나간다오.


먹고 싶은 거 있거들랑 가격표 보지 말고 걸신들린 듯이 사 먹고, 가고 싶은데 있거들랑 원근 따지지 말고 바람난 것처럼 가고, 사고 싶은 거 있거들랑

명품과 하품을 가릴 것 없이 당장 사시오.


앞으론 다시 그렇게 못한다오.

다시 할 시간이 없단 말이오.


그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들랑 당장 전화로 불러내 국수라도 걸치면서 하고 싶던 이야기 마음껏 하시오.

그 사람 살아서 다시는 못 만날지 모른다오.


한 때는 밉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던 당신의 배우자, 친구,

그 사람 분명 언젠가 당신 곁을 떠날 거요.

그렇지 않은 사람,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오.


떠나고 나면 아차하고 후회하는 한 가지,

"사랑한다"는 말, 그 말 한마디 못한 것!

그 가슴 저며내는 아픔,

당하지 않은 사람 절대 모를 거요.


엎질러진 물 어이 다시 담겠소?

지금 당장 양말 한 짝이라도 사서 손에 쥐어주고 고맙다 말하시오. 그 쉬운 그것도 다시는 곧 못하게 된다니까.


그리고 모든 것을 수용하시오.

어떤 불평도 짜증도 다 받아들이시오.

우주만물이란 서로 다 다른 것,

그 사람인들 어찌 나하고 같으리까?


처음부터 달랐지만 그걸 알고도 그렁저렁 지금까지 같이 산 것 아니오?

그동안 그만큼이나 같아졌으면 되었지,

뭘 또 더 이상 같아지란 말이오?

이젠 그대로 멋대로 두시오.


나는 내 그림자를 잃던 날!

내일부턴 지구도 돌지 않고 태양도 뜨지 않을 줄 알았다오.

그러기를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나는 매주 산소에 가서 그가 가장 좋아하던 커피잔에 커피를 타놓고 차디찬 돌에

입을 맞추고 돌아온다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겨우 이 짓밖에 없다오.

어리석다고, 부질없다고, 미친 짓이라고 욕해도 난 어쩔 수 없다오. 제발 나같이 되지 마시오.


이것이 곧 당신들의 모습이니 "살아있을 때 잘하라"는 공자도 못한 천하의 명언을 부디 실천하기 바라오.


지금 당장 넌지시 손이라도 잡고 뺨을 비비면서 귓속말로 “고맙다”라고 하시오.

안 하던 짓한다고 뿌리치거들랑 “허허”하고 너털웃음으로 크게 웃어주시오.


이것이 당신들께 하고픈 나의 소박하고 간곡한 권고이니,

절대로 흘려듣지 말고 언제 끝나버릴지 모르는,

그러나 분명 끝나버릴 남은 세월 부디 즐겁게 사시구려!


부모님께 보내드렸더니.



역시.


나도 꼭 우리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

꼭 그렇게 살아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